김상봉 선생이 쓴 칼럼을 경향신문이 실지 않아 한바탕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217155315&section=02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에 대한 서평 형식의 글이었다.
김상봉 선생은 경향신문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그 글이 인터넷 신문에 공개되고 맥락이 드러나면서 경향신문은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내가 경향신문의 사정을 고민해줄 필요는 없지만 경향신문에는 좋은 기자들이 있다.
아마도 김상봉 선생이 경향신문을 비난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한다.
삼성과 광고를 의논하고 칼럼을 막은 건 경영진이나 편집데스크의 생각이지 일선 기자들의 생각은 아닐 터이니...
왜냐하면 경향신문의 기자들이 재작년에 기획취재한 '지식인의 죽음'이 바로 그 사실을 드러낸 보도였기 때문이다.

어려운 문제는 이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예측할 수 없으나 현재 재정상황이 아주 좋지않은 경향신문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시사인]이 [시사저널]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언론사를 만들었던 길을 되밟는 건 현재의 상황으로 거의 불가능한 듯하고...
김상봉 선생의 지적처럼 삼성이 한국사회의 암적 존재로 굳어져 버렸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예기치않은 사건은 누구에게 더 상처를 줄지...

김용철 변호사의 비리폭로나 태안사건, 이건희 회장의 사면 등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김상봉 선생의 지적처럼 한국사회가 유독 삼성에 약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삼성을 피해 생활하는 게 쉽지 않다.
삼성재벌이 만드는 각종 상품과 서비스들이 우리 속에 깊이 침투해 있다.
그리고 삼성가족의 계열회사까지 포함하면 자본의 망은 아주 넓게 펼쳐져 있다.
그 망에서 벗어나지 않고 삼성을 비판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런 비판은 어느 정도 비합리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의식적으로 삼성과 관련된 것들은 피하고 있다.
삼성 래미안이 싫고, 삼성이 만든 제품이 싫고, 삼성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싫다(문자보내기가 쉬워 5년 전에 구입한 애니콜 휴대폰을 제외하면 거의 다 없앤 듯하다).
왜 싫냐고 물으면 내가 얘기하는 몇 가지 근거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이고 정경유착의 비리가 많은 기업, 기타 등등이다.
하지만 그런 설명은 "삼성만 아니면 다 괜찮단 말이냐, 다 똑같은 독점재벌인데"라는 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바로 거기에 딜레마가 있는 듯하다.
삼성이 아니면, 국내의 독점재벌이 아니면, 초국적기업이 아니면, 도대체 우리는 무얼 먹고 쓰며 살 수 있는가?
나는 여성민우회생협 조합원이기에 먹을거리는 기존 유통망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그 외는 완전히 자유롭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결국 독점자본이나 초국적자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급, 자치의 구조를 갖춰야 그런 비판이 완성될 수 있고 그 전까지 우리의 삶은 불완전하고 불안하다.
언론 역시 그런 구조를 얼마나 갖출 수 있느냐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지 않을까?

김상봉 선생의 글이 경향신문보다 그 글이 정면으로 겨냥한 삼성에 초점을 두고 논의되어졌으면 좋겠다.
어느새 자기검열의 수준까지 도달해버린 우리 사회의 자화상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이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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