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가장 기본은 투표이다. 주변 사람들이나 부모님들은 누구를 찍어야 한다며 열심히 훈수를 두시지만 딱히 기준이 없어 그 말을 따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투표를 해야 할까? 공약집이나 홍보물을 열심히 살펴보면 누가 더 나은지를 가릴 수 있을까?



1단계: 나와 우리 마을에 필요한 건 뭘까?


물론 선거자료를 열심히 보는 건 중요하다. 아는 만큼 조금 더 나은 사람을 뽑을 수 있다. 그런데 이건 순서가 좀 뒤바뀐 거다. ‘어떤 사람을 찍을 것인가?’보다 훨씬 중요한 건 ‘나는 뭘 원하는가’이다. 선거는 내가 원하는 바를 대신해서 해결할 사람을 뽑는 자리이지 나한테 뭘 해주겠다는 사람을 뽑는 자리가 아니다. 선거는 권리를 행사할 자리이지 선물을 받는 자리가 아니다. 시장에 갈 때 필요한 물건들을 미리 적어서 나가는 사람이 ‘알뜰한 소비자’이듯이, 선거를 맞이해서 자신이 필요한 걸 잘 챙기는 사람이 ‘훌륭한 시민’이다. 그리고 ‘훌륭한 민주시민’이 되고 싶다면 나에게 필요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 마을에,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것을 함께 따지면 된다. 나와 우리 마을에 필요한 걸 먼저 쭉 늘어놓고 그걸 충실히 잘 따르겠다는 후보자를 찍어야 우리 삶이 더 행복해질 수 있고 제대로 잘 하고 있는지 평가할 수도 있다.


그래야 대표가 하는 일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의원님, 시장님, 우리 마을에 이런 일을 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할 게 아니라 “내가 뽑아줬으니 당연히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리고 앞으로는 이렇게 해주면 더 좋겠어.”라고 말해야 민주적인 시민이다. 사실 그들이 마을에 해주는 사업들은 그들의 개인 재산을 털어서 해주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짬짬이 낸 세금으로 하는 일이니 고마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공약을 지키면 잘 했다고 등을 두들겨주면 되지 굳이 고마워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투표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필요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 마을에 필요한 것, 내 이웃과 가족들이 필요한 것을 챙기고 공동의 과제를 찾는 것이다. 당신이 우리에게 뭘 해줄 거냐고 물을 일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 무엇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그 일을 성실하게 하겠다는 사람을 대표로 뽑아야 한다.



2단계: 사람됨 살피기


선거에 관한 정보를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선거홍보물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 강국 한국에서는 웬만한 후보자들이 선거 때마다(아니, 거의 선거 때만) 홈페이지를 운영한다. 아니면 직접 선거사무소를 찾아가도 좋다. 혼자가면 썰렁하지만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찾아가면 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그러니 궁금한 게 있으면 참지 말고 곧바로 묻고 그 내용을 널리 알려서 자신이 한 말을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주인으로서 우리는 머슴에게 계속 고민거리를 던져줘야 한다.


대통령선거는 봉투가 비교적 간소하지만 국회의원선거나 지방선거로 오면 홍보물 봉투가 제법 두툼하다. 출마하는 사람도 많지만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선거 때는 직접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것 외에 일정한 비율의 표를 얻으면 의석을 가질 수 있는 정당명부비례대표제도가 실시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선거의 경우 비례대표는 전체 유효투표의 3% 이상을 얻으면 원내 의석을 가질 수 있다. 2004년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13.1%의 지지를 얻어 8명의 비례대표를 국회로 보냈다. 그리고 지방선거의 경우 시․도의원만이 아니라 자치구․시․군의원도 비례대표로 뽑는데, 비례대표는 의원정수의 1/10 비율로 선출되고, 후보자 중 50% 이상을 여성후보로 채우도록 되어 있다. 비례대표투표는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순서대로 당선되니 어떤 사람이 추천되었고 순서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를 한번 살펴보고 투표하는 게 좋다.


비례대표는 평소에 내가 눈 여겨 보던 괜찮은 정당에 찍으면 되고, 직접 투표하는 건 앞서 얘기했듯이 나와 우리의 필요에 맞춰 투표하는 게 좋다. 내게 필요한 부분을 찾았다면 그와 비슷한 공약을 내건 후보를 찾으면 된다. 그런데 만일 내게 딱히 필요한 부분을 못 찾았다면 조금 더 머리를 써야 한다. 보통 홍보물은 무슨 일을 하겠다는 온갖 공약(公約)들로 채워져 있어 후보자들의 차이를 잘 느낄 수 없다.


그래도 나오는 사람이 나를 잘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 ‘사람됨’부터 먼저 확인해 보자. 홍보물에는 후보자의 재산상황(배우자와 직계의 재산 포함), 병역사항, 최근 5년간 소득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납부 및 체납실적, 100만원 이상 벌금형을 포함한 전과기록, 직업·학력·경력 등 인적사항이 나와 있다.


먼저 재산과 세금, 경력을 살펴봐야 한다. 돈이 많은 게 죄는 아니다. 하지만 그 돈을 어떻게 벌었고 어떻게 쓰고 있는지는 정치인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재산이 많다면 어떤 일을 해서 재산을 모았고 재산이 적다면 왜 그런지를 잘 살펴야 한다. 인터넷에서 이름과 직업으로 검색하면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더불어서 세금 납부 실적과 직업, 경력도 잘 살펴봐야 한다. 직업은 변호사나 기업인인데 세금을 나보다 적게 냈다면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으면서 정치인이 되겠다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그런 분들은 일단 자기 주머니를 따로 찰 가능성이 높으니 정치인으로 적합하지 않다. 그리고 직업과 경력을 잘 봐야 하는 이유는 정치인들이 자기 회사나 자기 부인, 자식들의 회사, 자기가 속한 단체나 협회에게 이익을 주는 공약을 내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특히 기초의원의 경우 그런 일이 많다). 공약의 주요 내용과 직업, 경력의 내용이 겹친다면 한번 의심해봐야 한다.


다음으로 병역사항. 병역을 면제받는 것이 문제는 아니지만 멀쩡한 사람이 면제를 받았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사실 이 조항이 의미를 가지려면 후보자만이 아니라 후보자의 가족 병역사항까지 따져봐야 하는데 아쉽게도 홍보물에는 후보자의 것만 있다. 예전에 국적법을 개정할 때 국내외에서 1,820명이 국적을 포기했는데, 살펴보면 전(前)국방장관, 외무장관, 대학총장의 손자 등이 있었고, 서울시 강남권이 40% 이상을, 그 중 가장 부자라는 강남 도곡동의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들이 단일주소지 중 가장 많은 인원을 차지했다. 자기 이익 다 챙겨먹는 사람들이 정작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잘 살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과기록. 생각보다 정치인들 중에 전과자들이 많다. 1987년 이후에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에 갔다 온 사람들이 정치계로 많이 들어갔지만 그런 경력 외에 사기나 뇌물수수같은 잡범으로 감옥을 다녀온 사람들도 더러 있다. 민주화운동 때문에 전과기록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사실을 함께 기록하니 상관없고 다른 범죄기록이 있으면 잘 확인하자.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실수를 더 이상 범하면 안 된다.


그리고 선거에 처음 나온 사람이 아니라 이미 공직을 맡고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 사람에 관한 평가를 들어봐야 한다. 인터넷 쇼핑을 할 때 상품평이나 사용후기를 보고 그 상품을 평가하듯이, 정치인도 그렇게 평가를 해야 한다. 그 사람이 발행하는 의정활동보고서나 의정활동백서에만 의존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활용하면 어렵지 않게 평가정보를 얻을 수 있다. 쇼핑 할 때는 눈이 뻘겋게 정보를 검색하는 사람들이 투표할 때는 너무 신경을 안 쓴다. 이제 신경을 좀 써야 머슴들이 기억력 나쁜 국민들이라며 거만하게 굴지 않는다. 선거 끝나고 난 뒤에 후회하지 말고 미리 신경을 좀 쓰자.



3단계: 정책실현가능성 살피기


아무리 좋은 공약을 내걸더라도 실현될 가능성이 없으면 그건 말짱 도루묵이다. 그러니 공약의 숫자나 하겠다는 사업의 규모보다 실현가능성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옛날에는 당선되면 이것저것 다해준다고 뻥을 칠 수 있었는데 요즘은 ‘매니페스토’(참공약)라고해서 그 공약을 지킬 과정을 밝히게 한다. 2008년도에 개정된 공직선거법은 선거공약과 함께 각 사업의 목표, 우선순위, 이행절차, 이행기한, 재원조달방안을 게재하도록 하고 있으니 뻥을 치지는 않는지 잘 살펴보자. 이런 과정을 세세하게 밝히지 않는 사람이라면 일단 뻥쟁이로 봐야 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http://www.manifesto.or.kr/)에 가면 매니페스토운동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으니 참고하면 좋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도 여러 가지 선거정보와 선거자료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매니페스토운동에 참여한 사람이라면 일단 그 공약을 한번은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니 약간은 더 신뢰할 만하다.


그리고 실현가능성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공약이 시민들의 욕구를 얼마나 반영했는가이다. 시민들은 당장 필요한 게 복지와 교육인데, 후보자들은 건설이나 재건축 등 엉뚱한 공약을 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공약들이 아파트 재개발을 하고 커다란 편의시설을 세우고 다리를 놓고 도로를 까는 하드웨어 쪽에 집중되어 있다. 일단 뭘 많이 세운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세하게 따져봐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후보자들은 자기나 가족들이 운영하는 기업에 이득을 가져다줄 공약들을 자기 지역을 위한 것인양 선전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냥 선거를 대행해주는 회사에 맡겨서 지역의 욕구와 무관한 사업들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러니 그 사업이 실제로 필요한 건지, 재정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복지관이나 주민센터 등 주민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겠다고 하는 경우에도 그 시설이 얼마만한 규모로 어떤 위치에 세워지는지를 봐야 한다. 주민들이 잘 가지도 않는 곳에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편의시설을 세우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사를 할 때는 다리품을 파는 만큼 좋은 집을 구할 수 있다. 마찬가지이다. 후보자의 정책을 평가할 때도 품을 들이는 것만큼 좋은 사람을 대표로 뽑을 수 있다. 보통 후보자들은 선거사무소를 설치하니 그 사무실에 한번 방문해서 주인의 지위를 실험해 봐도 좋다. 직접 찾아갔는데 소 닭 보듯 한다면 주인을 제대로 섬길 준비가 안 된 머슴이니 바로 리스트에서 지우자.


그리고 선거법에 따라 각 후보자들은 선거운동기간 동안 거리유세나 전화, 문자, 이메일 등을 통해 자신의 정책을 알릴 수 있다. 대통령후보자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 지방의원들은 지역의 유선방송을 통해 자신의 정책을 홍보한다. 또한 지정된 공개장소에서 연설하고 대담을 나눌 수 있다. 그러니 싹수가 보이는 인물인지 그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여 보자.


또한 시민단체들은 보통 선거 때가 되면 후보들간의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곤 한다. 시간이 되면 한번 참석해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좀 들어볼 필요가 있다. 토론회에서 말을 잘 하는 후보자보다는 하나의 정책이라도 진심을 가지고 대하는 후보자에게 귀를 기울이면 좋다.



4단계: 기권하거나 무효표 만들기


요즘 정치는 시장원리를 따라 정당이 정책을 생산하고 유권자가 정책을 선택한다는 논리를 많이 내세운다. 유권자가 직접 정책을 고민하지 않도록 최대한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정책을 만들고 뜻을 받들겠다고 외친다.


그런데 쇼핑할 때는 마음에 드는 상품이 없으면 사지 않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 만일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는데도 자꾸 투표를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에 드는 후보를 찾는 것도 시민의 몫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를 떨어뜨리는 것도 시민의 선택 중 하나이다. 왜 이 물건이 마음에 안 드는지 알려야 파는 쪽에서도 고민을 좀 할 게 아닌가? 좋은 상품이 나올 때까지 상품을 사지 않으면서 나쁜 상품을 계속 떨어뜨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제대로 된 후보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 삐딱하게 굴자.


워낙 쓸만한 인물이 없는 선거판인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표소에 들어갈 때까지 망설이게 된다. 특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면 더더욱 그렇다. ‘에라, 모르겠다 한 표 먹고 떨어져라’는 심정으로 투표할 수도 있지만 한번 떠난 투표용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미국에는 ‘no bullet, but ballot’, 즉 총알 대신 투표권이라는 말이 있다. 총으로 해결할 일을 투표권으로 해결하라는 말이다. 그만큼 비중있게 써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


진정 시민이 주권자라고 여긴다면 시민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후보를 찾을 때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자를 거부할 권리를 누려야 한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투표용지에 기권란을 하나 만들어서 시민들이 지금 나온 후보들 모두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드러낼 수 있도록 보장하면 된다. 이런 선거를 거부하겠다는 시민들의 마음이 드러날 수 있도록 투표용지에 기권란을 만들자. 기표소에서 기권란을 그리고 그곳에 기표를 하자. 그렇게 기표하면 잘못 찍어서 생긴 무효표와 구분되니 우리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다. 투표율을 높이면서도 수동적으로 지금의 선거판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의 정치의지를 드러낼 수 있다. 그렇게 감시하는 시민들의 눈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당선된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 멋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 마뜩잖으면 무효표를 만들거나 투표를 거부해도 좋다. 찍을 사람이 없는 선거판을 거부한다는 점을 표현하는 건 주인의 권리이기도 하다. 유럽의 경우 실제로 투표거부운동이 벌어지기도 했고, 멕시코에서는 무효를 뜻하는 눌로(Nulo)를 찍자는 ‘Voto Nulo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눌로운동은 아무도 찍지 않는 것이 현직 정치인들을 뽑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벌어졌다고 한다.


다만 한국에서 이런 행위는 투표용지를 잘못 찍어 무효표를 만든 경우나 정치에 무관심해서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경우와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결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무효표를 만들거나 투표를 거부하려 한다면 최소한 웹사이트에서라도 그 운동의 취지를 알리는 블로그나 카페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의 동참을 유도해야 의미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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