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뜨는 키워드는 마을이다.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이 마을과 관련된 사업들을 진행하고 기업들도 마을과 관련된 이미지를 심심찮게 광고에 활용한다. 서점에 가도 마을과 관련된 책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애타게 마을에 매달리는 건 공동체라 상상해왔던사회관계의 허약함을 잘 드러낸다. 경쟁에 치여 쓰러져도 손 잡아줄 이 없고 집 앞 엘리베이터만 타도 불안하고, 아이들을 혼자 내보낼 수 없는 시대가 아닌가.

 

 불안의 시대이니 그 절박한 마음은 이해되지만 마을의 관계와 마을에서 가능한 삶을 손쉽게 구성할 방법은 없다. 그러다보니 억지가 생긴다. 예를 들어, ‘마을 만들라는 말이 지금도 유행하고 있는데, 과연 누가 마을을 만들 수 있을까? 마을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일까?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일하고 밤늦게 들어와 잠만 자는 수도권 베드타운의 주민들이 어떻게 마을을 이룰 수 있을까? 구도심과 신도심이 거의 분리된 경기도 신도시들에서 마을은 어떻게 가능할까? 마을을 만들겠다는 욕심에 앞서 이런 물음들에 먼저 답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작은 공동체를 외치며 마을을 쪼개고 쪼개어 실제로는 있던 관계마저 깨놓고선 마을을 만들었다고 우기는 건 억지이다. 건축도면처럼 마을을 물리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풍부한 관계와 밀도, 공생과 환대의 가치를 가진 마을을 뚝딱 만들어낼 방법은 없다.

 

 온갖 자원을 쏟아 부어 그럴싸한 모양을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몇몇 사람들의 눈에 아름다운 마을을 만드는 건 더욱더 위험한 일이다. 그런 마을은 생활의 근거지가 아니라 욕망의 실현지라서 요건에 맞지 않는 사람을 몰아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더불어 살기 위한 관계보다 혼자 더 잘 살기 위한 방편으로 마을이 얘기된다. 내가 사는 공간에 무엇무엇이 더 있어야 한다는 논리, 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삶을 위해 마을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마을 담론에 똬리를 틀고 있다. 그런데 나만 안전하면 그곳이 마을일까? 그렇다면 CCTV와 민간방법회사의 장비로 둘러싸인 곳에도 마을이 있을까? 온갖 잡무를 대신해주는 용역노동자들 없이 며칠도 버티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그들을 투명인간으로 만드는 아파트도 마을일까? 이방인을 환대하지 않는 공동체가 마을이라 불리는 게 옳을까? 이런 물음에 답하지 않고 마을을 만들었다 자신하는 건 자신들만의 안전한 공간을 만들려는 폭력과 다를바 없다.

 

 우리 시대 마을이 가진 모순은 지방으로 눈을 돌리면 더 분명히 드러난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한창 마을 만들기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라면, 경남 밀양과 제주 강정에서는 마을이 몰락하고 있다. “요대로 살다가 죽도록 해 달라는 절규가 마을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마을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제목을 권정생과 소박한 마을이라 짓고 서는 언제 선생의 얘기를 꺼낼까 궁금하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한 얘기들은 권정생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응당 하셨을 불편한 이야기이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권정생 선생만큼 관계와 마을을 많이 이야기한 사람은 없다. 권정생 선생의 이야기 어느 것에나 관계와 마을이 등장하고 선생만큼 마을과 공동체의 의미를 강조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 권정생의 마을은 성공한 사람들이 으스대는 마을이 아니라 홀로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부서져 내려앉으면서도 모여 살아가는 마을이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기에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때로는 자기 것이 부족하다고 아웅 대면서도 같이 살아간다.

 

 마을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 항상 행복한 것도 아니다. <몽실 언><한티재 하늘>에서 묘사되는 마을은 갈등과 폭력이 사라진 유토피아가 아니다. 현실의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사는 마을이다. 다만 그 공동체는 각자의 과잉된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고 생명을 지키는 공동체, 지금 이대로 살도록 내버려두라고 얘기하는 공동체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먹는 것 입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잘못된 향락은 더 큰 고통이 따른다는 것,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은 푸른 하늘 밑에서 여덟 시간 일하고 이웃과 더불어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는 믿음, “이미 주신 것을 가지고 함께 나눠먹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라는 믿음을 따르는 마을이다. “가난한 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 가난한 자 곁에서 함께 가난해지는 것 뿐이고 마을에 필요한 것은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받아들이며 함께 살려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노동과 생활이 바뀌지 않는 이상, 그에 기반을 둔 우리의 가치가 소박해지지 않는 이상 마을은 이루어질 수 없다. 마을과 함께 키워드가 되고 있는 귀농이나 귀촌도 마찬가지이다. 선생의 말처럼 MBC드라마 <전원일기>에 나오던 농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농촌은 30년 전까지는 가능했지만 지금은 절대 아니다. 고샅길에 거위가 꽥꽥거리며 다니지도 않고 아이를 핥아주는 삽사리(토종개)도 없다. 개는 모두 외국종 송아지만한 도사견 같은 큰 것이 아니면 발바리라고 부르는 작고 앙칼진 개뿐이다. 그것도 모두 목을 매달아놓고 키운다. 고샅길엔 경운기가 다니고 승용차와 트럭도 다닌다.” 살기 좋다고 알려진 농촌 마을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웃과의 관계를 불편해하고 자동차를 포기하지 않는 곳에 마을이 자리 잡기는 어렵다.

 

 

 

 

 하물며 농촌의 상황이 이럴진대 도시의 상황은 어떨까? 선생은 농촌 없이 도시가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제 한미FTA가 본격화되면 농촌의 상황은 더 어려워지고 선생이 우리 인간들의 삶의 근본이며 전부라고 믿었던 농업은 더 어려운 환경에 놓일 것이다. 길 떠난 사람을 위해 밥 한 그릇을 남기고 자연의 생명을 위해 고수레와 까치밥을 남기던 전통 역시 그와 더불어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엇을 믿고 마을을 얘기하는 걸까?

 

 그런 점에서 지금 떠도는 마을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만들어진 환상에 가깝다. 여전히 우리는 농촌이 사라져도 도시에서 마을이 가능하리라 믿고 많은 프로그램과 돈, 사람만 있으면 마을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런 환상이 마을의 사라짐에 따른 우리의 결핍감을 거짓되게 채워주고 우리의 감각을 둔하게 만들며 지금의 팍팍한 현실을 지속시킨다는 점이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사는 요지경 세상을 떠받칠 뿐이다.

 

 권정생 선생은 마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에 대한 자각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더불어 지금 우리가 마을을 노래하는 이유에 관한 지속적인 성찰을 요구했다. 이런 자각과 성찰 없이 마을의 이미지만 강요하거나 그 이미지만 팔아먹는 건 공동체의 파괴를 더욱더 가속화시키고 소수의 문화정치만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그곳에서는 관계로 풀리지 않는 문제를 돈과 힘으로 밀어붙이는 어리석음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곳은 결코 마을일 수 없다.

권정생의 글을 일부러 찾아서 읽지는 않는다. 원고지에 꾹꾹 눌러쓴 언어들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끔씩은 만수산 드렁칡처럼 좀 얽혀 살아도 될 터인데 그는 죽는 순간에도 자기 원칙을 지키며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사람은 못 되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고 다짐하는 우리에게 사람의 삶만을 말하기에 권정생의 글은 불편하다.

그래서 권정생의 사상을 평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도 몇 번이나 책을 펼쳤다 덮었다 했다. 몇 페이지 읽고 마음이 무거워져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권정생을 자꾸 성인(聖人)으로 만드는 것은 그가 원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의 앎을 다루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권정생에 관한 이런저런 해석에 하나의 해석을 더 보태려 한다.

이 글은 권정생의 사상을 되짚어보려 한다. 「몽실언니」나 「강아지똥」의 작가 권정생보다 「팥죽 할머니」의 작가 권정생에 주목하려 하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따뜻한 인간애나 자기희생보다 모순을 드러내고 바로잡으려는 반역자로서의 모습에, 애국과 국가를 반대한 반역자로서의 모습에 주목하려 한다. 그가 생전에 무엇을 불편해 했고 어떻게 반역하려 했는지를 말해야 권정생의 사상이 좀 더 온전해질 것 같다.

 

1. 사람의 사상

건강한 것이 어떤 건지 잊어버렸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권정생의 몸은 평생 고통을 겪었고, 가족과 친구, 이웃들의 잇따른 죽음도 그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의 글 어디서나 고통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고통을 겪는 사람은 고통에서 무조건 벗어나려 하기 마련인데, 권정생이 택한 방법은 그 고통과 함께 사는 것이었다. 고통을 짊어진 채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 고통을 같이 짊어질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것, 그것이 그의 과제였다. 누구라도 피하고 싶을 그 고통을 대면하고 살았기에 그를 보는 이의 마음은 한편으론 감동을, 다른 한편으론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런 고통이 권정생 개인의 고통은 아니었다. 이 고통은 지금도 무수한 죽음과 고통을 대면해야 하는 한국사회의 고통이기도 했다. 권정생 스스로도 이 고통을 개인적인 것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고통은 벗어나면 안 되는 것이기도 했다.

함석헌의 글 중에 「하나님 발길에 채어서」라는 글이 있다. 그 글에서 함석헌은 자신이 퀘이커를 선택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묘사한다. “어떤 때는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스스로 나는 이상주의다 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을 실지로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모른다기보다 어느 의미로는 도리어 너무 알아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안과 밖에 어떻게 먼 것, 나와 남 사이가 어떻게 떨어진 것, 앞이 어떻게 될 것이 너무도 빤히 되어 주저주저 하게 됩니다. 그러노라면 주위의 사정이 나를 몰아쳐서 가야 할 데로 가고야 말게 합니다. 가놓고 보면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하게 되지만, 그것은 결코 내가 한 것 아닙니다. 생각했던 것은 하나도 실현해 본 것 없고 나간 것은 한 발걸음도 내가 내켜 디디었다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를 “이날껏 하나님의 발길에 채어오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퀘이커가 된 것도 아마 잘돼서 됐다기보다는 잘못돼서 된 것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분명히 피할 수 없는 발길에 채인 느낌이 거기 있습니다. 두려움과 화평, 슬픔과 감사, 부끄러움과 자랑의 뒤섞인 것이”

권정생의 절판된 책 중에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종로서적, 1986년)가 있다. 그 책에 실린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라는 글에서 권정생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나사로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개들에게 헌데를 핥이면서 부자가 먹던 찌꺼기를 얻어먹던 나사로였지만, 그는 하늘나라를 볼 줄 알았다. 그래, 그것이면 족한 것이다. 나는 거지 나사로를 알고부터 세상을 보는 눈을 달리했다. 천국이라는 것, 행복이라는 것,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여태까지와는 거꾸로 보게 된 것이다.” 권정생은 이 글에서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사람을 찾아다니는 사람으로 자신의 변화를 설명하고, 루쉰을 인용해 “아직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 어린이가 있을지 모른다. 아이들을 구하라”라고 말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면서도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처지, 그것이 권정생의 삶이었다.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 굴러가는 삶과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 하늘나라를 보게 된 삶에서 느껴지는 공통점은 숙명이다. 사실 분단과 내전을 경험한 나라에서 평화를 열망하는 퀘이커가 된다는 건 정치적인 자살에 가깝다. 그리고 폭력과 풍요로 “착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없어진” 걸 알면서도 사람을 찾아 나서겠다는 건 종교적인 순교에 가깝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그런 선택을 내린 것은 바로 우리의 역사 때문이다. “갈릴리 들판에서 그가 자기 민족의 수난사를 공부했듯이, 우리도 하느님과 함께한 우리의 민족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칩시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 혼자서가 아니라 우리 인간들과의 공동작업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함석헌이 수난사를 공부하며 씨알을 찾았다면 권정생은 그 수난사에서 사람을 발견했다.

공동작업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하느님 나라에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함께할 씨알과 사람이지 제도나 기구 또는 제도나 기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아니다. 수난을 겪어온 사람들에게 또 다른 복종과 굴욕을 강요하는 제도는 반역의 대상일 뿐이다. “나는 지금 20여년 전에 내가 구상하고 꿈꿨던 교회는 벌써 전에 잊었다. 교회는 새삼스레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와 온 우주가 바로 하느님의 교회”라는 권정생의 말은 그가 함석헌과 같은 꿈을 꿨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앞서 인용한 말에서는 당위를 넘어서는 어떤 절박성과 확신이 드러난다. 특히 권정생의 이야기가 ‘사람을 사랑하라’라는 당위를 넘어서는 것은 사랑할 사람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절박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절박성과 확신이 맞닿아 있는 이유는 “인간의 눈으로만 보지 말고 하늘의 뜻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존재함을 믿어야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는 그의 말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권정생은 이 절박성과 확신을 품고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권정생은 하느님과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었을까? 하늘나라를 볼 수 있는 나사로 권정생은 그 나라를 몸으로 살아가는 나라로 묘사한다. “입으로 설교하는 목회가 아니라 몸으로 살아가는 목회자가 있어야 한다. 밭을 갈고 씨뿌리고 김매고 똥짐을 지는 농군이 바로 이 땅의 목회자다. 창세기의 하느님나라는 말씀으로 되었지만 지금은 몸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하느님나라가 다시 창조되고 천국이 이 땅에 이루어진다. 몸으로 살지 않고 수천 만번 주기도문만 외운다고 하느님나라가 이루어지는 건 절대 아니지 않는가.” 똥짐을 지는 목회자가 있는 세상, 부정을 규탄하는 용감한 시민이 있는 세상, 좀 더 춥게 좀 더 불편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 세상, 그곳이 바로 하늘나라이다.

그래서 하늘나라로 다가서는 방법은 가난이다. 가난은 몸을 쓰게 하고 불편하게 만들고 때로는 고통을 주지만 그걸 받아들일 때 행복도 찾아온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노동에 있”고 “노동은 가난이 무엇이고 고통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한다. 가난하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고 인간은 행복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가난은 행복의 필수조건이다. 권정생에게 가난은 결핍이 아니었고, 가난은 떳떳한 삶이자 평화와 행복의 기약이자 “함께 사는 하늘의 뜻”이었다. 마냥 행복한 건 아니지만 그 소박한 삶 속에 사람이 존재한다.

그런데 가난하지 않은 우리가, 곳곳에 풍요의 성전을 세우는 우리가 가난한 그의 글을 읽으며 불편하지 않다면 그건 좀 이상한 일이다. 권정생의 글들이 지금껏 그림책이나 동화로 널리 읽히는 걸 보면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고를 아이들의 권리를 빼앗고 싶지 않다며 책 소개 티브이 프로그램인 <느낌표>까지 거부했던 권정생인데 우리는 그 권리를 빼앗으며 권정생의 글을 아이들에게 읽히고 있다. 권정생이 강조한 건 몸으로 행복을 느끼는 건데 그걸 머리로만 느끼도록 만드니 모순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성장과 풍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회는 가난조차도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서 진정 가난한 삶을 조롱하는 게 아닐까. 그러면서 권정생의 불편한 이야기는 누구나 받아들이며 감동을 느낄 만한 말랑말랑한 이야기로 해석되고, 권정생이 고통을 견디며 찾아 나섰던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2. 애국자 없는 세상


권정생의 사상을 줄여 말하라면 주저 없이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라는 시를 예로 들겠다. 이 세상 어디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평화로울 것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시는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라며 끝을 맺는다.이념은 버릴지언정 애국은 버리지 못하는 우리에게 권정생은 애국자가 될 시간에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라고 권한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사람들, 국사와 국익의 관점에서 세상사를 해석하려는 사람들에게 권정생은 자신이 겪었던 1944년 말의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의 끔찍한 현실을 들려준다. 그 전쟁의 포화 속에 누가 있었는지, 왜 그들이 죽어야 했는지를. 전쟁의 비극을 몸소 체험한 그였기에 국가에 대한 반대는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생각이 다르고 이름이 다르다고 한핏줄끼리 원수가 되라고 강요”하는 분단상황이야말로 모든 문제의 원천인데, 권정생은 이를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전쟁이란 “더러는 영웅도 되고 뜻밖의 횡재를 얻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이 씻지 못할 상처를 안고 비극의 인생을 살다가 끝마”치는 비극일 뿐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전쟁은 단순히 “남침도 북침도 아닌 원격조정에 의한 약소국의 비극”이 아니다. 이것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지식인의 해석일 뿐이다. 그 사건을 몸으로 살아야 했던 사람은 “아비와 자식이 서로 총구멍을 맞대고 싸우는 전쟁도 전쟁일까? 공비가 되어 숨어 다니는 아비가 있고 그 자식은 멋도 모르고 공비토벌가를 목청껏 불러대는, 그런 잔인한 비극이 또 어디 있을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그 모순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어느 편에도 서지 말라고 권한다. 애국은 전쟁의 다른 얼굴이고, 마크 트웨인이 ‘전쟁을 위한 기도’에서 들려주었듯 전쟁의 깃발은 애국의 열광 속에 휘날리니까.

 

우리의 애국 깃발은 남과 북에서만 휘날리지 않는다. 우리 몸속에 DNA처럼 새겨진 반일감정에 대해서도 권정생은 “벚꽃이 일본의 국화라고 해서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여느 꽃나무처럼 벚꽃도 이 땅에 자라고 꽃피고 시들어 죽어가는 목숨일 뿐”인데 그것을 베어내는 건 또 다른 폭력이 아니냐고 묻는다. 국가주의에 물든 우리의 시선에는 잡히지 않는 생명들이 그의 시선에 모습을 드러낸다.

 

권정생의 글 곳곳에서 생명을 파괴하는 국가를 거부하고 그에 맞서려는 반역의 의지가 드러난다. 예수의 입을 빌어 권정생은 자신의 사상이 “무소유, 무계급, 무정부의 세 가지가 갖춰진 나라”, “국경도 인종차별도 없는 나라”, “모두가 한 형제이며 평등하”고 “아무도 다스리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법칙대로 사는 나라”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마치 꿈에서 덜 깬 듯한 소리같지만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새누리당이 비정규직 차별금지를 외치는 세상이니 무정부만 실현되면 하늘나라는 멀지 않았다.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국가의 눈으로, 마치 국가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권정생만큼 급진적인 사상가는 드물다. 권정생의 문학과 사상이 우리 사회에 절실한 이유는 국가로부터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고 사유를 확장시킬 수 있어서이다.

 

국가에서 벗어난 권정생의 소망은 이웃과 더불어 가난하게 사는 것이었다. “이미 주신 것을 가지고 함께 나눠먹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다. 그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경제정의나 사회주의라는 말로 표현되었을 뿐”이라는 명쾌한 논리는 교회를 세워도 뾰족탑이나 십자가, 간판을 없애고 오두막을 지어 맨마루 바닥에서 세상살이 얘기를 나누고 부처님 말씀, 점쟁이 할머니 말씀, 마을서당 훈장님 말씀도 듣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소망으로 드러난다. 교회가 사람을 찾고 사람에게서 배우는 공간으로 바뀌는 걸 그는 꿈꿨다.

그런데 권정생이 거부한 국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와 달랐다. 권정생에게 국가는 정부체계나 제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국가는 우리의 생활공간 곳곳에 존재한다. 권정생에게는 교회도 국가이고 학교도 국가이고 농촌도 점점 국가로 변해갔다. “이젠 농촌은, 삶의 터전으로서 농촌은 없다. 그냥 먹을 것을 생산해내는 식품생산단지로 변한 것”이라는 말처럼, 먹고 교육을 받고 생활하는 공간이 국가로 변할수록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권정생의 몸부림도 더 강해졌다. 그가 점점 더 완고한 근본주의자로 변신했던 건 그의 탓이 아니라 그걸 강요하는 세상의 탓이었다.

 

그럼에도 권정생을 바라보고 얘기하는 우리들은 그 꿈을 ‘은둔자’로 가둬 놓고 그 삶을 소비한다. 가둔다는 표현이 거북할 수 있지만 우리가 기꺼이 권정생의 편에 서고자 했다면 그가 세상을 계속 불편해 했을까? 평생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 왜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왜 이다지도 내 곁엔 사람이 없을까? 모두 기계이고, 로봇트야. 가슴도 없는, 돌뭉치거나, 솜뭉치, 아니면 고무풍선들 뿐이야.”라고 한숨을 쉬었을까?

 

“이 세상의 모든 교육은 선하고 아름답게 살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좀 더 편리하고 풍요하게 살기 위한 교육”이고, “일등을 해야만 돈과 권력을 잡고 행복해진다는 논리”가 판치는 세상에는 그가 숨을 쉴 곳이 없었다. 권정생이 보기 싫어할 만한 끔찍한 세상을 자신이 떠받들고 있으면서도 자기 아이들에게는 강아지똥과 몽실언니의 아름다움을, 권정생의 삶을 얘기하는 건 ‘위선’이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우리가 그를 가둬놓고 그가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세상을 만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건 불편함을 제거한 착한 사람 권정생이 아니라 반역자 권정생이다. 국가에 반역하고 교회에 반역하고 풍요를 강요하는 경제에 반역했던 권정생이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다.



3. 반역의 언어, 지방의 언어


권정생이 살아있었다면 지금도 많은 눈물을 흘릴 것이다. 약하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강정마을, 두물머리, 밀양, 청도, 삼척, 영덕, 곳곳에서 싸우고 있으니까. 그들이 곧 권정생이고, 농민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사람들이 그의 동지이니까. 언제쯤이면 그들의 눈물이 웃음으로 바뀔 수 있을까?

 

권정생은 전통 이야기를 아이들의 동극으로 각색한 「팥죽 할머니」에 자신의 혁명론을 담았다. 남편과 아들의 원수를 갚아야지, 갚아야지 하면서도 호랑이 앞에서 “힘이 없구나, 차라리 잡아 먹어라. 날 잡아 먹어라”고 외치는 건 이 땅의 농민들이다. “농사꾼을 통째 잡아먹으면 너도 죽는다”는 말에 “난 안 죽는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은 바로 힘을 가진 기득권층이다. “힘이 인간을 지배하고 자연을 파괴하며 목숨을 짓밟아 버리는 것이라면 그건 힘이 아니라 바로 악마”라는 권정생의 절규는 그들을 향한다.

 

할머니가 쒀준 팥죽을 먹고 호랑이에 맞서는 것들은 알밤을 제외하면 송곳, 홍두깨, 멍석, 지게이다. 이 모든 것이 일하는 사람들의 도구이다. 팥죽을 먹고 힘을 낸 물건들이 함께 호랑이를 잡는다. 이제는 마음 놓고 농사짓고 무엇도 빼앗기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건 사냥꾼이 아니라 “하늘님은 언제나 농사꾼 편이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연대’이다. 강정마을의 주민들이 쌍용자동차 문제해결을 요구하고 용산참사를 경험한 주민들이 강정평화대행진에 참여하고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용산참사의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것이 연대이듯, 이 강력한 연대는 무서운 호랑이를 실컷 두드려 패고 강물에 빠뜨려 죽인다. 이것을 보면 권정생은 자신을 희생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독재자와 억압자에게 반역하고 그를 제거하고 해방의 농악, 해방춤을 추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권정생은 억압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도 외부의 힘에 호소하지도 않았다. 「처음으로 하느님께 올리는 편지」에서 도리어 권정생은 “하느님 아버지, 제발 정신 좀 차려 주십시오. 지금은 깨어날 때인데, 하느님께서 도리어 정신없이 나쁜 곳에 이용만 당하고 계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나쁜 사람들의 힘을 거둬 가 주십시오. 진짜 하느님이라고 분명히 보여 주십시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 힘없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서러운 사람들의 아버지라는 것을 드러내 보여 주십시오.”라고 요구한다.

 

「김목사님께」라는 글에서도 권정생은 마냥 겸손하고 복종하는 인간이 최고의 가치일 수 없고 겸손과 복종의 교리가 지배의 교리로 바뀌었음을 성찰한다. “사랑 사랑 하다 보니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될 사실까지 덮어 버리고 양가죽을 뒤집어쓴 이리 같은 사기꾼이 되어 버렸습니다. 겸손은 무조건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알량하고 비굴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복종만이 신앙의 도리로 알고 맹종하다 보니, 이젠 마귀의 명령에도 굽신대는 절대적인 착한 인간이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현주 목사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성서라는 책을 맹신하지 말자. 아닌 것은 아니고,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분명히 말하자꾸나. 우리는 그래서 비굴하지 말자. 하느님이란 권력 앞에 아첨하는 못난 인간이 되지 말자. 우리는 천국엔 못 가도 영혼을 죽일 수는 없다. 불의가 가득 찬 천국에 가느니보다 깨끗한 지옥에서 살자.”라고 다짐한다. 권정생은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고 하느님께 제대로 일을 하라고 요구하는 반역자였다.

 

그는 폭력을 바로잡고 농민 편을 대놓고 드는 알밤이 되기를, 송곳, 홍두깨, 멍석, 지게가 되기를 원했다. 다만 “압제자를 향해 피를 흘리는 저항과 투쟁도 해야 하지만, 진정한 혁명은 자신의 삶이 바로서야 한다”며 권정생은 “무력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아닌, 밑바닥에서의 진정한 혁명”을 꿈꿨다.

 

권정생은 평화를 추구했지만 억압을 묵묵히 받아들이지 않았고 마냥 겸손하게 복종하지도 않았다. 권정생은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권정생은 시내의 한살림 식품가게에서 무공해식품을 산 뒤에 동네에서 자살한 농부를 떠올리며 “진짜 한살림은 이웃끼리 마을사람끼리 서로 사고팔고 주고받으며 살아야 되는데 가까운 이웃은 다 버리고 먼 데서 깨끗한 음식만 먹겠다고 한 것이 정말 잘한 것일까? 먹는 것만 깨끗하게 먹는다고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일까? 정말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것일까?”라고 물었다. 실컷 쓰고 편하게 살자는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런 삶을 바꾸지 않는다면 유기농이 무슨 의미일까? 제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기본적인 원칙을 되짚는 권정생의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런 반역의 기반은 점점 사라졌다. “농촌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생명의 원천이며 정신적 고향”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미 농촌은 그런 고향이 아니다. 농촌의 언어였던 사투리는 사라졌고 “옛날 일본 식민지였을 때 우리는 말과 글과 쌀을 함께 빼앗겼듯이 이제 농촌의 말과 식량을 도시에 빼앗기고 있다.”

 

그런 세계에서 권정생이 주목했던 또 다른 반역의 방식은 언어, 즉 시의 언어를 살리는 것이었고, 중심의 언어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의 언어, 토착의 언어로 얘기하는 것이었다. 구비문학이 ‘창작문학의 어머니’일 뿐 아니라 “문화라는 이물질이 전혀 없는 순수한 농민들의 감정과 생각과 삶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생각했기에, 권정생의 작품은 풍부한 사투리를 그대로 옮겼다. 권정생은 매끄럽게 다듬어지기는 했지만 어딘가 거짓되어 보이는 표준어보다 아름다운 사투리를 좋아했다. 표준어는 지역의 자연에 맞춰진 삶을 부끄러워하게 만들고 표준화된 풍요를 강요했기에, 권정생에게 사투리는 의식적인 반역의 도구였다.

 

표준화된 언어로 정리되지 않은 삶 또는 정리될 수 없는 무수한 삶들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토착의 언어였고,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사투리는 반란과 저항의 언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권정생은 시의 언어를 시들게 하는 자연적인 삶에 대한 이런 부끄러움을 거부했다. 아이들을 시인으로 만드는 건 교육이 아니라 바로 자연이다. “봄날의 비릿한 풋내와 작은 꽃들”, “여름날의 소낙비와 무지개와 지루한 장맛비”, “비지땀을 흘리며 들판에서 일하는 삶의 현장”, “고통의 대가로 얻어지는 가을의 풍성함, 겨울의 추위와 그 추위를 이겨 내는 생명들의 힘찬 인내”, “씨 한 톨 심어 놓고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마음, 어미 닭이 품은 알에서 병아리가 깨기를 기다리는 마음, 보리 이삭이 패고 씨알이 누렇게 익어 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을 느껴야 비로소 시인이 될 수 있다. 시는 단지 몇 줄의 노래를 읊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의 언어라는 권정생의 말은 지금 시대에 반역할 무기가 무엇인지를 또 알려준다.

 

전쟁같은 경쟁과 획일화된 언어를 받아들이면서 힘 없는 사람들의 세상, 가난한 사람들의 세상이 만들어지길 기대하는 것은 헛되다. 지금 반역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런 세상은 오지 않는다. 우리는 이 반역의 언어를 살리고 반역자를 살리고 있는가?



4. 나오며


깔끔하고 예쁘게 만들어진 권정생의 책은 왠지 불편하다. 그런 점에서 새로 나온 『빌뱅이 언덕』보다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가 훨씬 더 권정생답다(절판된 책이 다시 부활한 건 반가운 일이지만). 그리고 새 책에서 예전 책에 실렸던 편지글이 사라진 건 참 안타깝다. 권정생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였는데 말이다.

 

예를 들어, 이현주 목사에게 쓴 편지에서 권정생은 하나됨에 관해 되묻는다. “교인들과 ‘하나’가 되지 못해 괴롭다니, 현주는 욕심꾸러기구나. 대체로 지도자란 분들은 하나 되기를 원하고 있지, 오해하지 말고 생각해 보자. 우리가 지금 총화란 말도 곧 지도자인 그 분의 뜻대로 하나 되어 달라는 뜻일거야. 백 미터를 뛰는데도 똑같이 출발해서 똑같이 꼴인하라는 지도자의 기대는 억지가 되지 않을까? 사람은 다 다르다. 달라야 된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없는 거지 다른 이유는 없다. 하나 못 되는 것이 정상이고, 그것이 올바른 교육이고 착한 지도법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왔고 주장해 왔다. 똑같은 것을 싫어하는 내 성미 때문인지 모르지만 하나되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을 게다. 물론 똑같은 것과 하나 되는 것은 다르겠지만 대체로 현주가 말하는 ‘하나’는 ‘나와 꼭 같기’를 원하는 것일 게다. 냉정히 생각해 보기 바란다.” 권정생은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해주길 원하지 않았을까.

 

권정생에게 문학은 삶의 문제를 드러내고 이를 대면하는 방식이었다. 삶을 드러내기 위해 많은 양의 책을 읽고 세상의 소식을 접하며 그는 고민했다. 그리고 이를 대면하기 위해 여러 작품을 쓰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성찰했다. 문학이란 “어느 시대나 착하면 잘 살 수 없”다는 점을 밝혀야 하고, “아동문학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모두가 착하고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쓰고 읽는 것으로 되”도록 하는 게 권정생의 생각이었다.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애국과 풍요를 버리고 자연과 더불어 시를 노래하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권정생과 그의 문학을 단순히 ‘착한 사람’, ‘착한 문학’으로 규정하는 게 불편하다. 외려 그의 삶과 문학은 편안하고 복종하는 삶과 문학을 뒤엎으려 했다. 권정생은 반역자였고 반역의 기운을 불사르다 숨을 거뒀다.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도 그는 시대에 반역했다. 사건이 의례화되면 그 정신은 사라지고 불편한 진실은 적당히 버무려진 의례가 된다. 권정생은 자신을 그렇게 기억하길 원할까? 추모 5주년에 그 삶을 다시 생각하며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그 세상에서는 평안하시길, 아니 그 세상에서도 반역하시길...

제1장 목적과 적용대상

1조 (목적) 이 규정은 서울녹색당 운영위원회의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을 목적으로 합니다.

2조 (적용대상) 이 규정은 서울녹색당 운영위원회에 적용합니다.


제2장 개회와 폐회

3조 (의사정족수) 회의는 재적 과반수의 참석으로 성립합니다. 단, 재적 1/3 이상 참석으로 개회할 수 있습니다.

4조 (재적의 총수) 1. 재적자의 수는 회의 개최일 현재 자격을 가진 사람의 총 수에서 사고자의 수를 제하여 산출합니다.

2. 사고자의 수는 천재지변, 또는 기타 재난, 결혼, 구속, 수배, 형의 집행, 질병, 직계존비속의 결혼, 본인 및 배우자의 직계존비속의 장례 등으로 인해 회의 참석이 불가능한 사람과 서울녹색당 운영규약 제 6조에 따라 운영위원회 참석 의무를 3회 이상 이행하지 않은 사람의 수입니다. 단, 운영위원회 참석 회의 개최 전에 의장이 사고자의 성명과 사유를 확인한 경우에만 그 수에 포함합니다.

5조 (성원보고) 1. 의장(공동운영위원장 중 1인이 맡습니다) 개회선언을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성원을 보고하여, 재적자의 수가 의사정족수에 달했음을 밝혀야 합니다.

2. 성원보고를 할 때는 회의성원 총수, 사고자의 수, 재적자의 수, 의사정족수, 재석자 수를 차례로 공표합니다.

6조 (개회선언) 성원보고에 이의가 없으면 의장은 회의 일시와 회의의 공식 명칭을 밝히고 개회를 선언합니다.

7조 (유회) 의장은 사전 공고된 시각에서 1시간이 지나도록 정족수에 달하지 못할 때 유회를 선포할 수 있습니다.

8조 (정회) 의장은 필요한 경우 정회를 선포하여 회의를 중지할 수 있습니다. 의장이 정회를 선포할 때에는 속개할 시간을 함께 공지해야 합니다.

9조 (폐회) 회순에 따른 안건 처리가 모두 끝났을 경우, 기타 불가피한 사정으로 회의 진행이 더 이상 불가능할 경우, 의장은 폐회를 선언하고 회의를 끝냅니다.


제3장 안건

10조 (안건) 1. 공동운영위원장은 안건을 회의 7일 전까지, 회의자료는 회의 3일 전까지 공개해야 합니다.

2. 운영위원은 운영위원 2인 이상, 또는 당원 1% 이상의 서명에 의한 찬성을 얻어 안건을 발의할 수 있습니다. 안건 발의자는 회의개최일 3일 전까지 의안 내용과 찬성자 명단, 찬성자 서명을 문서로 정리하여 공동운영위원장에게 제출해야 합니다. 단, 긴급한 경우에는 회의당일 회순 통과 이전에 위 요건을 갖춰 발의할 수 있습니다.

3. 의장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안건을 발의할 수 있습니다.

4. 서울녹색당 운영규약에 의거, 온라인상 제안된 의견도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습니다.

11조 (안건 철회) 10조 3항의 안건 발의자는 찬성자 모두의 동의를 얻어 안건을 철회할 수 있습니다.

12조 (일사부재의) 의결이 끝난 안건은 같은 회의에서 다시 논의할 수 없습니다.


제 4장 발언

13조 (발언 신청과 허가) 1.발언을 하고자 할 때는 먼저 손을 들고 의장에게 발언권을 신청합니다.

2. 다른 성원의 발언이 끝나기 전에 발언 신청을 해서는 안됩니다.

3. 참관인은 운영위원들의 의제에 관한 발언이 끝난 후에 의장의 허가를 얻어 발언할 수 있습니다.

14조 (발언시작 및 회수의 제한 등) 1. 발언자는 소속과 성명을 밝힌 후 발언 취지를 간단히 설명하고 발언을 시작합니다.

2. 동일의제에 대하여 1인당 2회의 발언을 할 수 있습니다. 동일 지역모임, 또는 동일의제모임 및 동일한 기타 당원모임의 운영위원이 중복발언할 경우, 1인당 발언회수에 포함합니다. 다만, 다음 각 호의 경우에는 발언의 회수에 포함하지 않습니다.

1)질의에 응답할 때

2)발의자 또는 동의자가 그 취지를 설명할 때

3)의장의 허가를 구했을 때

15조 (발언시간의 제한) 1. 의장은 발언 시간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2. 정한 시간 이상의 발언시간이 필요한 경우 발언자는 의장의 허가를 얻어야 합니다.

16조 (발언 중지 명령) 다음 각 호의 경우 의장이 발언의 중지를 명할 수 있습니다.

1. 발언이 상정된 안건의 논의 범위를 벗어난 경우

2. 의사진행동의 또는 긴급동의를 신청하고, 의제 내용에 대해 발언한 경우

3. 의장의 허락 없이 발언시간 제한을 어긴 경우

4. 폭력적인 발언을 한 경우


제5장 안건 토의

16조(회순) 1. 의장은 발의된 안건들의 논의 순서를 정하여 회순으로 발표하고 회의 성원들의 의견을 물어서 확정합니다.

17조 (안건 상정) 1. 의장은 회순에 따라 안건을 하나씩 상정합니다.

18조 (제안설명) 안건 상정 직후 의장이 지명하는 자, 또는 안건 발의자 중 1인이 제안설명을 합니다.

19조 (질의와 토론) 1. 회의참가자는 상정된 안건의 발의자 또는 수정동의자에게 질의할 수 있다.

2. 질의와 토론의 종결 여부는 의장이 회의참가자의 의사를 물어 결정합니다.


제6장 의결

20조 (의결 정족수) 별도의 규정이 없는 안건은 재석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합니다.

21조 (표결 시작) 1. 표결을 시작할 때 의장은 표결할 안건의 제목과 함께 표결 시작을 선포합니다.

2. 의장이 표결 시작을 선포한 이후 표결이 끝날 때까지 표결 절차에 관련된 것 이외의 발언은 금지됩니다.

22조 (표결방법) 1. 표결은 실명으로 합니다. 단, 의장은 회의 성원들의 의견을 물어서 표결방법을 따로 정할 수 있습니다.

2. 의장, 또는 의장이 지명한 진행요원은 모든 안건에 대해서 찬성, 반대하는 회의참가자의 실명을 기록합니다. 단, 실명 투표가 아닐 경우, 또는 의장이 회의참가자의 실명을 기록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기록하지 않습니다.

23조 (의결 선포) 표결이 끝나면 의장은 결과를 발표하고 그에 따른 결정 내용을 낭독한 후 의결이 이루어졌음을 선포합니다.


제6장 의사록 및 회의결과

24조 (회의결과) 회의결과는 다음과 같이 구성됩니다.

   1. 회의 일시와 장소

   2. 출결 상황 : 재적자 수, 사고자 수와 명단, 참석자 수와 명단, 불참자 수와 명단

   3. 회순

   4. 안건과 안건에 부속된 서류

   5 의결 내용, 의결 방법, 표결 결과(실명 표결의 경우, 찬반자, 기권자 실명 포함)

25조 (의사록의 작성) 1. 의장은 개회선언 후 회의 참석자의 동의하에 수인의 서기를 지명합니다.

2. 서기는 의사록 작성을 위한 녹취와 기록을 담당합니다.

3. 의사록은 녹취록, 또는 녹음파일로 구성됩니다.

26조 (의사록 및 회의결과의 공개) 1. 의장은 회의일 7일 이내에 회의결과를 당원에게 공개합니다.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녹음파일 또는 녹취록을 공개할 수 있습니다.

2. 공고는 서울녹색당 다음 카페 게시판을 통해 합니다.

3. 각 회의 참석자 과반의 의결에 따라 특정안건 혹은 특정회의 전체에 대한 의사록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으며, 공개대상자의 범위 및 비공개 기간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제7장 의사록 및 회의결과의 정정

27조 의장은 필요할 경우 의결 취지에 부합하도록 의사록의 내용을 정정할 수 있습니다.

28조 (회의결과의 정정) 1. 각 회의참석자는 회의 결과의 내용이 사실과 다를 경우, 의장에게 회의 결과의 정정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2. 의장은 정정 신청이 있은 후, 즉시 신청내용을 녹취자료와 대조 확인하여 정정 여부를 결정하고, 신청자에게 결정내용을 통보해야 합니다.

3. 회의결과가 정정될 경우, 즉시 그 내용을 공개해야 합니다.


제8장 질서

29조 (의장의 질서유지)

1. 의장은 개회선언 후, 몇 명의 진행요원을 지명합니다. 진행요원은 회의규정 준수, 질서유지, 표결 등에 있어서 의장을 보좌합니다.

2. 의장은 회의 참가자가 회의 중에 이 규정에 위배하여 회의장의 질서를 문란케 하거나 조직의 위신을 손상케 하는 언동을 할 때 다음과 같이 징계를 내릴 수 있습니다.

1) 주의 : 고의성이 없는 가벼운 규정 위반의 경우.

2) 경고 : 주의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규정 위반이 반복될 때, 분명한 고의성을 가지고 회의 진행을 방해할 때.

3) 발언 취소와 사과 : 다른 참석자를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행위를 한 경우, 조직의 위신을 실추시키는 언동을 할 때.

4) 퇴장 : 경고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고에 해당하는 행위를 반복할 때, 발언 취소와 사과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때, 기타 언동을 통해 회의 진행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한 때


부칙

제 1조 이 규정은 운영위원회에서 의결한 때로부터 그 효력이 발생합니다.

제 2조 이 규정은 운영위원회에서 개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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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노동당 제5호 회의규정    

2. 2002.   4차 중앙위원회 개정   

3.                                         2003. 4. 1.  1차 중앙위원회 개정

4. 제1장 총칙

제1조 (목적) 이 규정은 당대회, 중앙위원회, 전국집행위원회, 상무집행위원회의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을 목적으로 한다.

가.

나. 제2조 (적용대상) 이 규정은 당헌이나 다른 당규에서 다르게 정하지 않는 한, 당대회, 중앙위원회, 전국집행위원회, 상무집행위원회에 적용된다.


제3조 (용어의 정의) 이 규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① “의장”이라 함은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회의를 주재하고 진행하는 자를 의미한다.

  ② “회의참가자”라 함은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회의에 참석하여 발언하고 표결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 자로서 실제로 회의에 참가한 자를 의미한다.


제2장 개회와 폐회


다. 제4조 (의사정족수) 모든 회의는 재적 과반수의 참석으로 성립한다.

라.

마. 제5조 (재적의 총수)

  ① 재적자의 수는 회의 개최일 현재 자격을 가진 사람의 총 수에서 사고자의 수를 제하여 산출한다.

1)   ② 사고자의 수는 결혼, 구속, 수배, 형의 집행, 입원, 직계존비속의 결혼, 본인 및 배우자의 직계존비속의 장례 등으로 인해 회의 참석이 불가능한 자의 수이다. 단, 회의 개최 전에 의장이 사고자의 성명과 사유를 확인한 경우에만 그 수에 포함한다.

2)   ③ 의장은 성원보고 전에 이미 확인한 사고자의 수와 성명, 사고사유를 밝힌다. 다만, 당대회와 중앙위원회의 경우는 사고자의 성명을 생략할 수 있다.


바. 제6조 (성원보고)

1)   ① 의장이 개회선언을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성원을 보고하여 재석자 수가 의사정족수에 달했음을 밝혀야 한다.

2)   ② 성원보고를 할 때는 회의성원 총수, 사고자의 수, 재적자의 수, 의사정족수, 재석자 수를 차례로 공표한다.

3)

사. 제7조 (개회선언) 성원보고에 이의가 없으면 의장은 회의 일시와 회의의 공식 명칭을 밝히고 개회를 선언한다.

1)

아. 제8조 (유회) 의장은 사전 공고된 시각에서 1시간이 지나도록 정족수에 달하지 못할 때 유회를 선포할 수 있다.

자.

차. 제9조 (정회) 의장은 필요한 경우 정회를 선포하여 회의를 중지할 수 있다. 의장이 정회를 선포할 때에는 속개할 시간을 함께 공지해야 한다.

카.

타. 제10조 (회의 중 정족수 미달) 의장은 회의 중 정족수에 달하지 못하는 것이 확인될 때 산회 또는 폐회를 선포한다.

파.

하. 제11조 (폐회) 회순에 따른 안건 처리가 모두 끝났을 경우, 기타 불가피한 사정으로 회의 진행이 더 이상 불가능할 경우 의장은 폐회를 선언하고 회의를 끝낸다.

거.


제3장 의제


너. 제12조 (당대회의 의제) (2002. 7.26  4차 중앙위원회 개정) (2003. 4.1  1차 중앙위원회 개정)

1)    ① 당대회의 의제는 당헌 제 13조의 각호에서 규정한 바와 같다.

2)    ② 대의원은 대의원 15인 이상의 서명에 의한 찬성을 얻어 안건을 발의할 수 있다. 안건 발의자는 회의개최일 7일 전까지 의안 내용과 찬성자 명단, 찬성자 서명을 문서로 정리하여 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단, 회의당일 안건 발의는 대의원 재적인원 10%의 서명에 의한 찬성을 얻어 회순 통과이전에 발의할 수 있다.

 ③ 의장단은 전원 합의에 의해 긴급하고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안건을 발의할 수 있다.

더.   ④ 당원 300명 이상의 서명에 의한 동의를 얻어 회의개최일 7일 전까지 안건을 발의할 수 있다.

러.

머. 제13조 (중앙위원회의 의제) (2002. 7.26  4차 중앙위원회 개정) (2003.4.1  1차 중앙위원회 개정)

버.    ① 중앙위원회의 의제는 당헌 제 17조의 각호에서 규정한 바와 같다.

서.  ② 중앙위원은 중앙위원 5인 이상의 서명에 의한 찬성을 얻어 안건을 발의할 수 있다. 안건 발의자는 회의 개최일 3일 전까지 의안 내용과 찬성자 명단, 찬성자 서명을 문서로 정리하여 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단, 회의당일 안건 발의는 중앙위원 재적인원 10%의 서명에 의한 찬성을 얻어 회순 통과이전에 발의할 수 있다.

   ③ 의장은 긴급하고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안건을 발의할 수 있다.

   ④ 당원 100명 이상의 서명에 의한 동의를 얻어 회의개최일 3일 전까지 안건을 발의할 수 있다.


제14조 (전국집행위원회의 의제)

어.  ① 전국집행위원회의 의제는 당헌 제 26조의 각호에서 규정한 바와 같다.

저.  ② 안건은 대표 또는 집행부서장회의에서 회의 3일 전까지 제출한다. 전국집행위원이 회의 당일 제출하는 안건은 일반 관례에 따라 채택한다.

처.  ③ 의장은 제출된 안건의 경중과 완급을 감안하여 순차적으로 전국집행위원회에 상정하며, 의장은 정당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의안의 상정을 연기할 수 있다.

커.  ④ 긴급한 당 사업은 대표와 상무집행위원회에서 결정․집행하며, 전국집행위원회에서 추인받는다.

1)

2) 제15조 (상무집행위원회의 의제) 상무집행위원회의 의제는 당헌 제 29조의 각호에서 규정한 바와 같다.

터.

제4장 동의


퍼. 제16조 (동의의 종류) 회의 중 제안될 수 있는 동의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가) 1. 수정동의

나) 2. 의사진행동의

다) 3. 번안동의

라) 4. 긴급동의

마)

바) 제17조 (수정동의)

1)    ① 회의참가자는 상정된 안건에 대해 2인 이상의 찬성(재청, 삼청)으로 수정동의를 제안할 수 있다.

2)    ② 수정동의의 내용은 원안에 일부를 첨가하거나 삭제하는 것이어야 한다. 수정동의의 내용이 원안을 전혀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원안에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내용일 경우 의장은 이를 기각시킨다.

3)    ③ 번안동의, 의사진행동의, 긴급동의에 대해서는 수정동의를 제안할 수 없다.

허.

고. 제18조 (의사진행동의)

1)    ① 안건의 효율적인 토론을 위해 2인 이상의 찬성(재청, 삼청)으로 의사진행동의를 발의할 수 있다.

2)    ② 의사진행동의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3)   1. 질의 종결 : 의결되면 더 이상의 질문이 허용되지 않으며 즉시 토론을 시작한다.

가) 2. 토론 종결 : 의결되면 더 이상의 토론이나 수정동의 제안이 허용되지 않으며 즉시 표결을 시작한다.

나)       3. 안건 반려 : 의결되면 논의중인 안건에 대한 토론이 중지되며, 차기 회의에서 다시 다룬다. 안건 발의자는 차기 회의에 안건 내용을 보충하여 제출할 수 있다.

다)    ③ 의사진행동의는 토론 없이 표결하며, 재석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제19조 (번안동의)

   ① 의결이 끝난 뒤 이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번안동의가 있어야 한다.

   ② 번안동의는 재석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발의하며, 재석자 2/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4)

노. 제20조 (긴급동의)

1)    ① 회의 진행상의 심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인 이상의 찬성(재청, 삼청)으로 긴급동의를 발의할 수 있다.

2)    ② 긴급동의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다만, 전국집행위원회와 상무집행위원회의 경우에는 의장불신임이 긴급동의안건이 되지 아니한다.

가)      1. 정회 : 의결되면 의장은 즉시 정회를 선포한다.

나)      2. 의장불신임 : 의결되면 의장은 의장석을 떠나며, 부의장

다) 중 1인이 남은 회의를 진행한다.

3)    ③ 긴급동의는 토론 없이 표결하며, 재석자 2/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도.

제21조 (안건 철회)

 제12조 2항, 13조 2항의 안건 발의자는 찬성자 모두의 동의를 얻어 안건을 철회할 수 있다.

1)

제22조 (일사부재의)

 의결이 끝난 안건은 같은 회의에서 다시 논의할 수 없다. 단, 번안동의의 경우는 예외로 한다.

로.

모.

제5장 발언


제23조 (발언 신청과 허가)

1)   ① 발언을 하고자 할 때는 먼저 손을 들고 ‘의장’을 불러 의장에게 발언권을 신청한다. 다만, 전국집행위원회와 상무집행위원회의 경우에는 ‘의장’을 부르는 것을 생략할 수 있다.

2)   ② 다른 성원의 발언이 끝나기 전에 발언 신청을 해서는 안된다. 단, 의사진행동의와 긴급동의는 예외로 한다.

3)   ③ 의사진행동의와 긴급동의를 제안할 때에는 발언권을 신청하면서 그 동의를 표현해야 한다.

4)   ④ 의장은 의사진행동의와 긴급동의 제안 발언은 즉시 허가해야 하며, 그 외의 발언은 취지를 물어 허가 시기를 정할 수 있다.


제24조 (발언시작 및 회수의 제한 등)

5)   ① 발언자는 소속과 성명을 밝힌 후 발언 취지를 간단히 설명하고 발언을 시작한다. 다만, 상무집행위원회의 경우는 소속과 성명을 밝히는 것을 생략할 수 있다.

6)   ② 동일의제에 대하여 1인당 2회의 발언을 할 수 있다. 다만, 다음 각 호의 경우에는 발언의 회수에 포함되지 아니한다.

7)      1. 질의에 응답할 때

8)      2. 발의자 또는 동의자가 그 취지를 설명할 때

9)      3. 의장의 허가를 구했을 때

  ③ 전국집행위원회와 상무집행위원회의 경우에는 의장이 특별히 정하지 않는 한 1인당 발언회수가 제한되지 않는다.


제25조 (발언시간의 제한)

10) ① 발언자는 5분 이내에 발언을 마쳐야 한다.

11) ② 특별히 5분 이상의 발언시간이 필요한 경우 발언자는 의장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보.

제26조 (발언 중지 명령)

1) 다음 각 호의 경우 의장이 발언의 중지를 명할 수 있다.

가) 1 발언이 상정된 안건의 논의 범위를 벗어난 경우

나) 2 의사진행동의 또는 긴급동의를 신청하고 의제 내용에 대해 발언한 경우

다) 3 의장의 허락 없이 발언시간 제한을 어긴 경우

라)

마)

제6장 안건 토의

2)

제27조(회순)

3)    ① 의장은 발의된 안건들의 논의 순서를 정하여 회순으로 발표하고 회의 성원들의 의견을 물어서 확정한다.

4)    ② 회순은 재석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소.

오. 제28조 (안건 상정)

1)    ① 의장은 회순에 따라 안건을 하나씩 상정한다.

2)    ② 안건 상정은 의장이 안건의 제목을 낭독하고 상정을 선포함으로서 이루어진다.

3)    ③ 의장은 이미 상정된 안건에 대한 의결이 끝나기 전 다른 안건을 상정할 수 없다.

조.

초. 제29조 (제안설명)

1)  ① 안건 상정 직후 안건 발의자 중 1인이 제안설명을 한다.

2)  ② 제안설명의 내용은 의장에게 문서로 제출한 내용에 부합해야 하며, 설명자 임의로 내용을 수정해서는 안된다.


제30조 (질의와 토론)

3)  ① 회의참가자는 상정된 안건의 발의자 또는 수정동의자에게 질의할 수 있다.

4)  ② 질의가 끝나면 토론을 하며 토론 방식은 규정에 따른다.

5)  ③ 질의와 토론의 종결 여부는 의장이 회의참가자의 의사를 물어 결정한다.

6)

제31조 (축조심의)

7)  ① 여러 조항으로 이루어진 안건은 각 조항별로 축조심의한다. 단, 의장은 재석 과반수의 찬성으로 축조심의를 생략하거나 일부 조항에 대해서만 축조심의를 할 수 있다.

8)  ② 의장은 심의의 효율성을 위해 조항의 순서를 변경하거나 몇 개의 조항을 합하거나 또는 하나의 조항을 부분으로 나누어 축조심의를 진행할 수 있다.


제32조 (토론 방식)

9)  ① 찬반토론시 토론자 수는 찬반 각 3인으로 한다. 단, 토론자가 없을 경우 각 3인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10)  ② 찬반토론 토론 순서는 다음과 같다 : 찬성-반대-반대-찬성-찬성-반대

11)  ③ 3개 이상의 복수안을 놓고 토론할 경우 토론자 수는 각 안에 대해 2인으로 제한한다. 단, 토론자가 없을 경우 각 2인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12)  ④ 복수안 토론 순서는 다음과 같다 : 1안-2안-3안 … / 2안-3안 … 1안 / 3안 … 1안-2안

13)  ⑤ 의장은 필요하다고 판단할 시 각 의견에 대해 동수로 토론자를 정해 추가토론을 허용할 수 있다.

14)  ⑥ 전국집행위원회와 상무집행위원회의 경우에 의장은 토론자 수를 3인 이내로 할 수 있고, 찬반토론자수를 동수로 하지 않을 수 있다. 


제33조 (당대회 의장단의 토론 참가)

   ① 당대회 의장이 토론에 참가할 때에는 부의장 중 1인을 임시의장으로 지명하고 의장석에서 물러나야 하며 그 문제에 대한 표결이 끝날 때까지 의장석에 돌아갈 수 없다.

   ② 당대회 부의장이 토론에 참가할 때에는 부의장석에서 물러나야 하며 그 문제에 대한 표결이 끝날 때까지 부의장석에 돌아갈 수 없다.



제7장 의결

코.

제34조 (의결 정족수) 별도의 규정이 없는 안건은 재석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제35조(표결의 참가와 의사변경의 금지)

1)  ① 표결을 할 때에 회의장에 있지 아니한 회의 성원은 표결에 참가할 수 없다. 그러나 투표에 의하여 표결할 때에는 투표함이 폐쇄될 때까지 표결에 참가할 수 있다.

2)  ② 회의 성원은 표결에 있어서 이미 표시한 의사를 변경할 수 없다.


제36조 (표결 시작)

3)  ① 표결을 시작할 때 의장은 표결할 안건의 제목과 함께 표결 시작을 선포한다.

4)  ② 의장이 표결 시작을 선포한 이후 표결이 끝날 때까지 표결 절차에 관련된 것 이외의 발언은 금지된다.


제37조(표결방법) 의장은 회의 성원들의 의견을 물어서 표결방법을 정한다.


제38조 (표결순서)

5)  ① 동일의제에 대하여 두 개 이상의 수정동의가 제출된 경우, 나중에 제출된 수정동의부터 표결한다.

6)  ② 하나의 수정동의에 대해 의결이 이루어지면 아직 표결하지 않은 수정동의와 원안에 대한 표결은 하지 않는다.

7)  ③ 수정동의가 모두 부결된 때에는 원안을 표결한다.


제39조 (검표와 개표) 의장은 투표 시작 전에 검표위원과 개표위원을 지명하여 회의성원의 동의를 구하고, 그 위원의 입회 하에 투표와 개표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제40조 (의결 선포) 표결이 끝나면 의장은 결과를 발표하고 그에 따른 결정 내용을 낭독한 후 의결이 이루어졌음을 선포한다.



제8장 의사록 및 회의결과


제41조 (의사록 및 회의결과)

 ① 의사록은 다음의 사항이 포함되어 있는 문서를 말한다.

   1. 회의 일시와 장소

   2. 출결 상황 : 재적대의원 수, 사고대의원 수와 명단, 참석대의원 수와 명단, 불참대의원 수와 명단

   3. 회의 진행자와 기록자

   4. 회순

   5. 안건과 안건에 부속된 서류

   6 의결 내용, 의결 방법, 표결 결과가 포함된 회의결과

   7 회의 녹취록

8)   ② ‘회의결과’라 함은 제 1항의 ‘회의 녹취록’을 제외한 나머지 사항이 포함되어 있는 문서를 말한다.

  ③ 당헌에서 규정한 전 기관은 회의결과를 작성해야 한다.

 

제42조 (의사록 작성기관) 다음 각호의 회의에 대해서 의사록을 작성한다.

   ① 당대회

   ② 중앙위원회

   ③ 전국집행위원회

9) 제43조 (의사록의 작성과 보관)

10)  ① 의장은 개회선언 후 회의 참석자의 동의하에 수인의 서기를 지명한다.

11)  ② 서기는 의사록 작성을 위한 녹취와 기록을 담당한다.

12)  ③ 의장은 당대회 후 14일 이내에 의사록 작성을 완료한다.

13)  ④ 의장은 의사록의 보관을 책임지며, 실무는 당 사무국에서 한다.

14)

15) 제44조 (의사록 및 회의결과의 공개)

16)    ① 의장은 14일 이내에 의사록을 공개하고, 3일 이내에 회의결과를 당원에게 공개해야 한다. 

17)    ② 의사록 및 회의결과의 공개는 중앙당 홈페이지를 통해 당원에게 공개한다.

18)    ③ 각 회의의 의결에 따라 특정안건 혹은 특정회의 전체에 대한 의사록 및 회의결과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단 공개하지 않을 시에는 그 사유를 밝혀야 한다.

토.

포. 제45조 (의사록 및 회의결과의 정정)

1)    ① 의장은 필요할 경우 의결 취지에 부합하도록 의사록의 내용을 정정할 수 있다.

2)    ② 각 회의 참가자는 의사록의 내용이 사실과 다를 경우 의장에게 의사록의 정정을 신청할 수 있다.

3)    ③ 의장은 정정 신청이 있은 후 7일 이내에 신청내용을 녹취자료와 대조 확인하여 정정 여부를 결정하고, 신청자에게 결정내용을 통보해야 한다.

4)    ④ 의사록 및 회의결과가 정정될 경우 즉시 그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제9장 질서


제46조 (의장의 질서유지)

5)  ① 의장은 개회선언 후 수인의 감찰을 지명한다. 감찰은 회의규정 준수, 질서유지, 표결 등에 있어서 의장을 보좌한다. 다만, 전국집행위원회와 상무집행위원의 경우는 감찰을 지명하지 않을 수 있다.

6)  ② 의장은 대의원이 회의 중에 이 규정에 위배하여 회의장의 질서를 문란케 하거나 조직의 위신을 손상케 하는 언동을 할 때 다음과 같이 징계를 내릴 수 있다.

가) 1. 주의 : 고의성이 없는 가벼운 규정 위반의 경우.

나) 2. 경고 : 주의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규정 위반이 반복될 때. 분명한 고의성을 가지고 회의 진행을 방해할 때.

다) 3. 발언 취소와 사과 : 다른 대의원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행위를 한 경우. 조직의 위신을 실추시키는 언동을 할 때.

라) 4. 퇴장 : 경고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고에 해당하는 행위를 반복할 때. 발언 취소와 사과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때. 기타 언동을 통해 회의 진행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한 때

특강을 하겠다고 말하고 나니 걱정이 생겼다. 독고다이 기질이 강한 음악인들 앞에서 협동과 협동조합에 관해 말하는 게 가능할까? 냉소적인 눈빛을 받으며 상처를 안고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지만 진심은 통하리란 기대를 안고 얘기를 시작해 보련다. 말하는 사람부터 소개하자면 나는 정치학을 공부했고 아나키즘과 풀뿌리민주주의에 관심을 두고 있다. 2003년부터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올해부터 대학에서 강의하는 걸 관뒀다. 관둔 이유는 내 삶을 살고 싶어서.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 공부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욕하고 싶은 거 맘껏 욕하고 싶은 마음에 사표를 냈다. 만 2살의 아이를 키우고 있고 동네에서 독서모임과 마을강좌 등을 열고 있다.

내가 자립음악생산조합을 알게 된 건 밤섬해적단의 장성건씨를 통해서이다. 성건씨는 학교에서 알게 되었는데, 그가 유명한 음악가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어쨌거나 성건씨를 통해 이 강의를 맡게 되었는데... 오늘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사실 오늘 얘기는 특별한 게 없다. 그냥 살아가는 얘기, 좋은 삶을 살자는 얘기일 뿐. 그냥 뻔한 얘기를 한번 해봅시다.

 

자립이 뭘까?

자립(自立)이란 스스로 일어선다는 뜻이다. 쿨하게 혼자서 잘 먹고 잘 살자는 뜻일까? 그런데 혼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살아가기 위해, 생각하기 위해 타자를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립이란 거짓이다. 세상에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돈 많은 놈들도 홀로 서는 건 아니고 철저히 타자를 이용하고 착취할 뿐이다.

그렇다면 왜 자립인가? 타자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건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자를 인정할 수 없고,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타자를 존중할 수 없고, 나와 약속할 수 없는 사람은 타자와 약속할 수 없다. 내가 남에게 기댈 수 있어야 남도 나에게 기댈 수 있고, 내가 스스로 일어서야 타자도 일어설 수 있다. 결국 자립이란 타자와 더불어 좋은 삶을 누리기 위한 나의 조건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이런 자립을 방해한다. 한국사회는 끊임없이 경쟁을 붙이고 이긴 자에게 모든 걸 몰아주는 사회이다. 1박 2일처럼 무조건 복불복이다. 타인이 까나리액젓을 먹는 걸 보며 깔깔대고 내가 먹지 않음을 안심한다. PD가 아닌 이상 1박 2일의 멤버들이 벌칙을 영원히 피할 수 없듯이, 언젠가는 내 순서도 돌아온다.

결국 자립은 그냥 사는 게 아니라 규칙을 새로 짜려는 노력이다. 아마 그동안의 특강도 단지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규칙을 새로 짜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규칙을 새로 짜지 않으면 내 삶을 살 수 없고 내 삶을 산다는 건 나의 착각이다.

현실을 약간 비틀어서 저항하기는 쉽지만 규칙을 새로 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국가나 자본의 힘은 매우 강하고 우리 일상을 옴싹달싹할 수 없을 만큼 지배하고 있다. 이런 체제는 사소한 일탈을 허용하지만 규칙을 새로 짜려는 건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규칙을 새로 짜는 힘을 만드는 건 혼자서 할 수 없다. 아니 자립이 더불어 사는 삶을 전제하듯이 규칙을 짜는 건 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조합이 필요하다.

 

합이란 뭘까?

 

이 특강을 주최하는 곳은 자립음악생산조합이다. 조합(組合)이란 무슨 뜻인가? 여럿이 모여 하나가 되어 베를 짠다는 뜻이다. 베를 짜는 게 바로 규칙을 짠다는 뜻이다. 최초의 협동조합이라 불리는 영국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은 이런 목적을 내세웠다.

이 조합의 목적과 계획은 1인당 1파운드씩의 충분한 출자금을 조성해서 조합원의 재정적 이익과 사회적 및 가정적 상태의 개선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마련한 출자금으로) 다음과 같은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식료품, 의류 등을 판매할 점포를 설치한다.

•많은 주택을 건설 혹은 구입해서 사회적․가정적 상태를 개선하고자 하는 조합원의 주거로 충당한다.

•실직한 조합원 혹은 계속적인 임금 삭감으로 고통 받는 조합원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조합이 결의한 물품을 생산한다.

•조합원의 이익 증대와 생활 보장을 위해 조합은 약간의 토지를 구입하거나 빌려, 실직해 있거나 노동에 대해 부당한 보수를 받고 있는 조합원으로 하여금 이를 경작케 한다.

•실현 가능하게 되면 조합은 가능한 한 빨리 생산, 분배, 교육 및 정치적 역량을 기른다. 즉 조합은 ‘공통의 필요를 스스로 제공하는 협동체’를 건설하거나 또는 이와 같은 협동체를 건설하려는 다른 조합을 지원한다.

•금주(禁酒)를 촉진하기 위해 가능한 빨리 금주 호텔을 조합 건물의 하나로서 개설한다.

 

‘금주’를 촉진한다는 것만 빼면 참 흠잡을 것이 없는 내용이다.^^ 조합은 단순히 공동구매학고 공동으로 재산을 관리하는 곳이 아니다. 조합은 조합원이 다른 삶을 생각하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돕는 해방구이다. 조합 밖에서 드러내지 못했던 정체성을 드러내고 조합 내의 삶을 조합 밖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뒷심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자립음악생산조합의 목적은 무엇이고 어떤 뒷심을 마련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아마도 그 목적에 따라 내가 얘기할 수 있는 바가 달라질 것 같다. 우리는 어떤 얘기를 서로 나눌 수 있을까?

 나는 이제 만 2살이 된 아이의 아빠다. 그래서 솔직히 학교보다 어린이집에 관심이 더 많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때마다 약간의 해방감과 자유를 느끼지만 그만큼의 불안 속에 산다.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없을까, 애는 아프지 않을까, 택시 운전석 앞에서 딸랑거리는 ‘오늘도 무사히’라는 장식을 가슴에 품고 산다.

그럼에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이유는 내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많은 부모들이 그 점을 잊고 산다. 내가 살기 위해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대야 하고, 그러면서 불안과 갈등이 싹틀 수밖에 없다. 아니, 갈등하는 게 정상이다. 서로 다른 조건과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타자에게 기대며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갈등할 수밖에 없다. 갈등을 피하는 방법은 기대지 않는 법 외엔 없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된 윤리적인 명제, ‘네가 타인에게 대우받고 싶은 대로 타인을 대하라’는 명제가 등장한다. 갈등을 조절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인 셈인데 타자의 얼굴을 마주보지 못하는 사회, 타자의 존재를 인식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이 명제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이집과 학교에 CCTV를 설치하려 하고, 어울려 살 경우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소소한 일들을 법에 따라 심판되어야 하는 사건들로 만든다.

우리의 삶을 위해 타자를 필요로 하면서도 우리가 매달리는 건 타자가 아니라 기계와 규칙이다. CCTV가 필요 없는 환경을, 굳이 폭력을 쓰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면 될 일을 우리는 타자를 ‘감시’하고 ‘처벌’해서 해결하려 든다. 내 것을 악착같이 지키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타자를 마주 보지 않으니 타자가 더욱더 두렵고, 얼굴을 맞대지 않으면서 타자가 우리를 더욱더 대우하길 원한다. 그 결과는 종잡을 수 없는 폭력, 폭력의 경계를 넘어선 폭압이다.

우리가 무시하는 또 다른 사실 하나. 감기와 마찬가지로 일상 속의 갈등과 폭력은 상황이 나빠지고 있음을 경고하는 징후이다. 그 징후에 주목하지 않고 감추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그 심각성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니 갈등과 폭력을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발상처럼 어리석은 생각은 없다.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이상 폭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갈등의 소멸을 원하나?

 

1. 폭력에 관한 내밀한 알리바이

청탁받은 주제는 ‘폭력과 불화’인데, 그 내용을 말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고민을 먼저 나누고 싶다. 학생들의 폭력이 예전보다 더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다는 점을 빼면 그런 폭력은 항상 있었다. 나도 그 폭력의 장에서 성장한지라, 학교를 내세우는 모임에는 눈꼽만큼도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몇 년 전에 고등학교 동문회에 한번 나갔다가 폭력에 폭발하던 아이들이 어느덧 폭력을 즐겁게 회상하는 존재로 변한 걸 보고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 이제 나이를 먹었다고 애들을 그 감옥으로 보내고 등 두드리며 격려하니 이 무슨 지랄인가. 학교에서의 폭력이 더 심각해졌을까, 사회의 폭력이 더 심각해졌을까?

그리고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얘기하는데 내 기억에 폭력의 주범은 삥을 뜯는 서클이나 서로 치고 박았던 친구들이 아니라 바로 교사들이었다. 성적이 낮다고 두드려 맞고 반성하는 기미가 없다며 두들겨 맞고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고 화장실 청소를 전담하고, 내 기억 속의 학교는 그런 공간이다. 학교폭력이 불거진 것은 학생들간의 폭력빈도보다 학생과 교사간의 폭력, 그리고 학생의 폭력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교사의 무기력함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학교와 교사가 아니라 학생들이 학교폭력의 대상이어야 할까?

교사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앞의 명제처럼 교사는 학생에게 대우받고 싶은 대로 학생을 대하고 있는가? 그렇게 대하고 있는데도 폭력이 계속 불거지는 걸까?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건 교사들이 더 이상 교사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수능 족집게 능력으로는 학원선생보다 신뢰감을 잃어버렸고, 아이들의 실제 사정을 파악하는 능력으로는 동네 도서관이나 복지관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못한 실정이다. 교사라는 ‘직위’가 학교장이나 교육청, 교육부의 손아귀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학생들이 교사의 권위를 세워줄리 없다. ‘우리 그런 사람들 아니에요’, ‘학교가 바뀌지 전까진 무엇도 하기 어려워요’라는 알리바이가 계속 통할 수는 없다. 불편하게 들리겠지만 교사들은 폭력의 조정자가 아니라 학교폭력의 한 축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화장실 용무 이외에는 복도에 나가지 않는다’, ‘교실 밖을 나가더라도 3명 이상 모이지 않고 30초 이상 만나지 않고 3문장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6학년 공통생활규칙을 배포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원의 초등학교에서는 다른 반에 출입하지 말라는 일종의 규칙이 내면화되고 있다고 한다. 충남 아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시험 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신과 귀족, 평민, 천민, 노예로 나누고 체벌을 가했다고 한다. 이곳이 학교인가? 이곳이 정녕 자아를 발견하고 성장하는 곳인가? 자아란 건 끊임없는 만남을 통해 발견되고 성장은 희로애락을 겪으며 자연스레 이루어지는데, 이런 곳에서 자아발견과 성장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런 규칙이 정해지는 곳은 이미 학교가 아니다. 그러니 학교폭력에 앞서 우리 사회에 진정 학교가 존재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리고 학교가 아닌 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전교조>가 참교육이라는 좌표를 잃고 노동조합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지 오래되었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고용주에게 복종하는 노동자, 학생들을 관리하는 관리자들이라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노동자들은 옥쇄파업을 하고 망루에 매달리며 저항하는데, 왜 교사들은 그러지 못할까? 학교가 바뀌지 않아 어려우면 교사들이 나서서 그런 학교를 불태워야 하지 않을까? 이계삼의 말처럼 “학교 자체가 폭력의 숙주”라면 그것을 도려내야 하지 않을까?

폭력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사소한 갈등까지 미리 제거하려는 곳이 학교라면 그 속에 있는 교사는 교사가 이미 아니고, 학생도 더 이상 학생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학교폭력이 아니라 ‘이곳이 학교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먼저 던져야 한다. 이 외에 무슨 다른 대안이 가능한가? <전교조> 교사가 다수인 학교가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그런데 우리가 집권하면 세상이 바뀔 거라고 주장하는 ‘소위’ 진보정당들과 <전교조>는 무엇이 다른가?

그런데 이런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오늘의 교육》 지난 호를 읽고 마음이 씁쓸했다. ‘누가 진짜 일진인가’라는 물음보다 폭력이 경고를 보내는데도 둔감한 그 현실 때문이었다. 그보다 더 씁쓸한 것은 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들의 글보다 외부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글이 학교현장과 학생들의 삶, 심리상태를 잘 꿰뚫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경은 ‘센 척’할 수밖에 없고 ‘끓는점’을 참지못하는 아이들을 얘기하며 “그러한 행동을 유발한 분노라는 감정과, 그러한 분노를 느끼게 한 이유들까지 그저 덮어 놓고 부정하”지 말자고, “왜 그들이 가출했는지, 어떤 욕구가 있는지, 그 욕구를 어떻게 함께 해결해 나갈 것인지”를 성찰하자고 얘기한다. 그리고 한낱은 “돌봄, 상담, 치유와 같은 언어들이 무조건적 대안이나 완전한 이상태”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자며, 그렇지 않다면 그건 지금의 학교를 지속시키는 도구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교사들은 말 그대로 다양한 입장과 상황을 반영하고 중재하려고만 든다. ‘착한 교사’의 면모가 드러나는데, 나는 그런 입장이 불만스럽다. 교사만의 문제일 수는 없지만 교사의 문제가 아닐 수는 없다. 학교를 관둔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의 얘기는 거의 대부분 교사의 태도와 생각을 문제 삼는다. 교사는 학교폭력의 당사자이자 피해자이니 중립적인 관점이 아니라 자기 관점을 가지고 그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가 아니라 ‘나는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또는 목격했습니다’로 사안을 구체화시켜야 한다. ‘학생들이 이런 폭력을 겪고 있다’가 아니라 ‘나도 이런 폭력을 겪었다’, ‘나는 이런 폭력을 썼다’로 교사가 겪는 문제와 학생들이 겪는 문제가 동일한 기반 위에 있음을 드러내야, 내가 사는 생활 속에서의 문제로 만들어야 소통과 연대가 가능하다.

그러면서 학생만이 아니라 왜 교사도 학교에서 존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상가 함석헌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생각사, 1979년)에서 “덕이 있어야 교사인데 덕은 스스로는 있는 줄 모르는 것이다. 덕을 득(得)이라(속에 얻은 속) 하지만 속에 정신적으로 얻은 것은 참 자아가 된 것인데, 그것은 이른바 득은 아니다. 그러므로 덕은 스스로 모르는 것이다. 내가 덕이 있다 하면 덕은 아니다. 내가 교사다 하면 교사는 아니다. 교사되기 위하여는 교사 아니 돼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너무 교사답지 않은가?

 

2. 불화의 제거는 폭력이 아닌가?

1년 넘게 사라졌던 한 친구가 얼마 전 우리 집에 와 술을 마시고 자고 갔다. 이 친구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 여름이다. 돈 들여 예쁘게 심은 문신이 아니라 말 그대로 막 그린 그림이 상체에 그득하다(작년에 돈 들여 기어이 붕어 한 마리를 더 그리셨다). 나시티 입고 다니면 그 문신이 확 드러나니 모세의 기적처럼 사람들이 길을 터준다. 덕분에 나는 이 친구와 술을 마실 때면 두려울 게 없다. 다들 알아서 친절하게 대해주니.

그다지 살갑게 대하지도 않고 잘해주지도 못한다. 오면 밥 먹이고 술 왕창 먹여 재워주는 정도. 누구 욕하면 같이 욕해주는 정도. 이렇게 심심하게 대하는데도 이 친구가 찾아오는 이유는 한 가지란다. 자기 몸에 그린 문신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고,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라서. 가끔은 돈 얘기도 꺼내지만 요즘은 내가 더 궁해 보여 그러지는 않는다(우리 아이 두돐 때 선물을 사오겠다며 사라졌는데 진짜 그럴지는 두고 볼 일이다).

술 마시다 이 친구에게 물어보면 지난 호에서 나경이 얘기한 바와 비슷하다.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에 기술은 없고 생활리듬은 매우 불규칙하다. 그래도 지금껏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일종의 오기와 가오 덕분이다. 조직폭력에 가담하지 않고 독고다이로 살아온 이 친구에게 문신은 갑옷이요 폭력은 자신을 보호할 유일한 무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 무기를 빼앗고 갑옷을 벗기려 한다. 이 친구를 쏙 빼서 우리가 생활하는 세상 밖으로 내보내면 세상이 안전해질까?

오히려 나는 이 친구가 미래에 굉장히 중요해질 거라고 믿는다. 위에서 지침이나 명령을 받지 않으면 쭈뼛거리며 무엇도 선택하지 못하는 대학생보다 이 친구가 훨씬 더 능동적이다. 파국의 상황에서 빛을 발할 능력이다. 그리고 적어도 이 친구들은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하고(물론 그것 때문에 자주 시비도 붙지만), 당신이 뭔데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하냐고 대들기도 한다. 자신이 선택한 삶은 아니지만 주어진 조건 속에서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온 사람이다. 물론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기도 하고 사고도 친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히 한 개인의 몫인가?

권정생은 『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 1997년)에서 물 한 그릇의 양심을 얘기한다. “열사람에게 열 그릇의 물이 필요한데 힘이 센 한 사람이 다섯 그릇을 차지해버리고, 또 한사람이 세 그릇을 차지하고 다시 한사람만이 자기 몫의 한 그릇을 차지했다. 나머지 일곱 사람은 한 그릇을 가지고 나눠 마셔야 하는 게 요즘 사회의 실정이다. 일곱 사람의 대부분은 갈증을 견디며 얌전히 참고 견디다 목이 타서 죽는 사람이 생기고, 그 중의 한두 사람은 참지 못해 결국은 칼을 휘두르게 된다. 그 칼이 바로 이런 모순된 사회구조를 만든 장본인에게 꽂혔을 땐 그래도 괜찮지만 대부분이 엉뚱하게 같은 피해자들끼리 휘둘러져 억울한 희생이 이중 삼중으로 생긴다. 이럴 때 일어나는 불상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칼을 들고 휘두르는 사람은 더 큰 칼에 의해 죽음 직전까지 이르렀던 선량한 사람이었는데도 그는 살인자가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교사들은 자기 양심을 지키고 학생들이 서로 칼을 휘두르는 비극을 적극적으로 막고 있나? 사실 그런 일에 개입하기는 싫고 어떤 면에서는 모범생들을 바라보는 건 아닐까? 허나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엘리트들이 대부분 모범생 출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들만큼 폭력적인 인간은 없다. 그런데도 교사들이 모범생을 보며 안심하는 이유는 뭘까? 선과 악의 기준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은 자신의 지시가 선이라고 생각하고 그 지시에 따르는 모범생에게 만족하는 건 아닐까?

지나친 청결이 면역체계를 파괴해서 병을 부르듯이, 서로의 생존에 다양성이 필요하고 그 때문에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데도, 애써 불편함을 피하려는 이유는 뭘까? 불화를 막기 위해 폭력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통제의 관점’이다. 『국가처럼 보기』(에코리브르, 2010년)에서 제임스 스콧(J. Scott)은 프로이센의 공리주의적인 삼림계획에서 그 단초를 찾아낸다. “가치있는 종들과 경쟁하는 종, 이들을 포식하는 종, 혹은 그들의 산출량을 감소시키는 종들로 재분류한다. 따라서 가치 있는 식물은 ‘농작물’이 되고, 그 농작물과 경쟁하는 종은 ‘잡초’로 낙인찍힌다. 그리고 농작물에 기생하는 벌레는 ‘해충’으로 낙인찍힌다. 또한 가치있는 나무는 ‘목재’가 되는 반면, 이와 경쟁하는 종은 ‘잡목’이 되거나 ‘덤불’쯤으로 여겨진다. 이와 동일한 논리는 동물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높은 가격이 매겨진 동물은 ‘사냥감’이나 ‘가축’이 되지만 그것과 경쟁하는, 혹은 그것들을 먹이로 삼는 동물은 ‘약탈자’나 ‘야생동물’쯤으로 간주된다.” 이런 논리가 사회와 학교에 적용되면 양아치나 비행청소년, 폭력학생 등으로 변한다.

좋은 학교를 만들자고 얘기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체제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체제의 귀로 학생들의 말을 듣는다. 그러니 시인이 사라진다. 시인이 없어지는 이유는 시집을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세상과 불화하는 존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면 우리의 언어는 자기 존재가 쉴 곳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존재하는 세계와 갈등하고 불화하는 문학의 언어, 시의 언어는 지금의 학교에 뿌리를 내릴 수 없다. 교사도 더 이상 시의 언어로 학생들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학교의 문제일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폭력의 본질이 무엇이고 그것을 제거할 방법에 관한 논의가 아니라 폭력으로 드러난 학생들의 삶에 대한 공감과 소통이다. 불편하고 어려워도 그렇게 다가서야 이 사회가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불화와 갈등이야말로 새로운 것을 낳는 불씨이다. 폭력을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착한 학생, 착한 학교, 착한 사회를 만들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회의 생명력과 평화를 파괴하는 근본적인 폭력이다. 갈등이 잦은 학교가 좋은 학교이고 소란스러운 나라가 건강한 나라이다. 교육은 그런 갈등과 소란에 주목해야 한다.

당위적인 말을 하며 교사에게 세상의 모든 짐을 지우려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현장을 지키고 산다. 학교가 학교이기 위해 교사가 해야 할 역할, 학생이 해야 할 역할이 있을 텐데, 서로가 서로를 마주볼 수 있는가, 서로를 타자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게 관건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했다. 하나(同)로 만들지 않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단일자에게 맞서는 것, 그것이 화이부동이다. 교사와 학생이 단결해서 학교라는 체계에 맞서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왜 불가능할까?

 

3. 수평적인 잡음에서 수직적인 소음으로

예전에 난곡의 빈민지역에서 활동하신 분의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강제로 밀려난 사람들은 기본시설조차 없는 환경에서 생활해야 했는데, 특히 판자집의 판자가 너무 얇아 옆집의 소리가 다 들렸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라면 참을 수 없을 그 환경에서 놀랍게도 주민들은 서로 협동했다. 혼자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자연스럽게 협동의 전략이 만들어졌다.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옆집이나 옆방에서 들려오는 잡음은 서로의 삶을 읽고 챙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준비물이 없는 아이에게 준비물을, 급히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을. 그래서 그 때는 힘들게 운동했지만 보람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그곳에서도 당연히 갈등이 생기고 충돌이 벌어졌지만 그 잡음은 서로를 이해하게 만들거나 일상을 움직이는 동력이기도 했다. 우리가 깜깜한 달동네라 부르며 두려워하던 그곳에서 폭력과 잡음은 일상이었지만 그 폭력이 반드시 삶을 두렵게 만들거나 배제로 이어지진 않았다.

지금의 난곡은 아파트촌으로 재개발되었다. 깔끔하게 세워진 아파트 숲에서는 그때의 잡음이 사라졌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이 평온해지지는 못했다. 수평적인 잡음이 수직적인 소음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난생 처음 층간소음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아침과 밤마다 울리는 워킹머신 소리에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한바탕 분쟁을 겪기도 했다. ‘개발’된 공간에서 잡음은 소음으로 변했다.

사실 이것은 수평과 수직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수평의 위치에서 퍼지는 소리들은 한 측이 일방적으로 들어야 하는 소리가 아니다. 소리는 섞이고 공명하며 새로운 파장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수직의 공간에서 내려오는 소리는 한 측이 일방적으로 말하고 다른 측은 듣는 관계이다. 물론 위, 아래층을 고려하면 그것은 상대적이지만, 수직으로 높이 세워진 아파트라는 공간이 살갑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좋은 방음벽과 방음바닥을 만들고 층간의 거리를 넓히면 소음은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소음이 줄어들면 문제가 해결될까? 서로 얼굴을 맞대지 않고 생활하면,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면, 삶이 행복해질까? CCTV와 세콤으로 무장한 학교와 아파트 단지에 살아도 그곳을 벗어나는 순간 삶은 더욱더 두려워질 수밖에 없다. 학생들을 향해 일방적으로 소리 지르는 교사는 학교 밖을 나서는 순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안전한 학교라는 목표는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지속가능하지 않고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부정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제는 소란과 불화를 인정하고 그것과 함께 사는 법을 연습해야 하지 않을까? 교육도 그런 연습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교사와 학생의 관계도 그런 연습으로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근대의 사상가 마키아벨리는 『로마사논고』에서 시민의 소란과 그들간의 불화야말로 국가의 자유를 유지시키는 힘이었다고 주장했다. 갈등이 나라를 좀먹고 무너뜨린다는 상식에 맞서 마키아벨리는 왜 갈등이 필요한지를 설명하며 로마 공화국을 파고든다. 공화국이란 서로 다른 두 가지 성향, 즉 민중의 성향과 지배계급의 성향이 갈등할 때 유지된다. 예를 들어 원로원은 법률을 통해 민중의 행동을 제한할 수 있었고, 민중들은 귀족들이 논의할 때 원로원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반대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어느 한 편도 다른 편의 이익을 쉽게 억압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균형이 이루어졌다. 이런 역사를 바탕으로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자유의 가치를 옹호하면서도 시민들의 불화가 위험하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을 비판했다. 마키아벨리에게 소란과 갈등은 민주주의를 살아있게 하고 공화국을 유지시키는 힘이었다.

현대의 사상가 랑시에르(J. Ranciere)도 비슷한 주장을 펼친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19세기 프랑스의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요구한 것은 단지 임금이나 노동조건만이 아니라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나눔, 힘과 형태의 나눔을 폐지하는 것”, “정치적 형태와 사회적 내용 사이의 대립을 폐지하는 것”이었다. 파업이라는 대규모 집단행동이 매우 논쟁적이고 갈등하는 공적 공간을 만들었고, 그 공간에서 “투표권이 없었고, 시민이 아니라 그저 사적 개인으로 간주되었던 이 노동자들은 그럼으로써 공적 공간 ― 지배질서는 노동자들을 이 공적 공간에서 배제했다 ― 의 구성원으로서 스스로를 긍정했다.” 이 때문에 랑시에르는 불화야말로 포함과 배제의 관계를 전복하는 중요한 정치원리이고 “지배공간에서 말로 인정되지 않고 그저 고통이나 분노의 소음으로만 간주되던 말들을 그 지배 공간에서 듣게 만”드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사회는 어떠한가? 우리에게도 그런 장이 존재하는가? 공식적으로 회의에 참여하진 못해도 회의에 참석한 자들에게 야유를 보내고 소란을 일으키며 자신들의 의지와 의견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장,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경계, 학생다운 것과 학생답지 않은 것의 경계, 모범과 폭력의 경계를 허무는 장이 존재하는가? 상황은 정반대이다. 농촌에 가면 학교 근처에 사는 선생님들은 거의 없고 다들 읍내에 살고, 도시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니 서로를 마주칠 기회도 없고, 서로의 삶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불화가 아니라 타자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 소음만 들리고 잡음은 사라진 사회에서는 연대가 불가능하다. 같이 살기 위해 손을 잡아야 하는데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어울리고 부대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당연한 일이다.

 

4. 왜 좋은 학교를 기대하는가?

《오늘의 교육》을 읽다보면 내가 딴 세상을 산 것 같다. 아니, 이렇게 좋은 선생님들이 계시는데 왜 우리가 사는 현실이, 학교가 이 모양이지? <교육공동체 벗>의 카페에 들어가면 진지한 고민들이 매일 올라오고, 그런 고민을 나누는 조합원이 600명을 넘고 카페 회원은 2,0000명을 넘는데 학교가 왜 이 모양이지?

돌이켜보면 <전교조>가 처음 만들어질 때도 나는 좀 불편했다. ‘참교육’을 내세웠는데 나는 한 번도 그런 교육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말을 믿기 어려웠다. 교사들이 참교육을 우리에게 ‘선물’할 수 있을 거라 믿지도 않았다. 내가 만난 <전교조> 교사들은 참 좋은 분들이었지만 다분히 ‘계몽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지긋지긋한 학교가 싸그리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 폐허에서 참교육이 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학교라는 집 속에 교사와 학생이 산다. 학교라는 집 자체가 못되게 지어져서 교사와 학생들 모두가 고생하고 있다. 집이 문제이면 그 집을 허물고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한다. 그런데도 그런 생각을 입밖에 내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교육잡지도 고만고만하다는 생각을,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민들레》를 읽으면서는 대안학교/대안교육에 대한 고민이 교육에 관한 고민인가, 《오늘의 교육》을 읽으면서는 학교를 바꾸자는 고민/공교육에 대한 고민이 교육에 대한 고민인가,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논하는 교육이란 대체 무엇인가?

함석헌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에서 “혁명을 하는 자가 교육을 할 수 있다. 혁명하자는 마음이 가르치잔 마음이다. 썩은 살 잘라 버릴 용기와 성의를 가지지 못한 자는, 자격이 없는 자요, 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자다. 그야말로 죽은 자요, 또 죽이는 자다. 혁명은 곧 교육이다. 그러나 혁명은 잘못된 교육이요, 교육은 옳게 된 혁명이다. 혁명자는 살리려다가 죽이는 자나, 교육자는 죽여 가지고 살리는 자다. 마땅히 죽일 것을 참 죽이기 위해 살펴 가지고, 그 죽을 죽음을 내가 죽어가지고 너와 나를 하나로 참 살려내는 것이 교육자다. 살신성인이다. 살신 아니 하고는, 내 몸을 희생하지 않고는 인(仁)은 없다. 교육은 없다. 그러나 그 능히 죽이고 능히 살리는 마음을 늙은 것 속에서는 만날 수 없다. 그러므로 젊은 교사의 자기 반성에 있다는 것이다. 원자보다도 더 작은 일점심(一點心)이 잘 터지기만 하면, 그리하여 그 속에 가지고 있는 호생지덕(好生之德)이 천성의 힘을 잘 방사하기만 한다면 온 세계라도 개조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집을 짓는 행동이다.

UN이 지정한 ‘협동조합의 해’라서인지 전국이 들썩인다. 해외의 협동조합들을 다룬 프로그램이나 기사들이 TV나 신문에 자주 실리고, 협동조합과 관련된 행사나 강좌들이 많은 지역에서 열리고 있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는 협동조합 난장 한마당이 열렸고, 그 자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협동조합도시 서울이라는 비전을 선포했다.

덩달아 나도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협동조합과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있지만 씁쓸함을 감추기 어렵다. 왜냐하면 축제의 뒤편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협동조합을 뒤흔들고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세종대학교이다. 지금 세종대 대학생협은 7월 20일까지 매장을 정리하라는 법원의 계고장을 받은 상태이다. 지난 2월 칼럼에도 썼지만 2009년부터 세종대학측은 학내의 모든 매장을 공개입찰하겠다며 대학생협을 몰아내려 했고, 학생들의 반대로 이런 시도가 무산되자 법정으로 사안을 끌고 갔다. 그리고 법조문과 원칙을 따르는 법정은 1심과 2심 모두 대양학원이 ‘갑’이니 어쩔 수 없다며 대학생협에게 운영권을 포기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현재 대법원으로 사안이 올라갔지만 지난 7월 30일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생협이 관리하는 자판기를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발송했다. 학생들이 학교를 비운 방학을 틈타 생협을 몰아내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로써 대학생협의 모범으로 불렸던 세종대생협은 한순간에 모든 걸 잃게 될 위기에 처했고 학생들의 복지도 마찬가지이다.

학내 매장의 운영권을 둘러싼 싸움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단순히 매장의 문제가 아니다. 세종대 생협은 학내민주화 과정에서 만들어졌고,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금이 과거 사학비리로 쫓겨났던 사람들이 학교로 복귀하는 시기이자 그런 사립대학들이 학교발전을 내세우며 발전기금을 조성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종대에서는 대학생 조합원들이 모여 강제집행에 맞설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대학만이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생협을 뒤흔들고 있다. 사무장이 의사를 고용해서 운영하는 유사의료생협들이 지역주민과 의료인이 함께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부자들만 건강해지는 건강불평등을 바로잡으려는 실제 의료생협의 수보다 엄청나게 많다. 그러자 보건복지부는 유사의료생협을 막겠다며 의료생협을 세우는 요건을 강화시키고 있다.

애초에 돈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유사의료생협은 제아무리 조합원 수와 출자금을 늘려도 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조합원이야 가짜로 만들면 되고 돈은 빌리면 된다. 반면에 원래의 의료생협은 협동조합의 원칙상 그런 과정을 밟을 수가 없다. 자발적인 참여로 조직되는 협동조합이 그런 꼼수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이미 협동조합의 취지를 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대책이라며 내놓은 설립요건 강화는 유사의료생협을 잡기는커녕 자발적으로 의료생협을 만들려는 노력을 가로막을 것이다. 원조 족발처럼 원조 의료생협이라는 말을 써야 할 지경이다.

이런 실정인데도 정부는 사회적 기업이 처음 만들어질 때 그랬던 것처럼 협동조합을 몇 개 만들었는가에만 신경을 쓸 것이다. 자기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 몇 개 만들어졌는지가 중요한 시대이니 정부는 이런 사소한 일(?)에 관심을 쏟지 않을 것이다. 결국 협동조합을 키웠다 잡아먹었다, 기득권층의 손아귀가 시민의 삶을 좌지우지한다.

진정 협동조합의 해를 반기고 누리고 싶다면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 바로 세종대이고 의료생협들이다. 협동조합만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몰상식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 지키지 않으면서 협동조합을 지지한다, 협동조합에 관심이 많다고 떠들지 말자. 한 곳에서의 승리와 기쁨이 다른 곳으로 전이될 수 있도록 지금 이 곳을 지키자. 이게 사는 거다.

2000년에 나는 청년진보당 당우로 가입했다. 그때 고민을 나누던 친구들이 청년진보당에 있었기에 가입했지만 신념을 바꾸고 당원이 될 만큼의 호소력은 없었다. 민주노동당도 있었지만 나는 민족해방파(NL)와 민중민주파(PD) 모두를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그들이 내세우는 이념만이 아니라 그들의 태도도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진리를 독점한 듯 쉽게 다른 입장을 규정하고 재단하고 비판하고, 좀 재수 없었다.

 

당원은 아니었지만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과 분당하기 전엔 가끔 민주노동당 당사에 들리곤 했다. 지방자치와 관련된 토론회나 회의에 참석했고, 그 때는 이런저런 관계로 아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진보신당으로 분당된 뒤에는 진보신당의 당우로 가입했지만 이 역시 적극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당원게시판에 들어갈 때마다 한숨을 쉬었고, 쪼개지고 갈라져도 언제나 적은 가까이에 있었다. 결국 선거 외엔 정치가 없다는 듯 통합논의를 진행하는 걸 보고 탈당했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 중에 지금도 만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요즘은 정당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기억들은 거의 잊혀 졌는데 이번 통합진보당의 사건이 그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물음을 던지게 만들었다. 대체 진보정당이란 무엇일까? 진보적인 이념과 정책을 표방하는 정당이 진보정당일까? 그렇다면 정당은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여야 하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면 진보정당은 목적만이 아니라 그 수단적인 형식도 진보적이어야 할 텐데,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들의 형식은 진보적이고 민주적인가? 그리고 기존의 보수정당들과 얼마나 다른가?

 

예전과 달리 이 물음이 밖에서 관전하는 입장에서의 고민은 될 수 없다. 나는 올 초에 창당된 녹색당에 당원으로 가입했다. 아마도 내 인생 최초이자 최후의 정당가입일 것 같다. 그러니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이 당에 승부를 걸어야 할 터인데, 아직까지 고민만 떠돈다. 그래서 고민을 같이 나누고 싶다.

 

 


정당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한국사회에서 정당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한 정당 내의 문제보다 정당체계의 문제를 주로 얘기한다. 때로는 정당 내의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리더십과 이념, 조직규율 등을 심각하게 약화시킨다고 얘기한다(아직 한국에서는 그런 정당이 등장하지 못했는데, 어떤 근거로 그렇게 얘기하는지는 알 수 없다). 구조가 행위자에게 영향을 미치듯이 정당체계가 각 정당의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체계는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판을 잘 짜도 인간사회의 움직임은 행위자들의 선택과 파장으로 이루어지고, 구조를 바꾸는 행위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정치는 더더욱 그런 장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런 가능성에 관한 논의는 거의 없는 듯하다.

 

그리고 정당체계의 문제는 시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게 논의하다보면 정당인이나 지식인 중심으로 논의가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냥 ‘닥치고 투표’나 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리고 그렇게 투표했던 사람들이 통합진보당 사태로 겪는 고통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이제는 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정치라는 역동적인 장이 선거로 환원되고 제한되는 한국사회에서는 정당‘을 통한’ 정치도 필요하지만 정당‘에서의’ 정치도 중요하다(당연히 정당 ‘밖에서의’ 정치도 중요하다). 학교나 사무실, 공장, 지역사회에서 정치를 경험하거나 결정을 내려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정당은 중요한 실험실일 수 있고 그런 실험실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정당이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당은 특정한 이념과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이다. 그 이념과 목적에 동의한 사람들이 그 목적에 맞는 형식과 수단으로 정당을 움직여야 한다. 다만 우리가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당을 만든다면 당연히 그 정당도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아직도 전위정당이라는 허상에 매달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는 정당이 어떤 도덕률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도덕’이라는 잣대로 정당활동을 평가하는 데는 반대한다(그렇다고 권모술수가 난무해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정당은 전략을 짜야하고 상황변화에 ‘적절히’, 때로는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 정치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상대 정당이나 정치인의 반응에 따라 정치적인 효과와 사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가 특정한 도덕원리에 갇히는 건 위험하다.

 

다만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기에 정당은 그만큼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까지 진보정당을 자처해온 정당들은 그런 책임을 져본 적이 별로 없다. 사고가 터지면 단식하고 엎드려 사죄한다는 제스처만 있었지 그 내용을 당내의 의사결정구조나 논의과정에 반영한 적이 없다. 모든 걸 사람의 문제로 몰거나 외부의 탄압을 빌미로 구조의 문제를 은폐해 왔고, 그런 역사가 지금의 파벌구조를 강화시켰다. 당은 무너져도 정파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논리, 당은 나를 버려도 정파는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논리가 정파를 지탱해 왔다. 하나의 잣대에 맞춰 도덕적일 필요는 없지만 그런 선택에 대해 자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텐데 지금껏 그런 윤리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정당들도 도덕적인 잣대를 시민들에게 적용하면 안 된다. 보수정당을 찍었으니 보수적이고 우매한 사람들이라 매도할 권리가 정당에겐 없다. 우리가 진보이니 당연히 당신들은 우리를 지지해야 한다고? 미안하지만 정치에서 ‘당연히’는 없다. 정당은 자신의 당원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이념과 목적을 드러내고 효과적으로 선전해야 한다. 우리밖에 없으니 우리를 찍으라는 호소는 정당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들의 이념과 정책, 지향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설득하고 타협하며 시민들과 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진보정당은 진보적인가?


그런데 그동안 진보를 자처했던 한국의 정당들은 보수정치의 중앙정치, 인물선거를 비판했지만 이를 대체할 지역정치, 정책선거를 그동안 만들지 못했거나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의 정당구조는 지금도 중앙당을 중심에 둔다. 정당법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고 소위 진보정당들도 이런 법을 바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중에 우리가 ‘갑’의 입장이 되면, 이 모든 게 자신들에게 유리할 거라 믿었기 때문에 문제의식조차 가지지 않았다.

 

심지어 기초의원선거제도가 정당공천제로 바뀔 때 진보정당의 관계자들은 잘 된 일이라며 희희낙락했다. 바로 직전까지는 풀뿌리단체들과 연대할 전략이 필요하다며 호들갑을 떨다, 법이 바뀌자 자기 당에 가입하라며 입을 싹 닦았다. 연대와 지역정치의 미래를 고민한다면 신중해야 했을 일에서 최소한의 예의조차도 지키지 않았다. 정치보다 ‘집권’이 진보정당의 구호였다.

 

이런 생각은 당을 운영하는 과정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최고위원회를 중심으로 집단지도체제가 꾸려지고 서울의 중앙당에 사무처와 정책연구소가 만들어지고 주요 당직을 맡을수록 공직을 맡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당내의 공직선거가 치열하다. 정영태의 『파벌』(이매진, 2011년)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은 2000년 창당부터 2004년 원내 진출 때까지 “한편으로는 대중조직과 지역의 기반을 확장하고 재정적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 진성당원제, CMS, 당원의 당직․공직 후보 직선제와 소환제, 지지단체와 부문 대상 대의원과 중앙위원 할당제 등의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급변하는 당 안팎의 상황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3원적인 최고집행기구를 최고위원회의 일원적 지도체제로 정비하고 다수결 제도를 도입했으며, 신생정당에 흔한 정치 엘리트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직․공직 겸직 금지와 비례대표 국회의원 연임 금지제도를 시행했다.” 정영태의 평가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당내의 민중민주파가 민족해방파를 끌어들이기 위해 이런 제도를 설계했고, 결국은 이 제도들 때문에 민중민주파가 민주노동당을 떠나 분당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누구 탓만 할 이유는 없다.

 

사실 이번에 통합진보당에서 불거진 문제점은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불거졌던 정파셋팅선거와 비교할 때 그 규모만 다를 뿐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예전부터 쭉 그래왔기에 죄책감이나 문제의식도 별로 느끼지 않는다. 권력을 관계로 보지 않고 실체로 파악해 ‘집권’하려는 싸움은 당을 구분하지 않고 계속되었다. 보수정당의 문제점이라 지적되는 비밀스런 당운영과 두목과 가신으로 대표되는 위계구조와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연계망이 보수만의 문제라 여길 현실적인 근거가 없었다.

 

나는 2010년에 울산지역 민주노동당 10년 평가심포지엄에 참여했다. 해마다 정파의 문제가 대의원대회 때 제기되어도 아무런 정치적 해결을 보지 못했고, 내부 싸움과 중앙당에서 떨어지는 사업에 바빠 울산지역의 변화에 관한 구체적인 비전조차 세우지 못했다. 구청장과 구의원, 시의원들이 배출되었지만 이들의 활동을 평가할 기준도 없었다. 자기 정파 사람이 공직을 맡는 게 중요하니 다른 정파는 무조건적인 비판의 대상, 우리 정파는 무조건적인 옹호의 대상이다.

 

이런 내부정치의 과잉이 외부정치의 부재로 이어졌고, 심지어 구청장과 구의회 다수파인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내세우는 정책조차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예를 들자면, 울산의 대공장 노조들이 당의 운영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다보니 비정규직 문제가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 『사라진 정치의 장소들』(천권의 책, 2008년)에 따르면 “2004년 비정규직지원센터는 비정규직․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위해 4,000만원의 예산을 올렸으나, 북구청에서 2,000만 원을 삭감했고, 북구의회에서 다시 2,000만 원을 삭감했다. ‘올린 예산이 실효성 있는 예산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라는 것이 북구의회의 한 의원의 말이었다. 하지만, 노동자의 대표가 구청장을 맡고 있고, 노동운동가 출신 의원들이 구의회의 절반을 점하고 있던 북구의회는 예산 삭감 이후에 어떤 제안도 다시 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내세운 이념마저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민주노동당이 권력을 잡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통합진보당 비대위가 제안한 정파등록제나 정책실명제가 그다지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파를 드러내고 그 활동을 공개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드러나고 공개되어도 권력을 바라보는 기본입장과 운영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진정 진보정당은 권력을 주인에게 돌려주고자 하는가?

 

 


민주주의에 대한 왜곡 또는 착각


이번 통진당 사태를 보며 느낀 또 하나의 문제점은 민주주의의 왜곡 현상이다. 경기동부 정파의 입장은 ‘당원총투표로 결정하자’였다. 불리한 상황 때마다 등장하는 구원투수 ‘당원총투표’, 분명 수만 따지면 불리한 상황인데도 왜 그들은 당원총투표를 외칠까? 총투표로 가면 ‘자유투표’가 아니라 사실상 ‘정파투표’로 진행되기 때문에 협상의 여지가 생긴다. 이해관계를 놓고 파벌끼리 단합하면 밖으로는 당원들의 의지로 드러나지만 사실상은 정파의 의지가 정당화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해관계의 타협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총투표가 아니라 충분한 정보의 공개와 다양한 소통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당원들의 민주주의, 정당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당의 하부조직이 발전해야 하는데, 진보정당의 지역협의회(지구당은 법적으로 해산되어 보통 당원협의회라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중앙정치의 이슈를 받아서 활동한다. 당의 일상활동이 지역의 활동과 연계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구호로만 혁신과 소통을 강조하는 건 보수정당과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당의 구조를 분권화해서 지역적인 실험을 진행할 수 있도록 중앙당이 지원하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또한 당직과 공직선거 후보자를 선출하는 과정에 대한 논란도 많은데, 당원직선제는 당을 강화시키는 방안이고, 개방형 경선제도는 당의 영향력을 외부로 확대시키는 방안이다. 한편으로 개방형 경선제도가 민주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 제도는 당이나 당직자들보다 후보자들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유권자와 정당의 연계를 약화시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는 어떤 제도가 더 올바를까? 분명한 판단이 어렵다면, 당직자를 선출하는 과정에 개방형 제도를 취하고, 공직자를 선출하는 과정에는 직선제를 적용하면 어떨까? 일반 시민이 아니라 정당과 연계되어 지역 내에서 활동한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이 자신들과 관계를 맺을 당직자를 선출하고, 이런 당직자들이 당원들의 뜻을 모아 공직자를 선출하는 방안이다. 물론 이 제안도 그냥 실험일 뿐이다. 만병통치약은 있을 수 없다.

 

근본적인 면에서 다수결주의를 민주주의로 여기는 것도 문제이다. 다수결주의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보다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다수결주의에서는 소수자가 설 곳이 없다. 실제로 《사람》2012년 5~6월호의 대담에서 한 활동가는 성소수자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실질적인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민주주의는 인식의 충돌로 발전하는데 그런 충돌을 거부하는 폐쇄적인 문화가 정당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리고 의사결정의 과정에서도 합의가 된 후에 결정이 되어야 소수자들의 설 자리가 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소수자들에게 ‘합의하지 않을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책이나 방식이 있을 경우, 합의했다고 해서 소수자들에게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 이것이 ‘연방’의 원리이다. 연방 하에서 각 단위는 참여권과 더불어 참여하지 않을 권리도 가진다. 한국의 정당도 이런 연방의 원리에 기초해서 움직이면 좋겠다.

 

통합진보당 사태로 시민들이 ‘닥치고 투표’의 씁쓸함을 제대로 맛본 것 같다. 이제 그 씁쓸함을 걷어내고 다시금 정치에의 열정을 불태울 때이다. 정당이 그런 열정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맡으면 좋겠다.

1. 국가와 시민사회의 자율성

 

■ 식민지 관료국가와 반공․규율사회의 형성: 자율성을 논할 수 있는 구조인가? 사회적 경제의 기반이 단단한가? 사회적 경제의 체제 내화.

•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의 형성: 경찰국가, 국가폭력의 일상화. 중앙이 계획하고 지역이 집행하는 구조. 시민의 자기검열과 국가처럼 바라보기.

• 지방의 내부식민지화, 자치와 자급능력의 상실. 지역적인 앎과 지식의 평가절하.

• 강력한 관료국가. 선출직 공무원과 선발되는 공무원간의 권력관계와 긴장, 갈등, 공생. 민주화에도 관료제의 능력과 구조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음. 외려 민주화를 거치며 독재자에게 바치던 복종이 독자적인 이해관계로 변화됨.

■ 정치권력과 재벌의 결탁관계 강화. 부동산 계급사회.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 하도급 관계의 일상화.

■ 법과 제도에 기반한 시민사회운동의 한계와 정치세력화에서 배제된 노동․농민의제. 전문가와 조직 중심의 시민사회운동문화. 생활의제나 민주적인 실천들이 주목받지 못하면서 시민사회의 토대가 취약해짐.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호명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능동적인 시민문화가 형성되지 못함.



2. 정책의 공동생산 또는 거버넌스 구조는 존재하는가?


■ 관료주의 문화, 관존민비 의식의 잔존: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대규모 공공수요가 발생하자 관료들이 예산, 인력, 지침들을 일방적으로 확정함. 성장주의가 흑백논리와 비밀주의를 강화시킴. 여기에 전통적인 정실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등이 뒤섞임. 선출직 관료들이 통제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됨.

•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의 관료제 개혁시도는 실패를 불러옴. 관료들의 저항만이 아니라 개혁의 방향이 현실적인 조건을 무시했음(수평적인 의사결정구조로 인한 힘의 집중과 표준화된 평가시스템으로 인한 리더십의 감소).

• 관료들이 ‘공공성’을 내세워 사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할 뿐 아니라 ‘조직의 이해관계’를 놓고 경쟁을 벌임. 정책집행단계보다 정책입안단계에서 이런 경쟁이 치열함. 보통 이런 갈등은 권력을 더 많이 가진 부처에 유리한 쪽으로, 즉 예산이나 인력규모, 기관의 법적․공식적 권한, 대통령의 관심과 지지를 더 많이 받는 부처에게 유리한 쪽에 유리함.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검찰청, 중앙인사위원회, 행정자치부, 외교통상부, 교육인적자원부, 법무부 등)


■ 주어진 기회이니 활용해야 한다는 논리의 빈약함: 누가 그런 권리를 주나? 기회는 우리에게만 주어지나?

• 거버넌스가 논의되고 있긴 하지만 지금도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정책결정은 권력자나 관료의 손에서 결정됨. 국방이나 외교와 같은 큰 사안만이 아니라 일상생활과 밀접한 문제까지도 언제나 국가권력이 그 방향을 결정하고 있음.

• 국가와 시민사회가 같이 협력해서 결정을 내리려면 그 사안과 관련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함. 협력하려면 신뢰가 필요하고 신뢰하려면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토론해야 하고, 그리고 충분한 토론이 가능하려면 토론할 수 있는 이야기꺼리가 많아야 함.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은 채, 혹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 제공한 채 같이 논의해서 결정하자는 건 거버넌스를 형식적인 틀로 만드는 주된 원인임. 또한 그런 정보를 검토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공간도 마련되어야 함. 민주적인 과정의 의미는 정보를 꼼꼼히 검토하고 충분히 토론할 시간과 공간이 보장될 때에만 거버넌스가 제 의미를 찾을 수 있음. 그러나 이런 실질적인 부분을 꼼꼼히 챙기는 사례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움.

• 민주화가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사람들에게만 권력을 줬을 뿐이어서 그들이 다시 기존의 정치세력처럼 기득권층과 야합하는 과정으로 변질되었다는 주장도 있음.

• 설령 국가가 권한을 나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시민사회의 참여와 협력의 강화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음. 왜냐하면 사회는 국가와 시민사회라는 이중 구조가 아니라 국가, 시장, 시민사회라는 삼각 구조로 이루어지기 때문임. 그래서 국가의 분권이나 역할변화는 시민사회의 강화가 아니라 시장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음. 국가의 ‘탈규제’와 ‘민영화’, ‘위탁관리’만이 국가의 문제점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주장은 그런 시각을 잘 보여줌.

• 거버넌스는 사안을 계획하는 단계에서가 아니라 그 사안을 진행하는 단계에서 갈등해결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제안되었고, 그렇기에 갈등의 씨앗은 여전히 남아 있음. 정부는 거버넌스를 주장하면서도 일반 주민이나 평범한 시민들을 중요한 논의대상이나 파트너로 여기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계획하고 집행하고 있음.

•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한국의 국가는 특정 주민들만을, 소위 ‘지역토호’라 불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아 왔음. 뉴라이트의 권력기반이 강한 이유도 그것임. 이제는 이런 세력들이 시민사회, 제3섹터라는 영역 속에 자연스럽게 포함되고 있음.



3. 운동조직인가 사업조직인가, 운동과 사업을 병행하는 조직인가?


■ 자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나눔장터 등 사회적 경제의 영역은 계속 넓어지고 있고 관련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지만 규모와 활동가의 수가 운동의 목적을 증명하지는 못함. 외려 규모와 수가 늘어날수록 단체 내부에서조차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자기 담당사업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자기반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옴. 외부로 알려진 만큼 내실이 없다는 비판, 사업담당자만 있지 활동가는 없다는 성찰도 있음. 눈에 띄는 사업에 단체들이 몰리고 때로는 단체들이 서로 경쟁하며 기본적인 정보조차 공유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도 들림.

• 민관협력이나 거버넌스가 원래의 취지와 달리 ‘관주도’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음. 민관협력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관이 기획하거나 공모하는 사업을 단체가 지원해서 진행하는 식이고, 대충 기획된 것을 제대로 집행하느라 너무 힘이 든다는 얘기도 나옴. 그런데도 이런 사업관행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은 없고, 이런 식이라면 당장 사업을 때려치고 싶지만 우리가 아니면 안 될 사업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한다는 식의 얘기만...

• 국가의 일을 대행하는 것이 사회적 경제 진영의 역할일까? 물론 주민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사업들을 제대로 실행하는 건 중요한 일이지만 그런 사업들에 모두 ‘사회적 경제’라는 말을 붙일 수는 없음. 특히 사업에 대한 ‘평가의 권한’을 사회적 경제 진영이 가지고 있지 않고, 외려 관이 그런 평가의 권한을 가지고 사업에 개입함. 따라서 사업을 제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이 사업을 하는 것인가’, ‘사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을 맺고 확장하며 사업에 개입하고 있나’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면, 많은 사업들은 사회적 경제의 기반을 다지는 운동을 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핑계일 뿐임.

• 사회적 경제의 제도화와 사회적 경제의 공고화나 확산에 도움이 될 것인가? 단체들의 고유활동을 지원사업으로 기획하거나 그 단체의 설립목적과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업을, 소위 ‘뜨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문제임. 우리가 사업만을 위한다면 자본주의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고, 보조금만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관료주의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음. 그런 의미에서 필요한 인적, 재정적 자원을 마련하는 과정이야말로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함. 하지만 어느 순간 사회적 경제를 지행한다는 단체들도 쉬운 길만을 선택하고 있는 것 같음. 갈수록 단체들의 사업이 비슷해지고 있고, 지역특성을 반영한 활동들, 아니 유기체처럼 변화하는 지역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반영하는 활동들은 사라지고 있음.

• 공무원들이 바보는 아니고 자원이 제한되고 부족한 시민사회의 상황을 알고 있기에 더욱더 거만하게 나옴. 때로는 일부러 단체들끼리 경쟁을 붙이고 자기 말을 잘 듣는 단체들을 밀어주기도 함. 그러는 과정에서 운동의 목적은 자꾸 사라지고 사업만 남게 됨. 더구나 행정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사회의 밑바닥을 다지고 관계를 확장시키는 사회적 목적보다 앞서 나가게 됨.


■ 사회적 경제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면에서 하게 되는 고민도 있음.

• 요즘은 어디에 가나 박원순 시장 얘기를 듣게 됨. 하지만 박원순 시장과 같은 사람이 앞으로 더 나올 수 있을까? 운동이 사람을 성장시키지 못한다면 좋은 활동가, 뛰어난 활동가도 더 이상 나오지 못할 것임. 과거에는 학생운동 출신들이 이런저런 시민사회운동의 활동가로 충원되었지만 경쟁적인 교육체계, 대학 중심, 학벌 중심의 교육체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이제 그런 충원구조는 사라졌음. 10년 뒤, 20년 뒤에는 누가 어떤 과정을 밟아 운동에 참여할까? 아이디어나 기획력이 뛰어나고 그나마 사회정의감을 가진 대학생들도 아마 단체가 아니라 행정조직을 택할 것임. 왜냐하면 그곳이 실행력과 자원을 가지고 있으니까.

• 활동의 문화도 많이 바뀌었음. 목적을 공유하더라도 문화를 공유하지 못하는 ‘세대단절’의 문제가 풀뿌리운동 내에서도 드러남. 이런 단절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풀뿌리운동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는지 모르겠음. 그런 고민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 고민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거의 못 봤음. 10년 정도 더 지나면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생활리듬과 가치관을 가진 이질적인 존재가 한 단체 안에서 (그것도 운이 좋아야)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될 것임.

• 박원순 시장이 되고 난 뒤에 서울시가 달라졌다는 얘기가 많이 들림. 시장 한 사람 바뀌었을 뿐인데, 라는 말을 활동가들에게서도 듣게 됨.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상황이야말로 운동의 위기상황임. 지역에서 몇 년 동안 빡세게 일할 필요가 뭐 있어, 시장 한 명, 구청장 한 명 바뀌면 이렇게 분위기가 확 바뀌는데, 라는 생각을 시민들이, 심지어 활동가들마저 하게 되었다는 것임. 이게 운동의 위기가 아니라면 무엇이 위기일까?

• 운동이 바꾸고자 한 건 시장이라는 직책이 아니라고 생각함. 운동은 시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구조’를 바꾸려고 한 것임. 그렇다면 지금 서울시의 의사결정구조, 정책결정구조는 어떻게 바뀌고 있나? 몇몇 시민사회단체 인물이 행정체계나 위원회에 들어가는 건 이전 정부 때도 자주 있던 일이고 구조적인 변화가 아님. 그리고 시장이 현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목소리를 듣고 챙기는 것이 한편으론 좋아 보이지만, 달리 보면 지방자치의 근본정신을 거스르는 것이기도 함. 무슨 일이 생기면 시장님의 트위터에 글을 남겨라, 이건 구조적인 변화가 아님. 또한 시장의 변화가 일선 공무원들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임. 그리고 공무원들이 생각하는 제3섹터, 주민단체의 범주가 풀뿌리단체로 이해되는지도 의문임. 기존의 관변단체에 대한 지원과 묵인이 바뀌고 있는지도 살펴야 하고, 제 3섹터를 양성한다는 목적 하에 허투루 사업이 진행되는 건 아닌지 꼼꼼하게 감시해야 함.



4. 사회성의 강화인가 지식인 네트워크의 강화인가?


■ 지식인의 자율성 자체가 정부나 자본의 영향을 받으며 흔들리고 있음. 한국연구재단을 비롯한 연구지원에 따라 연구방향이 주로 제도로만 맞춰지고 실질적인 삶이나 방향성과 관련된 부분들은 약화됨.

• 지방으로 내려가면 이런 문제점은 더욱더 심각해짐. 즉 지식인 사회가 사회에 긍정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제도권력과 결탁하며 이익을 추구하기도 함(각종 연구용역들이 그런 거래의 매개가 됨).

• 거버넌스는 이해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전문가의 참여를 보장하는데,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전문가는 누구인가? 주민들은 지역에 관해 추상적이고 보편적 지식보다 구체적이고 경험적 지식을 소유하고 있음. 그리고 이런 지식은 적어도 지역의 문제를 풀어감에 있어 전문가의 전문적인 지식만큼 소중함.

• 이에 따라 전문가의 역할도 주민들을 지도하거나 계몽하는 게 아니라 주민의 욕구를 읽고 그것을 전문적인 계획으로 해석하는 것이어야 함. 그렇지 않을 경우 거버넌스는 민주적인 참여를 보장하기는커녕 기술관료와 전문가들이 결탁한 기술관료주의(technocracy)를 정당화하는 틀이 되기 쉬움.


■ 정부와 협상을 할 힘은 존재하는가?: 정부에 대한 협상력은 무엇일까? 우리의 입장을 관철시킬 힘은 무엇일까?

• 민주화 이후 시민운동이 내부의 의사소통구조를 민주화하고 정부와의 거리를 가깝게 하려는 노력만큼 시민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을 했다면 이런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임. 결국 명망가나 지식인 중심의 시민단체는 이슈파이팅 방식을 제도권 내에서 추진하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고, 이는 시민운동의 운동성 상실을 가져옴.

• 그동안 한국의 시민운동이 시민참여를 확산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참여를 가로막는 구조적인 장벽을 제거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음. 결국 이는 ‘대표되지 않은 참여자’(unrepresentative participators)로 비난받을 여지를 제공했음. 따라서 시민참여의 효율성은 시민참여의 민주성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 시민단체가 전문적 연구나 로비, 대중매체를 통한 메시지 전달 기능을 수행하고, 재단이나 기업, 정부에게 재정을 의존할 경우 회원들과 상호작용하며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운동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음.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마음이 급하다. 주말 동안 집에서 엄마, 아빠랑 노는데 익숙해진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으로 가야 한다. 일어나면 간단히 먹을 걸 챙겨 주고 아토피성 피부라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히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선다. 차량을 운행하지 않는 어린이집이라 아이 손을 잡고, 보통은 아이를 안거나 어부바를 하고 길을 떠난다.

 

집에서 십분 정도 떨어진 어린이집으로 가는 시간은 종잡을 수 없다. 가는 길에 나무와 꽃, 가게 안의 닭과 오리, 토끼와도 인사를 나눠야 하고, 중간에 있는 공원 분수대와 나무 위 까치, 참새와도 인사를 나눠야 한다. 기분 좋게 헤어지기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동요도 계속 부른다. 그러다보면 이삼십 분이 후딱 지나가고 어린이집은 멀게만 느껴진다.

 

2주에 한번 월요일 오전에 동네 도서관에서 주부들과 함께 사회과학책을 읽는 날엔 마음이 더 바쁘다. 아이가 조금 일찍 일어나면 다행이지만 늦잠을 잔 날에는 종종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하지만 아이가 억지로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눈치를 보면서 웬만하면 설득하고 조심히 준비해야 한다. 물론 그래도 안 되면 들춰 업고 뛰어야 하지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참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이유는 그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다른 곳과 나누기 위해서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삶을 사는 것도 중요하고, 그래야 아이도 강요받지 않고 자연스레 자신의 삶을 선택할 거라 생각했다. 지금도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고 더 단단한 삶을 살 거라 나는 믿는다.

 

실제로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시간 여유가 생겼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오거나 모임장소로 가서 내 일을 할 시간이 생겼다. 나만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아침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버스에 아이를 태우고 돌아서는 엄마들의 표정에서 뭔가 자유와 여유를 엿볼 수 있다.

 

그런 여유와 자유로움이 있기에 맞이하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즐겁다. 아이가 점심밥을 먹고 돌아오는 시간인 3시 즈음이면 길가에 엄마들이 늘어서 있다. 조금 편안해진 마음으로 아이를 반가이 맞이한다. 아침의 여유가 없어진다면 이런 반가움이 생길까?

 

그냥 집에서 키울까 생각하다 접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평생 똥 기저귀 한번 갈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들은 옛날보다 애 키우기 쉬운데 무슨 어린이집이냐며 떠든다. 하지만 대가족이 모여 돌아가며 한 번씩 안아주고 집 밖에 애 혼자 나가도 걱정 없던 시대와 지금은 다르다. 혼자서, 또는 둘이서 애를 키운다는 건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물론 어린이집을 보내는 게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어린이집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 사고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영 편치 않다. 그리고 무상보육 이전에는 기본비용에 각종 프로그램 비용까지 어린이집에 보내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시립어린이집을 찾았고, 마침 동네에 시립어린이집이 새로 개원했다. 하지만 시립어린이집 입소순위를 보고 곧바로 마음을 접었다. 빈곤이나 장애를 제외하면 맞벌이여야 우선순위에 드는데, 취업의 기준이 “1일 8시간 이상, 월 20일 이상 근로”였다. 우리 집 두 사람 모두 열심히 일을 하지만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는 맞벌이가 아니다. 대체 우리는 누구인가?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올 7월부터 국공립만이 아니라 민간․가정 어린이집에도 맞벌이에 우선권을 주겠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 건 맞벌이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누군가에게 우선순위를 준다는 건 참 어렵고 조심스러워야 할 일인데 정부의 정책결정은 언제나 일방적이다. 그리고 초인적인 노동을 칭송하는 사회가 아니라 여유를 인정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우리 아이는 그런 사회에 살게 하고 싶다.

 나는 녹색당 평당원이다. 당직자도 아닌 사람이 그동안의 녹색당 활동을 설명하고 평가하자니 참 부담스럽다. 아마도 내게 글을 청탁한 건 그동안 정당정치를 강하게 비판해온 사람이고 아나키즘을 신념으로 삼는 사람이라는 점 때문인 듯한데, 한발 멀리 떨어진 사람이 활동을 자세하게 관찰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인상비평’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을 독자들은 염두에 두면 좋겠다. 그리고 좀 단정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건 뭐 어쩔 수 없다. 내 성격 탓이다. 그런 걸 피하고 싶었으면 신중하게 글을 써줄 다른 필자를 구했어야 옳다. 이 글이 불편하다면 독자들은 나를 탓하지 말고 청탁을 한 편집진을 탓하길.

 

녹색당 얘기를 하기 전에 개인적인 얘기를 잠깐 하면, 다른 사람들은 나를 좀 소신 있는 사람, 고집이 세고 싫은 걸 못 참는 사람, 이간질 대마왕으로 보지만 나는 사람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내게 ‘관계’는 단순한 가치가 아니라 신념이자 이념이기도 하기에 판단하고 행동하는 중요한 기준이다(다만 맺고 끊고를 확실히 할 뿐이다). 내가 녹색당에 참여한 이유 역시 관계가 강했다. 싸부(사부님이 아니다!)이신 김종철 선생님이 녹색당 전임강사를 자처하며 활동하시는 걸 보고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녹색당에 발기인으로 참여하기 전에도 대안이념으로서 녹색사상이 한국사회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보며 불안했지만 녹색당이 아닌 다른 활동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녹색당을 택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풀뿌리의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생각, 생활정치와 제도정치의 끊어진 고리를 연결시켜야 한다는 생각, 그런 노력이 조금 더 빨리 필요하다는 조급함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을 가장 잘 풀 수 있는 정당이 녹색당이라 믿었다. ‘그래도 아나키스트라면서?’, 뭐 이런 생각이 든다면 우리 계통의 대선배이신 프루동 옹도 선거에 참여한 경험이 있음을 떠올려 주시라(나중에 정치에 참여하는 건 똥물에 손을 씻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기시긴 했지만).

 

그리고 정당에 참여한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청년진보당의 당우를 잠시 했었고, 진보신당의 당우도 했었다. 소위 진보정당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거나 당원들을 대상으로 교육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정당과 관계를 맺은 게 처음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리고 못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정치학을 전공했다. 학교에서 신물 나게 배운 게 제도정치와 관련된 여러 이론들이었다. 재미가 없어 열심히 공부하진 알았지만 제도정치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대충 알고 있다. 굳이 이런 부연설명을 하는 건 세상 물정 몰라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어서이다(이런 뒷담화를 제법 듣다보니 한번쯤은 해명을 하고 싶었다).

 

이 글 속엔 이런 고민들이 뭉뚱그려져 있다. 아마 전체적인 기획 글 중에서 가장 특이한 글일 수 있을 텐데, 어차피 녹색당이라는 정당이 특이한 정당이니 좀 특이하게 설명하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

 

녹색당이 있어 행복해요!: 거꾸로 가는 정당

 

2011년 10월 30일 서울의 선유도 공원에서 녹색당 창당발기인대회가 열렸고 2012년 3월 4일에 창당대회를 했으니, 불과 4개월 만에 정당법에 따라 5개 시도 이상에서 1천명 이상의 당원을 모은 셈이다. 기성조직을 전혀 끼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창당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다. 서울시나 경기도는 어떻게 하더라도 나머지 3개 지역에서 1천명 이상을 모은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중앙언론사들이 주목하는 정치흐름도 아니고, 더구나 ‘야권연대’가 대세라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걸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때였다. 기성정당에서 나온 사람들과 지역의 풀뿌리단체들도 녹색당에 결합했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녹색당은 서울과 경기, 부산, 대구, 충남에서 창당대회를 열었다. 서울과 경기는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부산, 대구, 충남에서 치러진 창당대회의 의미는 남다르다. 특히 대구와 충남의 창당대회는 녹색당의 열기를 달군 녹색당 내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창당대회까지의 당원분포를 보면 충남 홍성 홍동면은 전국에서 녹색당원이 가장 많은 지역이었고 ‘녹색당의 성지’라 불릴 정도였다. 사실 홍성은 풀무학교로 이미 유명한 곳이고, 한국 농촌공동체의 희망이라 불리는 곳이니 녹색당의 터전이라 해도 무색하지 않다. 하지만 농민들이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고 정당의 당원으로 가입한다는 것은, 그리고 혈연, 지연, 학연의 연고가 강한 농촌 지역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것은 ‘정치적인 커밍아웃’이다.

 

이런 일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뭘까? 여러 사람들의 얘기와 카페, 홈페이지, SNS에 올라오는 내용을 종합하면, 그동안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리고 자기 욕구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못했던 시민들이, 채식, 성소수자, 인권, 생태 등 다양한 이슈들이 녹색당에 결합했다. 다른 정당들도 있는데, 왜 하필 녹색당이었을까?

 

일단은 ‘녹색’이 주는 편안함이다.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녹색은 이념이 아니다. 이건 녹색당의 강점이자 약점인데, 녹색당은 ‘탈핵’과 ‘생태’라는 구호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청색과 적색을 대체하는 제 3의 이념, 청색과 적색보다 훨씬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이념이라는 점은 한국사회에서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과거에도 여러 차례 녹색이념을 ‘표방한’ 정당을 창당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에 정치적인 거부감도 별로 없다. ‘착한 정당’ 같아서 많은 시민들이 좋은 뜻으로 녹색당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게 강점이자 약점이다(이유는 뒤에서).

 

편안함보다 더 강한 원동력은 녹색당이 행복을 실현할 장소로 보였다는 점이다. 실제로 녹색당이 만들어지고 난 뒤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생애 첫 당원’이 녹색당의 모토가 될 만큼 그런 사람들이 많았고, 2012년 3월 4일 창당시점에는 여성당원의 비율이 53%에 달했다. 청소년당원도 있었고, 아이들과 함께 발기인대회나 창당대회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치에 부정적인 한국사회에서 이런 당원들이 등장했다는 것은 중요한 ‘사건’이다.

 

거의 대부분의 정당들은 ‘미래의 행복’을 보장한다. 우리를 지지하면 행복을 실현시켜주겠다, 눈물을 닦아주겠다느니 또는 행복을 되찾아주겠다는 공약(公約)을 내건다. 하지만 녹색당은 그럴 힘도 의지도 없다. 왜냐하면 ‘집권’을 위한 정당도 아니고 사회체제의 변화와 개인의 삶을 분리하는 정당도 아니기 때문이다. 녹색당원들은 녹색당에 참여하며 행복을 느낀다. ‘지금 행복’하기에 ‘생애 첫 정당’에 기꺼이 에너지를 쏟는다.

 

그래서 이런 에너지가 또 다른 에너지를 만들고, 이런 에너지를 만드는 당원들이 녹색당의 원동력이다. 행복해하는 사람을 보며 또 다른 사람이 행복에 감염되고, 그러면서 녹색당의 앞날이 밝혀질 것이라 기대했다. 이건 정치과정의 역전이다. 미래를 저당잡히고 보장받길 원하는 당원이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보장하려는 당원이 녹색당을 이끌고 있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 당활동을 통해 당원들은 공적인 행복(public happiness)을 느낀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혁명이 자유의 공간을 만든 건 “어느 누구도 공적 행복을 향유하지 않은 채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점, “아울러 공적 권력에 참여하지 않고 몫을 보유하지 않은 어느 누구도 행복하거나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녹색당은 한국사회에 행복을 향유할 자유의 공간을 만들었다.

 

물론 당원으로 가입한 사람들 모두가 적극적인 당원은 아니다. 적극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녹색당이 만든 다음카페(http://cafe.daum.net/Kgreens)나 페이스북 그룹(http://www.facebook.com/koreagreenparty)을 보면, 다양한 당원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소수(하지만 다른 정당들에 비하면 훨씬 다수!)이다.

 

하지만 그 수보다 더 중요한 건 이런 적극적인 당원들이 행복을 느낀다는 점이다. 피곤한 한국사회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의식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행복해서 스스로 나서는 일이 많다는 점이다. 선거를 준비하면서 당원들이 나서서 현수막을 만들고 걸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건 참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그 경험이 항상 좋지만은 않았겠지만 행복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조직적인 완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뛰어다니는 당원, 이런 정당이 그동안 한국에 있었을까?

 

그래서인지 녹색당 사무처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한 송준규 씨는 《공동선》 104호 특집에 쓴 “풀뿌리들의 놀이터, 녹색당”이라는 글에서 이를 ‘놀이’라 표현했다. “사무실에서 일에 대해서 서로 격 없이 물어보고 대화하는 속에서 나는 전체적인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고, “공보물에 들어갈 핵심적인 슬로건을 정하는데도, 각 책상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생각을 물어보고 깔깔 웃으면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던 장면이 인상깊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인상은 “참 발랄하다는 것”으로 선거를 위한 특별당비 모금과정이나 선거운동과정에서 평당원들이 자발적이고 발랄하게 참여했다고 평가한다. “이렇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들의 방식대로 신나고 즐겁게 도전해보는 점에서, 녹색당의 구성원들은 정치를 하나의 ‘놀이’로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송준규 씨는 결론을 내린다. 정치를 놀이로 대하는 건 그동안 부정적이고 엄숙했던 정치와의 결별이다.

 

사실 이것은 녹색당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기도 하다. 풀뿌리 운동에서는 나름의 상식으로 굳어진 논리가 있다. 활동가나 실무자가 너무 열심히 활동하지 말고 주민들이 주체가 되도록 열어 놓으라는.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려면 꽉 짜진 느낌이 없어야 한다. 3월 4일 창당 이후 녹색당 중앙당의 실무자는 8명이었다. 역설이지만 실무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당원들의 일이 많았다. 특별한 건 아니고 이런 느슨함이 녹색당의 당원들을 고무시켰다.

 

허나 당원들의 요구에 실무진이 신속히 반응하지 못한 건 고민점이다. 선거나 제도정치에 익숙한 사람들은 모르지만 생애 첫 당원들이 모든 걸 알아서 판단하고 반응하기는 어렵다. 스스로 찾아가며 성장하는 면도 있지만 이런 과정을 익힐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당체계를 마련하는 건 앞으로의 과제이다.

 

녹색당, 우리들/너네들 정체는 뭐니?

 

녹색당 창당대회에서 사무처장을 맡게 된 하승수 씨는 《녹색평론》 2012년 1/2월호(제 122호)에 쓴 “지금 왜 녹색당인가?”라는 글에서 녹색당을 ‘반정당의 정당’이라 불렀다. 대의민주주의에 한계가 있지만 “당장의 권력이 아니라 20~30년 후의 사회를 위한 비전과 가치를 가진 지속성 있는 정치세력이 있다면, 그 정치세력이 지역과 일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선거정치만이 아니라 생활 속의 정치를 해나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정치세력이 일부 권력 지향적인 엘리트들을 통제할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미래의 비전과 가치를 가지고 제도정치만이 아니라 생활정치를 펼치며 권력 엘리트를 통제하는 것이 녹색당의 역할이다. 뒤집어 얘기하면 녹색당이 비판하는 정당정치는 지금 당장의 권력만 보고 선거정치에 올인하며 일부 엘리트들이 나눠먹는 정치이다.

 

그동안 정당정치를 잡아먹을 듯 비판하고 한국의 진보정당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 왔지만 ‘좋은 정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시민들에게 세금으로 삥 뜯어 한 해에만 수백 조의 돈을 마음대로 나눠먹는 놈들, 재벌과 결탁해 부정과 부패를 일삼는 놈들을 한 방에 날려버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돈과 힘을 좋은 방향에 쓰면 얼마나 살기 좋은 사회가 될까. 선거 때마다 누군들 이런 생각이 없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그런 일을 하리라 기대할만한 정당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 정당이 정녕 가능할까 항상 의문을 품었는데, 녹색당은 그런 정당을 표방했다. 물론 기존의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처럼 그런 취지를 내세우는 정당들은 있었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반(反)정당의 잣대를 들이대면 그 정당들도 자유롭지 않다. ‘당외’만이 아니라 ‘당내’의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표결이나 다수결의 문제로만 받아들이고 당장의 이해관계에만 눈독을 들이고 통합과 연대를 일삼는 경우도 있었다. 이 점은 통합진보당의 사태가 반면교사로 보여주고 있는 면이다.

 

물론 녹색당만 기성정치의 함정을 잘 빠져나갈 것이라 믿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녹색당을 지지한 것은 다른 정당에서 드러나지 않는 녹색당의 가치 때문이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지역/지방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정당은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모든 게 중앙에서 결의되어 지방으로 전파되고 조직의 혈관을 타고 이해관계가 배분된다. ‘풀뿌리’에 기반을 두고 그 관점에서 정치를 재구성한다는 것이 내겐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 점은 풀뿌리운동의 동지(同志)로서 10년 이상 지켜봐온 하승수씨와 김현씨가 녹색당에 자리를 잡았고 그동안 친분을 맺어 왔거나 이름을 들어온 전국의 풀뿌리 활동가들이 녹색당에 결합한 것으로 내게 설명되었다. 나는 지역의 연합체로서의 정당, 어소시에이션의 어소시에이션으로서의 정당이 보고 싶었고 녹색당에 기대를 걸었다.

 

물론 ‘반정당의 정당’은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리고 녹색당이라는 형태가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를 해결할 ‘반정당’이라는 틀과 잘 어울릴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녹색당의 핵심구호인 ‘탈핵’만 봐도 강력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어 지금 당장 강력한 힘이 요구될 듯한데, 반정당의 틀은 꽤 느슨하다. 반정당의 정치는 분권과 자치를 요구하는데 한국의 정치구조는 강력한 중앙집권제이다. 논리적으로는 연결될 수 있지만 탈핵을 장기적인 ‘에너지 전환’과 연결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분권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집권의 논리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게 정치현실 아닌가. 더구나 지금 당장의 이해관계를 놓고 다투는 선거에서 미래의 비전과 가치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까? 그리고 중앙정치 중심, 인물(명망가) 중심의 선거에서 반정당의 가치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어려운 물음을 푸는 방법이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하나는 이 판 자체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일본의 마쓰모토 하지메처럼 ‘착한 정당’ 이미지를 포기하고 “우리도 길목 좋은 데서 데모 좀 해봅시다”나 “선거기간 동안만이라도 역 앞을 답답한 규제나 억압을 풀어버린 해방의 공간, 즉 ‘혁명 후의 세계’로 맘대로 만들자고 생각”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판 자체를 뒤집는 것이다(그럼에도 지방선거에서 하지메가 상당한 득표를 했다는 점을 생각하자). 다른 하나는 중앙정치나 선거판에 영향을 미칠 만한 ‘사건들’을 만드는 것이다. 사건은 불확실한 현실에 구멍을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녹색당은 이번 총선에서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하지 못했다. 첫 번째는 아예 무시된 듯하고, 두 번째는 고민만 된 듯하다. 녹색당이 창당하기 전에 『녹색당 선언』(이매진, 2012년)이 출간되었다. 녹색당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이 당원이 된 이유를 담담하게 털어놓은 책이다. 책을 읽어보면 녹색이라는 큰 틀로 묶이긴 하지만 각자의 관심사와 처지가 다르다. 서로 쓰는 말에서도 약간씩 충돌이 보이고(가정, 아이, 노동, 가난 등), 근본적으로는 ‘잘 먹고 잘 사는 게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관한 답이 없다. 이 근본적인 물음에 관한 답이 글 속에 골고루 퍼져 있어야 할 텐데, 이 선언은 모음집에 가깝다. 이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당원들끼리 공유하는 내용이면 상관없지만 ‘선언으로서’ 사회에 던져진 사건은 아니었다.

 

창당대회 때 발표된 창당선언문 역시 녹색사회로의 전환을 얘기하지만 4대강사업이나 핵발전소 등에 관한 이런저런 반대와 환경, 생명, 풀뿌리, 여성, 인권, 평화 등의 힘이 성장했다는 선언 정도이다. “녹색의 가치가 더 이상 미루어지거나 부차적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됩니다”라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그래서 녹색의 가치가 뭔데?’라는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녹색과 관련해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파장을 일으켰던 선언은 1989년에 발표된 ‘한살림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한살림 선언은 산업문명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며 중앙집권화된 기술관료체제의 지배를 비판하고 생명의 세계관에 따른 공동체 회복과 생명의 질서 실현을 주장했다. 이것은 근대의 산업문명을 우리의 동학과 서구의 신과학운동, 녹색운동으로 극복하려는 놀라운 선언이자 사건이었다. 녹색당은 이 정도의 충격적인 선언이나 사건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기존의 선거판을 받아들이고 조금 더 즐겁게 선거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신생정당이기에 더 조심스럽게. 그러면서 녹색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거려졌던 이물감들이 드러났던 것 같다. 성소수자를 암이라 부르고, 침뜸을 놓는 분들을 돌팔이라 부르고, 여전히 지도부를 찾는 모습을 보며 내가 어떤 정당에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이런 폭력을 다양성의 논리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시간이 지나고 충분히 설득하면 나아질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미 내면화된 편견의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깊다. 그걸 다양성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소수자는 폭력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하나의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건 녹색당이 추구하는 다양성이라는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정당이라는 틀 속에서 녹색의 감수성을 공유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이다. 그 정치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로 없다. 다만 정당이라는 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형태인데, 그 목적이 당원과 시민들에게 얼마나 이해되고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해란 건 단순히 알고 있다가 아니다.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를 보듬어야 이해가 가능하다. 그런 공감은 설득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변화될 수 있고, 정당은 그런 장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했는데 바로 개입한 선거는 그런 여유를 주지 못했다.

 

사람들의 모습만이 아니라 녹색당의 구호를 만드는 방식도 모호하다고 생각했다. ‘안전한 밥상’과 ‘핵 없는 미래’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 밥상과 미래가 아이들로 재현되는 건 문제이다. 나도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키우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한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을 살지 ‘아이를 위해’ 살 생각이 없다. 아이는 독립된 개체이고 ‘그만의’ 미래가 있고, 다만 나는 그 선택지가 줄어드는 걸 막고 싶을 뿐이다. 내가 즐기고 누려온 것들이 아이들에게 상상력의 과제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아이 없는 사람들, 혹은 아이 없이 사는 사람들, 또는 과거의 가족구성과는 다른 동거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녹색당의 가치가 소수라면 이런 시대적인 변화를 반영해야 할 텐데, 그런 고민은 부족한 듯했다. 착한 정당은 사건을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엘리트라고 부르는 존재는 단지 힘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는 누군가를 위하기도 하고 선한 의지를 품고 이를 위해 힘을 기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같은 정당의 당원으로서는 같이 마주하고 싶지 않다. 그럴 거면 정당 외에 다른 길을 찾겠다. 남을 위하고 모두를 위한다는 자들이 정치를 이렇게 파괴시켰기 때문이다. 녹색당이 경계해야 할 지점이자 가장 취약한 지점이기도 하다.

 

녹색당, 우리가/너네가 정치를 알아?

 

이런 문제가 가장 불거지는 시공간이 바로 선거이다. 녹색당은 창당 후에 바로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사실 너무 무리한 일정을 강행한 것이고, 후쿠시마 1주년이라는 시기에 너무 집착한 게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이미 시작된 일이고 많은 당원들이 선거에 올인했다.

 

하지만 생애 첫 당원들과 선거를 치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선거법도 익숙하지 않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더구나 좀 선거를 해봤다는 분들이 하는 조언은 기성정당과 다를 바 없다는 반대에 부딪치고, 새로운 시도는 그게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냉소와 맞물린다. 반정당의 정당이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는 바로 선거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이왕 선거판에 끼어들었으니 자기 존재를 잘 알렸어야 했는데, 녹색당의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선거 당시 녹색당 선거공보물에 대한 찬사가 줄을 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으나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은 녹색당 선거공보물을 보고 실망했다고 한다. 적은 비용으로 예쁘게 만든 거야 좋았지만, 설마 했었는데, 비례대표 후보자들의 학력이 떡하니 나와 있다. 가뜩이나 학력이 좋은 녹색당 아닌가? 선거규정상 어쩔 수 없다고 했는데 진보신당의 공보물에는 학력이 없었다. 왜일까? 학벌사회에 대한 공감능력은 왜 부족할까?

 

그리고 “핵이 밥상에 올라온다”는 공보물의 큰 문구는 핵이 위험하다는 의도는 전달했지만 핵이 아니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핵을 반대하는 것이 석유문명을 반대하고 성장 중심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점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자는 논리로 들리기도 했다. 공보물은 우리가 얼마나 좋은 정당인가를 설명하는 듯했고, 마치 잘 아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듯했다. 농업, 생명권, 노동사회 탈피, 여성․소수자․청년의 정치를 만든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여전히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없다.

 

사실 녹색당이 표방한 것은 생활정치와 제도정치의 연계였다. 그런데 이번 총선을 통해 녹색당은 어떤 연계를 목표로 삼았을까? 몇 가지 정책공약을 보면 그런 연계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구상은 없었다. 무엇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무엇을 하기 위한 발판이 필요한데, 무엇을 하려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원’하겠다는 내용은 공약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제도적인 변화를 꽃피게 할 사람들을 어떻게 찾고 그들을 도울 것인가? 생활정치의 기반을 강화시키기 위해 녹색당이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가? 이런 내용을 녹색당의 공식적인 정책이나 논평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는 이 점이 총선의 중요한 이슈여야 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중앙정치에 열중할 때 녹색당은 지역정치, 지방정치, 생활정치에 몰두하는 면을 보여야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런 활동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것을 공약으로 제시했으면 어땠을까? 녹색당을 아는 사람이라면 굳이 읽지 않아도 될 내용, 녹색당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제시해야 알 수 있는 내용 대신에 말이다. 아마도 청년당이 훨씬 더 짧은 시간 동안 아무런 토대 없이 활동하고도 0.34%라는 정당득표를 받은 걸 보면 선거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아마 이런 작업을 하고 녹색당이 0.48%의 표를 받았다면 조금은 덜 억울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하는 점은 앞서 말했듯이 녹색당이 총선에서 사건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원들이 열심히 뛰어다니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자들이 목을 놓아 지지를 호소했지만 그건 사건이 될 수 없는 일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건 다른 정당들도 선거 때 열심히 하는 일이다. 선거라는 ‘판’을 뒤흔들어야 사건이 되는데, 그런 사건은 없었다. 외려 사건은 진보신당에서 터졌다. 청소노동자 김순자 씨가 비례대표 1번이 된 것은 한국정치의 사건이었다.

 

물론 선거운동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철저히 중앙정치로 논리로 만들어진 선거판과 소수정당의 선거운동을 가로막는 선거법이 녹색당의 발목을 잡았다. 녹색당원 오관영씨는 《창비주간논평》에 쓴 “녹색당 총선 참관기”에서 각종 정책평가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고도 이를 알릴 수 없었던 현행 선거법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녹색당의 지향과 현실의 제도정치 사이에 간극이 컸고, 제도정당으로 등록하면서 현실의 제도적 틀이 강제하는 힘이 녹색당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했습니다.”고 평가한다. 아울러 “녹색당은 기존 제도정당의 장벽에 균열을 내는 녹색당다운 소통방식, 선거운동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는 내부의 한계도 인정한다. 어쨌거나 법적, 제도적 한계가 있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장애물이 없었어도 녹색당에서 사건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지 어떤 개인이 후보자로 출마했다가 아니라 기존의 ‘정치문법’을 뒤흔들 새로운 언어의 출현이 필요했는데 녹색당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녹색당들이 성공한 것은 바로 그 점에서였다. 페트라 켈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새로운 정치의 언어와 문법을 개발할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였다.

 

가끔씩 녹색당이 주류언론에 노출되기도 했지만 그 역시 기존의 정치문법을 강화시키는 노출이었다. 요샛말로 하면 ‘프레임’을 바꾸는 게 아니라 프레임을 강화시키는 노출이었다. 소수의 사람들이 열심히 뛰는 ‘좋은 정당’ 정도였지 이 정당이야말로 정말 ‘새로운 정당’이라고 얘기하는 내용은 없었다. 그래서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어떤 정치적 충격을 느끼며 녹색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서게 만들지는 못했다. 사람들의 선입견과 편견을 깨려면 그것을 뒤흔들 사건이 필요한데 녹색당은 그런 사건을 만들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이 스스로 위안하는 점은 당의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정책의 클릭수가 높다는 점 정도이다. 진정한 ‘정책정당’이라는 주장이지만 클릭수가 높다는 게 정책에 대한 지지도나 인지도가 높다는 점이나 정책내용이 뛰어나다는 점을 뜻하지는 않는다. 녹색당의 정책이 분명 보수정당들보다는 뛰어나지만 진보신당과는 경쟁관계에 있었다. 두 당의 정책을 비교하면 상당 부분이 겹친다. 더구나 녹색당의 정책은 완성본이 아니었다. 선거에 활용할 몇몇 정책을 모아놓은 것이고, 그 내용에 당원들이 충분히 공감하는 과정을 거치지도 못했다. 결국 개별 정책 하나하나가 아니라 전체적인 녹색당의 정책기조에 관한 내용은 부족했고 그것에 관한 당원들의 합의도 없었다.

 

사실 나는 선거 때마다 중앙당이 정책을 뿌리는 것에 반대한다. 그런 정책은 이해관계의 배분이지 정치의 과정일 수 없다. 정녕 풀뿌리로부터 만들어진 정당이라면, 선거의 정책이나 공약이 중앙에서 내려올 수 없다. 외려 반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역에서 만들어진 공약이 중앙으로 모여야 한다. 각 지역의 공약들이 한데 모여 연찬과 경연을 벌여야 한다. 이게 ‘연방’의 원리로 구성되는 정치논리여야 할 텐데 아쉽지만 이번 총선 때 녹색당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물론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여러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이 결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의 결합이 지역의 결합을 뜻하지는 않는다. 정책을 만드는 과정이 하나의 사건이려면 정치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확장시켜야 하고, 그러려면 정책이라 불리는 것 이전 단계의 ‘이야기꺼리’가 필요하다.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며 보태지고 빼져야 정책의 기본방향이 분명해질 수 있다. 물론 이번에는 선거법의 제한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으니 이 아쉬움은 다음 선거 때 풀릴 수 있을까?

 

현재 녹색당은 재창당 과정을 밟고 있는데, 아쉬운 점은 예상보다 훨씬 낮은 득표율이었고 그래서 정당등록취소라는 일까지 겪게 되었는데 공식적인 선거평가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에겐 선거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명확한 책임과 반성이 없다면 선거에는 왜 개입했을까?

 

공식적인 평가가 없기에 녹색당의 당원들이 쓴 글들을 모아서 읽어봤다. 녹색당원 우석영씨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쓴 “녹색당 0.48%의 이유”라는 글에서 녹색당 운동이 어려운 이유를 세 가지로 꼽는다. 첫째는, “능력과 신망 있는 정치 지도자”를 요구하는 “주류의 요구”, 둘째는 녹색전환을 가능케 할 대중적인 “문화 기풍”의 변화가 없었다는 점, 셋째는 녹색의 가치와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조화롭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리고 녹색당 홈페이지에 가면 초록주의라는 필명의 사람이 개인적으로 작성한 “녹색당 19대 총선 평가”가 있다. 초록주의는 탈핵이라는 구호가 후쿠시마 사고에도 무심한 시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생활상의 문제를 다루지 못하게 했다고 전체 평을 한다. 탈핵을 내세운 것이 실패한 선거 전략이라는 얘기이다. 초록주의는 “환경생태는 아직도 중상층의 지식인과 소수인 생활 초록파를 빼놓고 하루하루의 생활에 바쁜 서민들에게는 배부른 사람들의 문제”이기에 녹색당의 정책과 활동이 다른 틀로 움직여야 생존이 가능하다고 평가한다. 초록주의는 선거과정에 대해서도 평가를 하는데, ①당원의 의겸수렴이나 권한위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급박하여 일부 절차가 무시된 상태에서 선거에 일정에 맞춰가는 것”의 문제점, ②녹색당 후보 검증절차가 없었다는 점, ③김용민 후보 사퇴 성명서의 책임 문제, ④언론 홍보나 당원들의 선거운동의 효과가 미미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총선이 끝난 뒤 한 당원은 진보신당, 청년당과의 수다회(http://cafe.daum.net/RangForum)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다 녹색당 찍었다고 하고, 총선 끝나고 여기저기 전화오고 문자오는데, ‘난 그래도 녹색당 찍었어, 괜찮냐? 고생 많았다’라더라, 내가 직장생활보다 선거운동에 전념할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총선 끝나고 출근하니까 사장님이 다른 말씀 전혀 없으시고 ‘어쩌겠어, 결과가 이렇게 됐는데’라며 오히려 미안해하시더라. 이런 사람들도 다 찍었다는데, 내가 모은 표만 해도 100표는 넘을 듯한데, 어떻게 된 일일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 제 아내가 하는 말이 ‘당신 주변 사람들이 특이한 거다. 현실정치에서 한 발짝만 떨어져서 보면 누구나 녹색당이 뭔데? 라고 한다. 소위 말하는 듣보잡이 된다’라는 뼈아픈 얘기를 하더라. 그걸 어떻게 넘어야 할지가 관건이지 않겠나.”

 

선거에서 득표한 비율과 당원 비율을 놓고 비교하거나 이런저런 분석방법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투표장에 들어간 사람들의 마음을 예측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좋은 후보자, 체계적인 당론 수렴,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선거운동같은 내부요인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국내외의 정세변화, 선거 당시의 이슈, 경제상황 등 수많은 외부요인이, 심지어 날씨같은 외부요인까지 선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탈핵을 얘기할 때 누군가가 생뚱맞아 보이는 경제성장을 얘기하면 성장에 손이 가는 게 현실이다.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가 나오고 후보 검증을 아무리 철저히 하더라도 그것은 선거판의 외부변수를 쉽게 무시하긴 어렵다. 그리고 외부변수는 한 정당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그래서 언제나 선거도 불확실하다.

 

앞서의 선거분석에 일면 동의하면서도 쉽게 동의되지 않는 건 그 글들이 선거란 표를 모으는 과정이라는 점에 너무나 쉽게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 전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다른 정당들이 계속 반복해온 과정을 되밟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녹색당의 본질이라는 반정당의 정당은 어떻게 되는 걸까? 선거를 통해서 표를 얻는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부르주아 정치판(아~ 너무 오랜만에 써보는 단어이다)의 논리를 넘어설 수는 없는 걸까? 나는 녹색당이 선거판 자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길 원한다. 아마 내가 계속 녹색당에 남아 있을지 아닐지를 판단할 기준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녹색당, 희망찬 실패!

 

써놓고 보니 녹색당의 실험에 관한 글이 아니라 녹색당 활동에 대해 이런저런 토를 달았다. 보통 이러면 너는 토를 달 만큼 녹색당에서 열심히 활동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 질문을 굉장히 싫어하지만, 예상했으니 답하자면 딱히 한 일은 없다. 홈페이지 제안과 토론에 몇 번 댓글을 달았고, 동네에 현수막을 달았다. 특별당비가 필요하다고 해서 백수 신분에 거금(?)을 기꺼이 냈다. 세종대 생협하고 이어주는 일을 했고, 정책과 관련된 자문이 왔는데 녹색당이라면 중앙에서 짜서 지역에 내려주지 말고 지역에서 정책을 짜도록 지원해주면 좋겠다는 동문서답으로 답해줬다. 이 정도다. 이 정도 했으면 나는 토를 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활동을 못해도 누구나 토를 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란 몫이 없는 자들이 몫을 요구하는 과정이라고 랑시에르가 말했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 결론이다. 내가 판단하기에 녹색당은 한국정치구조에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당이다. 통합진보당의 사태에서 보이듯 이곳의 정치는 의견보다 이해관계를 앞세운다. 어떤 주장보다는 누구의 주장이, 정책보다는 명망가가 더 중요한 사회이다. 정당에 투표하는 유권자들도 그런 정치논리에 훨씬 더 익숙하다. 그러니 녹색당은 제 아무리 노력해도 정치프로가 될 수 없고 어리숙하고 부족한 정당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기도 힘들 것이다(물론 지방선거는 좀 다르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녹색당의 미래가 어둡지만 희망적이라고 본다. 우리는 모든 걸 국가중심으로 사고하는데 익숙하다. 나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는 중앙선거와 지방선거가 다르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법률과 조례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 녹색당은 낮은 것에 강함을 가지고 있어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녹색당에 적을 두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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