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5일부터 열리는 제주인권회의에서 발표하기 위해 쓴 글이다.
아직 인권에 대해 감이 오지 않지만 그동안의 고민을 좀 정리해 봤다.

------------------------
 

풀뿌리와 인권이 만났을 때



 

1. 올바름에서 풀뿌리로


감동적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P. Freire는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아이들을 때리지 말자고 외치는 ‘착한 교육학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그는 어느 농촌마을에서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 가난한 농민을 만나게 된다.


“박사님, 민중이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아십니까? 박사님은 한 번이라도 우리가 사는 곳에 가보신 적이 있나요?” 그리고 그는 자신들이 사는 비참한 집 구조에 대해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형편없는 시설에 대해, 극도로 좁은 공간에 온 가족이 몸을 구겨넣어야 하는 형편에 대해 일러주었다. 최소한의 생활 필수품마저 마련할 돈이 없다고 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으며,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도 없노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들에겐 행복할 권리나 희망을 가질 권리가 금지되어 있음을 말해주었다.…“자, 박사님, 뭐가 다른지 봅시다. 박사님도 댁에 가면 피곤할 거라는 걸 저도 압니다. 박사님은 하시는 일 때문에 머리가 아플지도 모릅니다. 생각하랴, 글 쓰랴, 독서하랴, 이런 연설을 하랴, 바쁘시겠지요. 그런 일도 사람을 지치게 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박사님, 지친 몸으로 돌아가더라도, 한쪽은 자식들이 깨끗이 씻은 몸에 잘 차려입고 굶주리지 않고 잘 먹은 얼굴로 맞이하는데, 다른 한쪽은 더럽고, 굶주리고, 빽빽 울고, 시끄러운 아이들이 고개를 내밉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네 민초들은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상처받고 상심하고 절망한 채로 또 다른 일과를 시작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자식을 때리고, 그것도 ‘도가 지나치게’ 때린다면, 박사님 말씀대로라면, 우리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삶이 너무나 힘든 까닭에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것입니다.” 지금 말하지만, 이것은 계급적 지식이다.[각주:1]


이런 경험을 통해 프레이리는 ‘착한 교육학자’에서 ‘민중의 교육학자’로 거듭나게 된다. 그는 그 시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 때의 경험은 특히 정치적 교육의 실천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학습과정이 되었다. 그 때 나는 정치적 교육이 진보적이려면 민중 집단이 만들어낸 세계 읽기와 민중의 담론, 민중의 구문, 민중의 의미, 민중의 꿈과 욕구에서 표현되는 세계 읽기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각주:2]


나는 인권이 풀뿌리를 만나야 하는 이유를 이런 만남에서 찾고 싶다. 인권이 제아무리 정당하고 올바른 개념과 이론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민중의 시선과 언어, 꿈으로 녹아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쓸모없는 이야기이다. 다양한 시민사회운동들이 이런 관점을 당위적으로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실제 활동에서 녹여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삶을 바꾸려는 풀뿌리의 관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풀뿌리의 관점을 가지려면 끊임없는 자기부정이 필요하다. 한국의 사상가 장일순은 “철저한 자기부정을 통해서 진정한 자기 긍정으로 가는 것 아닌가? 예수가 철저한 자기 부정으로 참된 자기를 얻는데 그 참된 자기라는 게 뭐냐 하면 우주의 본체와 같은 것임을 깨닫는 거라. 그러니까 여기서 ‘신비로운 수동성’이란, 위대한 자기 긍정에 이르도록 하는 철저한 자기부정을 말한다고 봐야겠지.”[각주:3]
나 속의 타자, 우리 속의 타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참된 자기를 만날 수 있다. 아니, 타자 속의 나, 그 속의 우리를 보며 참된 자아를 찾을 수 있다. 장일순 스스로도 이런 글을 남겼다. “밖에서 사람을 만나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는 꼭 강가로 난 방축 길을 걸어서 돌아옵니다. 혼자 걸어오면서 ‘이 못난 나를 사람들이 많이 사랑해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또 ‘오늘 내가 허튼소리를 많이 했구나. 오만도 아니고 이건 뭐 망언에 지나지 않는 얘기를 했구나.’하고 반성도 합니다. 문득 발 밑의 풀들을 보게 되지요. 사람들에게 밝혀서 구멍이 나고 흙이 묻어 있건만 그 풀들을 대지에 뿌리내리고 밤낮으로 의연한 모습으로 해와 달을 맞이한단 말이에요. 그 길가의 모든 잡초들이 내 스승이요 벗이 되는 순간이죠. 나 자신은 건전하게 대지 위에 뿌리박고 있지 못하면서 그런 얘기들을 했다는 생각에 참으로 부끄러워집니다.”[각주:4]


사상가 함석헌 역시 자신을 바꾸고 초월하지 않으면서 혁명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기 자신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기부정을 못하고 제가 사람인 줄만 알고, 제가 심판자․개혁자․지도자인 의식만 가지고 제가 스스로 죄수요 타락자요 어리석은 자임을 의식 못하는 사람은 혁명 못한다. 혁명은 누구를, 어느 일을 바로잡는 것 아니라 명(命)을 바로잡는 일, 말씀 곧 정신, 역사를 짓는 전체 그것을 바로잡는 일”이라고 강조했다.[각주:5]


 풀뿌리의 관점은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욕구를 실현할 기반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밖과 소통하지만 내부에 깃든 잠재력을 실현하는 과정이자 각자가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며 보살피는 과정이기도 하다. 혼자 서는 못할 일을 함께 이루는 과정이다.

이런 관점을 가질 때 인권은 지식인이나 활동가의 언어에서 민중의 언어로, 전문가나 활동가의 활동에서 민중의 삶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럴 때 류은숙의 말처럼 “인권은 인간 존중의 식탁에 누구나 둘러앉아 같이 먹고 마시며 누구나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다.[각주:6] 그렇다면 지금의 인권담론은 이런 풀뿌리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의 언어로 거듭나고 있는가? 한편으로 그런 노력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풀뿌리 민중의 정치행위로 이해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인권은 여전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학교나 다른 어떤 곳에서도 세계인권선언이나 사회권규약을 구체적으로 배우지 않고 설령 배운다 하더라도 실제로 써먹기 어렵다.[각주:7] 인권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곤 있지만, 청소년의 노동을 착취하고 두발자유를 단속하고 체벌을 가하면서도 아무런 문제조차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전문가나 활동가의 언어에서 일반 대중의 언어로 체화될 수 있는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풀뿌리의 관점은 이런 징검다리를 놓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인권담론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 풀뿌리운동이 결합될 수 있다.



2. 인권과 풀뿌리운동의 확장, 무엇이 마을인가?


반대로 인권의 관점은 기존의 풀뿌리운동이 관심을 가져온 영역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풀뿌리운동은 그동안 가족공동체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고, 그러다보니 풀뿌리운동의 주요한 의제도 보육이나 청소년, 주부와 연관된 것들로 제한되었다. 물론 풀뿌리운동의 주체가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으로 확장되고, 의제가 평화나 주거권으로 확대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운동의 주된 흐름은 ‘가족’을 중심에 둔다.


예를 들어, <시민의신문>과 <한국청년연합회(KYC)>가 엮은 『도시 속 희망공동체 11곳 - 풀뿌리가 희망이다』(시금치, 2005)는 <광명YMCA>를 비롯한 11곳을 대표적인 풀뿌리운동의 사례로 소개한다. 그리고 김기현의 『우리 시대의 커뮤빌더』(이매진, 2007)는 <부천YMCA>의 녹색가게, <광명YMCA>의 등대생협, 부산의 <희망세상>, 안성의 <안성의료생협>, 네 곳을 풀뿌리운동의 사례로 소개한다. 또한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달팽이가 달리기를 시작한 까닭은?』(이음, 2008)은 <광명YMCA>의 등대생협, 서울 강북구의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 <대전여민회>의 중촌마을어린이도서관 짜장, 천안의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충청북도 옥천군의 <안남 어머니학교>,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 강원의 원주의 <협동조합운동협의회>, 강원도 철암의 <철암어린이도서관>, 부산의 <희망세상> 등 9곳을 풀뿌리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한다. 이런 대표적인 사례들은 앞서 지적한 바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런 인식의 격차는 <인권재단 사람>이 주최한 간담회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권김영현: 아무래도 결혼 중심으로 관계망이 형성되는 것 같아요. 저도 생협 조합원이고 성미산 지키기에 서명도 했지만, 마을사람이라는 느낌은 전혀 못 받았어요.

위성남: 가족 중심의 커뮤니티고, 삼사십 대가 많고, 미혼 커뮤니티는 아주 취약하죠. 미혼이 최근에 늘어나는 추세인데 독자적인 자기 커뮤니티를 만들지는 못하고 있죠. 기혼들 사이에 끼어 있다 보니 아무래도 고민이나 관심사도 많이 다를 수밖에 없고, 그렇지만 저같은 기혼이 미혼커뮤니티를 대신 고민해줄 수는 없잖아요? 바라만 보고 있죠. 언제될지 모르지만 본인들이 아쉽고 답답하면 만들겠지 하면서.……

………

권김영현: 기존 커뮤니티에 접근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한편으로는 지역에서 성폭력 피해자 쉼터나 성소수자 커뮤니티처럼 마을에서 공개되지 않는 커뮤니티도 있어요. 근데 이런 그룹을 조직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집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든지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는데 이런 커뮤니티가 지역운동과는 연결되기에는 어려운 조건들이 있는 것 같아요.[각주:8]


한편으로 풀뿌리운동이 강조하는 ‘스스로의 변화’는 소수자들이 겪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그들의 문제’로 만들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체’라는 특성이 ‘배타성’을 띠기도 한다. 이는 현실에서 진행되는 풀뿌리운동 또한 철저한 자기부정이라는 성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드러낸다.

 

자기부정 없이 ‘우리’만 부각되다 보면 풀뿌리운동이 지향하는 공동체들이 ‘그들만의 공동체’가 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벗어나려면 풀뿌리운동이 일상적인 생활정치 속에 소수자의 시각을 녹여내고 그것이 가진 차이를 통합하려는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김도현의 글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노라 그로스Nora E. Groce라는 사회학자는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 해안가의 외딴 섬인 마서즈 비니어드Martha's Vineyard에서 농인deaf people들의 생활상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 섬에서 농인들은 사회로부터 배제되지 않았으며 그들 자신만의 농 문화를 형성하지도 않았는데, 이는 섬의 모든 사람들이 영어와 수화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바이링귀스트bilinguist들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곳에서는 농인들에 대한 사회적 제약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며, 농인들은 지역사회의 삶에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있었다.”[각주:9] 그렇다면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강조되는 지금 시점에서 풀뿌리운동은 탈시설deinstitutionalization운동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단지 장애운동만이 아니다. 풀뿌리운동은 아이들의 언어, 주부의 언어, 장애인의 언어로 소통하고 있는가? 풀뿌리운동은 공용어를 찾으며 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인권운동이 발전시켜온 감수성과 합리성은 어른들이 바라는 ‘아이들을 위한 도시’에서 ‘아이들의 도시’로, ‘주부들을 위한 정치’에서 ‘주부들의 정치’로, ‘장애인을 배려하는 도시’에서 ‘장애인의 도시’로 우리 운동의 관점을 바꾸기 위해 풀뿌리운동과 함께 할 수 있다.


하지만 풀뿌리와 인권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이다. 짐 아이프(Jim Ife)의 물음은 그 어려움을 잘 드러내 준다. “지역사회개발은 인권의 기본원칙에 역행하여서는 안되는데, 이러한 대원칙은 지역사회개발에 있어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가능하지 않은가에 대한 경계를 설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가 지역사회 활동가에게 인종차별정책의 입안과 실행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는 경우, 지역사회 활동가는 지역사회의 요청을 거절할 수 있고(이러한 거절이 지역사회 자결 원칙에 위배된다 하더라도) 이는 전적으로 정당한 거절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언제나 이처럼 명쾌할 수만은 없다. 인권은 논쟁적인 개입이므로, 지역사회 활동가는 때로 지역사회와 인권에 관한 논쟁을 벌여야 한다. 인권에 관한 논쟁은 그 지역사회 내에서 인권이 어떻게 규정되고, 어떻게 이해되는가, 다른 곳에서는 인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인권을 실현하고 보호하는 방식의 지역사회개발은 어떤 것이어야 하고,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등의 문제가 포함된다.”[각주:10]


풀뿌리운동이나 풀뿌리민주주의의 중요성이 강조되는만큼 인권의 문제의식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을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열걸음”이나 “열 사람의 한걸음”같은 구호보다 그 사이의 실천이, 그 실천을 위한 관심과 행동을 유도할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3. 국가에서 지역사회, 마을로


어떤 면에서 인권의 탄생과 확산은 근대국가체계의 형성․발전과 분리될 수 없다. 1789년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그러하고, 1948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도 마찬가지이다. 인권은 인간의 권리로 얘기되지만 실제로는 정치체제의 형성과 법질서를 통해 구현되고 국가는 이런 권리를 보장‘해야하는’(당위) 정치적 결사체로 얘기된다. 인권은 사회가 자연상태에서 사회상태로 넘어가는 것을 정당화하는 계약의 목적으로 선언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할까? 자연상태에서 각자가 가질 수 있는 권리는 국가라는 정치적 결사체를 통해서만 보호될 수 있을까? 이런 가상의 자연상태에 관한 전제가 새로운 담론의 형성을 방해한다. ‘현재의 국가’가 문제일 뿐 정녕 ‘미래의 국가’는 인권을 수호하는 파수꾼이 될 수 있을까? 허나 국가는 자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을 뿐 아니라 관료조직의 이해관계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도 자율성을 가진 국가, 착한 국가는 가능할까? 이런 얘기를 길게 하다보면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지금 시점에서 사회구성체 논쟁이 다시 한번 치열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인식틀frame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중심에 둔 사회구성체 논쟁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마을, 자치와 자급이라는 인식틀로 논쟁이 진행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발전과 복지는 여전히 중요한 의제이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복지국가의 모델이 여전히 중요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프랑크푸르트 학파(the Frankfurt School)의 논의만 살펴도 서구의 복지국가 내에서 시민들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고 왜곡되었는지에 관한 많은 얘깃거리들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없이 서구의 복지국가가 가능했을까? 복지국가는 성장의 신화에서 벗어났을까? 그런 점에서 짐 아이프는 복지국가가 사회의 대안일 수 없다고 지적한다. “복지국가의 위기는 앞서 간단히 살펴본 네 가지의 정책전략[복지국가 옹호, 뉴라이트, 조합주의, 마르크스주의―인용자] 중 어떤 것을 사용하더라도 만족스럽게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현존하는 성장 중심의 사회․경제․정치적 시스템―복지국가는 그 내부에서 기능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은 한순간도 환경파괴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구사회의 발전된 형태의 복지국가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이제 사회변동의 구조로서 (생태학적 관점에 기초한) 인간의 욕구충족을 위한 다른 구조, 다른 서비스를 발전시켜야 한다.”[각주:11]
심지어 아이프는 복지국가의 장점이라 얘기되는 적절한 최저생계 보장, 사회적 불평등 감소, 공평성이 실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오히려 국가의 기밀성, 사회의 익명성, 관료주의 등이 강화되었을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각주:12]


사회민주주의라 불리는 국가에서 사는 시민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사회민주주의라 불리는 정책과 그 권력구조에만 관심을 둔다면 복지국가 모델은 여전히 중요하게 보일지 모른다. 대중의 능력을 얕잡아 보고 국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자비로운 시각이야말로 나쁜 국가를 불러온다는 사실은 그냥 받아들이고 참아야 하는 딜레마일까? 그렇지만 왜 그런 자신의 가치와 믿음이 우리의 미래이어야 할까? 특히나 식민지의 국가구조와 교육체계, 정신상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채 식민성의 굴레에 갇혀 있고, 냉전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에서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한국사회가 외부적인 기준에 맞춰 자기변화를 꾀할 수 있을까?


국가와 개인의 계약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면 개별자로서의 인권이 아니라 ‘사회적 개인’으로서의 인권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사회적 개인에 관한 논의는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로버트 오언R. Owen은 이를 “우리가 지금 주장하는 원리는 분명하게 이해되고 한결같이 실현되는 자신의 행복이 공동체의 행복을 늘리는 행위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개인적 행복은 주변 모든 사람의 행복을 늘리고 확장하려는 노력에 비례해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말로 표현했다.[각주:13] 그리고 이런 식의 관념은 이미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생각이다.[각주:14]


이런 인간관을 받아들인다면 요구하는 권리에서 구성하는 권리로 논의가 확장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자치와 자급의 마을이 구성된다면 그 마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힘과 관계도 그만큼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인간의 욕구와 역량이 외부의 기준이 아니라 그 내부의 기준에 따라 발전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인식틀의 전환이 중요하다. 중앙정부, 민족/국민국가에 맞춰진 우리의 시선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려 내가 디디고 있는 발밑에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그와 관련해 최근 인권과 관련된 조례들이 제정되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중앙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정부 차원에서 인권조례들이 만들어지는 건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최근 경기도교육감과 서울시교육감, 전북교육감 등이 추진중인 학생인권조례보다 앞서, 2004년 1월 목포시는 ‘목포시건축물의 허가 등에 있어 장애인편의시설 설치사항의 사전점검에 관한 조례’를 공포하고 신축되는 병원, 공공시설 등 대형 건물의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사전점검을 의무화했다. 그리고 2008년 11월 안산시는 ‘외국인주민의 인권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서 외국인 주민이 정책이나 공공시설물 이용, 고용과 관련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또한 광주광역시가 2009년 10월에 제정한 ‘광주광역시 인권 증진 및 민주·인권·평화도시 육성조례’ 역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도시의 발전비전으로 인권을 내세운 조례이고 2010년 3월 경남도의회가 통과시킨 ‘경상남도 인권증진 조례안’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조례들이 지역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안산시가 원곡동의 국경없는 마을을 기반으로 다문화라는 브랜드를 개발하고 있다는 비판이나, 광주광역시의 인권조례가 민주, 인권, 평화를 내세운 도시개발이나 지역개발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는 비판은 그 진의(眞意)를 의심케 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조례 제정이 시민문화나 아래로부터의 동력 없이 진행되거나 그런 동력을 제도라는 틀 속에 가두어버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이런 조례가 만들어졌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조례가 다른 조례들과 어떻게 연관되고 상호 영향을 미치는가, 서로 충돌하는 부분은 없는가이다. 하나의 조례만으로 지역사회가 혁명을 경험하기는 어렵다.


가장 중요하게는 조례로 표현되는 제도화와 그 합의가 충족시키지 못하는 문화적인 영역들이 있다. 국제앰네스티의 아이린 칸이 지적하는 바는 곱씹어 볼 만하다. “페루는 남미에서 산모와 영아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특히 지방 원주민 여성들이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 산 호세 드 세까의 마을과 오코페카, 후쿠마키리, 상끄와 루페이의 공동체들, 안데스의 아야쿠초에서는 지역 NGO주도로 정부에서 지원하는 의료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를 조사했다. 거리와 비용, 부족한 시설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부의 지원이 그들의 문화적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 지역 사람들은 직원들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시설을 찾아가는 일이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공동체와의 대화를 통해 문화적인 접근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수년 동안 관계가 향상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시설을 이용하였고 마을의 전통적인 산파들과 직원들 사이의 관계도 친밀해졌다. 출산환경이나 출산전후 관리가 그 지역문화에 적응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서 있는 자세로 아이를 낳는다거나, 출산이 진행되는 동안 남편이 손을 잡고 서 있는 것, 혹은 태반을 가족에게 돌려주어 직접 묻게 하는 일 등이 바로 그것이다. 직원들은 환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았고 그 지역언어로 설명하는 법도 배웠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시설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사망률이나 환자 수는 크게 줄어들었다. 이 경우를 통해 우리는 소외문제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지, 가난한 여성들을 존중하는 태도로 대할 때 상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배울 수 있다.”[각주:15]


조례는 지역사회의 법이고 법은 시민의 공공성과 여론을 반영한다. 그런 점에서 조례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만큼 그 지역성을 반영할 때에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역사회운동의 힘을 제도로 잘 흡수한 참여예산제도가 한국사회에서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는 것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관련된 정보와 참여의 부족, 지역과 맞지 않는 기계적인 제도의 도입, 제도의 발전과정에 대한 평가의 부족 때문이다.


인권은 보편적인 가치이지만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은 매우 구체적이고 그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권과 풀뿌리가 만나야 할 또 한 가지 이유가 생긴다.


인권과 풀뿌리의 만남이 언제나 아름다운 풍경만을 일구진 않겠지만 그런 노력들이 밑거름으로 변해 언젠가는 좋은 열매를 맺으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인권과 풀뿌리는 가진 자들의 삶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사람들, 허나 채우기 위해 버릴 줄도 아는 사람들의 삶에서 꽃피기 때문이다.

  1.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교육문화연구회 옮김, 『희망의 교육학』(아침이슬, 2002), 38쪽. [본문으로]
  2. 같은 책, 27쪽. [본문으로]
  3. 장일순․이현주,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삼인, 2003), 108쪽. [본문으로]
  4. 김익록 엮음,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무위당 장일순 잠언집』(시골생활, 2010), 26~27쪽. [본문으로]
  5. 함석헌, [들사람 얼](한길사, 2001), 28쪽. “정치가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삶이 기술과 제도를 내는 것이요, 철학자․도덕가가 민중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도리어 지혜를 가르치고 힘을 주는 것이다. 나라는 씨의 나라요 세계는 씨의 세계다. 구더기 같은 인생이라 하지만, 사실 이날껏 민중이라면 구더기같이 업신여기고 더럽게 안 것이 낡은 윤리와 사상의 특색이었다. 들이 다 그것이다.”(같은 책, 236쪽) [본문으로]
  6. 류은숙, 『인권을 외치다』(푸른숲, 2009), 8쪽. [본문으로]
  7. 김순천, 『대학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동녘, 2009)을 보라. [본문으로]
  8. “횡단대화: 마포에서 듣는 새로운 실험”,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제 41호(2009년 11․12월호). [본문으로]
  9. 김도현,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메이데이, 2007), 47쪽. [본문으로]
  10. 짐 아이프 지음, 류혜정 옮김, 『지역사회개발』(인간과복지, 2005), 150쪽. [본문으로]
  11. 짐 아이프, 앞의 책, 43쪽. [본문으로]
  12. 같은 책, 61쪽 [본문으로]
  13. 로버트 오언 지음, 하승우 옮김, 『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견』(지만지, 2009), 27쪽. [본문으로]
  14. 권정생, 『우리들의 하나님』(녹색평론, 1997)이나 김종철, 『간디의 물레』(녹색평론, 1999)를 보라. [본문으로]
  15. 아이린 칸 지음, 우진하 옮김, 『들리지 않는 진실: 빈곤과 인권』(바오밥, 2009), 166쪽. [본문으로]
내가 속한 풀뿌리자치연구소가 모처럼 후원의 밤을 연다.
한국 내에서 풀뿌리운동과 관련해 가장 많은 힘이 축적된 곳이다.
하지만 여느 단체처럼 재정상황은 계속 적자이다.
소장님과 상근연구위원, 단 2분의 인건비조차 매달 채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후원의 밤이 그런 재정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일시적으로 단체의 곳간을 채울 수는 있다.

혹 티켓 구입에 관심을 가진 분이 계시다면 연락 주시길...
 


 

지난 5월의 지방선거로 새로이 구성된 지방정부가 인수위 활동을 끝내고 첫 단추를 꿰기 시작했다. 선거결과로 드러났듯이 이번 지방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매우 높은 만큼, 그 첫 단추가 중요하다는 점은 상식이다. 그렇다면 진보적 지방자치를 위한 첫 단추를 어떻게 꿰어야 할까? 나는 공무원 사회의 인식과 행정체계를 진보적으로 바로잡는 것이 그 첫 단추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어느 자리에서 공무원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새로 당선된 시장을 ‘오너’라고 불렀다. 그 공무원은 새로운 오너가 왔으니 그의 생각에 맞게 업무계획을 새로 짜고 있다고 말했다. 인수위 활동이 끝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는 벌써 새로운 계획을 짜서 보고할 예정이라 했다. 기존의 계획을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참여, 소통, 혁신같은 그럴싸한 단어들을 짜깁기한 계획이 마련되고 있었다. 이렇게 가시적이고 단기적인 성과를 강조하는 행정체계에서는 진보적 지방자치의 열매가 영글기 어렵다.


그리고 그 공무원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오너라는 말을 들으며 공무원 사회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담당 공무원은 선거결과와 관련 없이 계속 자리를 지키지만 단체장은 4년마다 바뀔 수 있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자치단체장의 성향이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그에 맞춰서 계획을 짜는데 익숙하다. 그러다보니 사업에 진심(眞心)이 없다.


더구나 진보적 지방자치의 주인공에는 단체장만이 아니라 지역주민도 포함되는데, 공무원들은 그 단체장을 선출한 지역주민들의 생각에는 그다지 관심을 쏟지 않는다. 공무원노조도 이런 부분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공무원들은 주민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며 사업을 계획하고 집행하고 평가하는 걸 꺼린다.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은 공적이고 주민들은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행정체계와 공무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진보적 지방자치가 실현되기 어렵다. 그럴싸한 계획을 급히 마련해서 새로움을 강조하는 것보다 느리더라도 주민들과 함께 진지하게 새로운 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새로이 당선된 자치단체장의 첫 단추는 이런 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아쉽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그런 노력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예를 들자면, 참여예산제도가 아무리 혁신적인 제도라 할지라도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없다면 그것은 결실을 거두기 어렵다. 그리고 주민들이 관심을 보이더라도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이 제도를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그 구상은 실패하기 쉽다. 사실 참여예산제도가 처음 실시되었던 브라질의 뽀르뚜알레그리시에서도 공무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예산체계를 친절히 설명하고 인내력을 가지며 주민을 만나고 자신의 권한을 주민과 공유하는 공무원이 있어야만 참여예산제도는 성공할 수 있다. 그러니 주민들만이 아니라 공무원들도 다양한 교육을 받으며 자신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물론 이런 과정은 결코 짧은 시간 내에 마련되지 않는다. 1년 안에 새로운 성과를 보여주려 하지 말고 4년이라는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며 조금씩 단계를 밟아가야 한다. 시민과 공무원이 함께 어울려 밥 먹고 놀며 즐기는 다양한 장들을 마련해야 한다. 사업 이전에 신뢰와 관계가 필요한데, 지방정부는 그런 것을 마련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생각을 바꾸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공무원들의 인식이 바뀌도록 사업의 계획, 집행, 평가에 관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시장은 사장이 아니다. 사장은 자신의 판단과 능력에 의존하지만 시장은 끊임없이 시민들과 소통하며 판단을 내리고 시민의 능동적인 참여를 통해 능력을 펼쳐야 한다. 향후 1년 동안 단체장은 그런 장을 마련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지금 당장 성과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첫 단추를 잘 꿰야 진보적 지방자치가 성공할 수 있다.


사회투자지원재단에 계신 장원봉 박사님이 야심차게 준비한 여름맞이 특강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참석해 보심이...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은 인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그들의 힘만으로는 결코 승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들 없이 판도라 행성이 지켜질 수도 없었다.
자연을 지키려하는, 더 정확히 말하면 서로 공생하는 삶을 지키려는 그들의 강한 의지와, 그 의지에 울림을 받은 자연이 함께 판도라 행성을 지킨다.

신성한 나무의 신 에이와는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지만 제이크의 간절한 부탁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지구에는 더 이상 푸른 숲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파괴한 것입니다. 그들은 여기도 그렇게 파괴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도와주세요.”
결국 이런 마음의 공명(共鳴)이 권력의 힘에 맞서 승리를 거둔다.

청와대가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4대강 사업도 이런 공명이 있다면 막을 수 있다.
지키려는 강한 의지만 있다면 자연이 우리와 공명할 것이다.

 

정치적인 면에서 직접행동은 민중이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는 방법이자 목표이다. 직접행동은 자신이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는 공동체에서 굴욕적인 삶을 살지 않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리고 직접행동은 정의롭고 행복한 공동체의 건설이 나의 참여 없이 불가능하고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져도 새로운 부조리에 맞설 가능성으로 직접행동의 자리가 계속 남겨져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목표이다.


직접행동은 근대사회가 분리시킨 주권과 민중이라는 존재를 다시금 연결시킨다. 근대국가는 주권을 앞세워 민중을 국민으로 포섭하고 그들의 의지를 선거로 가둬버렸지만, 민중은 직접행동을 통해 자신의 주권을 되찾고 주권자로 거듭날 수 있다.



직접행동과 주권


유럽의 정치이론들이 주권을 주요한 주제로 다루어 왔지만 그 논의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그 이론들은 식민지가 아닌 서구 중심국가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노예가 된 자와 노예일 수밖에 없는 자가 똑같은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변화를 꿈꿀 수 있을까? 즉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만든 ‘식민성’이라는 마음의 특성(心性)을 논하지 않고 권리나 제도, 운동의 차원으로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식민지 민중의 일상경험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은 채 이론을 위한 이론을 추구하는 추상적인 논의들은 그 자체로 타당하고 적절할 수 있지만 적어도 식민지를 경험한 사회의 변화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한국사회의 변화에 도움을 줄만한 이론들은 유럽이나 미국의 세련된 이론이 아니라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에서 발전된 이론들이다(파농F. Fanon이나 프레이리P. Freire, 라나지뜨 구하R. Guha, 마르코스Marcos 등의 논의를 예로 들 수 있다).


한 가지 간단한 예만 들어보자. 한국의 도서관들은 자유로이 책을 찾아 읽으며 정보와 지식을 서로 나누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공간이 아니라 학생들이 교과서나 참고서를 들고 가서 보는 공부방이나 시험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열람실 좌석표를 뽑으려 새벽잠을 설쳐야 하는 도서관, 뻔질나게 들락거려도 책 한권 찾아보지 않은 도서관, 이런 도서관을 유럽이나 미국의 국가들에서 찾아 볼 수 있을까? 왜 우리들은 도서관을 이렇게 인식할까?


도서관운동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일제는 지배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순종적인 양민을 만들기 위해 사회교육을 실시했고 도서관 역시 그런 지배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일제는 한편으로 자생적인 도서관 운동을 억누르면서 다른 한편으론 몇 안 되는 도서관을 (당시의 특권계급인) 소수 학생들의 시험준비공간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식민지의 민중들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게 되었을까? 도서관에 놀러간다는 생각, 도서관이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도서관의 개수를 늘리고 사서를 많이 배치하고 책의 수를 늘린다고, 자연스럽게 도서관이 제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의 의식, 무의식, 일상의 경험 속에 스며든 지배의 논리를 바꾸지 않으면, 식민성을 제거할 충격을 주지 않으면, 삶은 쉽게 우리의 앎을 배반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수동적인 사람들이 직접행동을 스스로 포기한 게 아니다.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스스로 행동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개화기로 불리는 시기에 민중들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재일 역사학자 조경달은 이 시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대한제국기는 개명한 지식인이라면 진지하게 백성이란 무엇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시기였다. 그것은 민民도 사士라는 지평의 개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식인에게 그러한 사상적 작업을 강요할 정도로 민중운동은 고양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전개된 반일의병투쟁에서 고명한 유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평민의병장이 여럿 탄생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하여 이 시기는 한국 역사상 가장 의적이 많이 활약한 시대이기도 했다. 도적 또한 의적으로서 사의식을 갖는 시대가 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의 역사를 장식했던 갑오농민전쟁이나 수많은 민중반란들은 민중들이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려는 시도들이었다. 이런 정치행동을 통해 민중은 서서히 자신을 주권자로, 변혁의 주체로 인식해 갔다. ‘사발통문沙鉢通文’(주모자의 이름을 사발과 같이 둥근 모양으로 빙 둘러 적은 연판장)을 돌려 민회를 열고 “여기에 응하지 않는 자에게는 ‘벌전(罰錢, 벌금)’을 징수하거나 ‘훼옥(毁屋, 집을 망가뜨리는 것)’을 하는 식으로 참가를 강제”하며 “이른바 공동체 제제의 논리를 행사”할 정도였다. 그 외에도 민중은 장이 열리는 날 토론판을 벌이고 산에 봉화를 피우거나 밤에 산에 올라가 수령을 욕하면서 산호(山呼)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1919년 3월 5일 일본경찰과 헌병들이 많은 사람들을 몽둥이로 때리고 창으로 찔러 도로에 피가 흥건하게 고이던 시절, 관원이 탄 수레를 끌던 수레꾼은 이렇게 그 관원을 꾸짖었다. “어찌하여 너만 만세를 부르지 않는가. 나는 비록 미천한 수레꾼이지만 그래도 사람이다. 차라리 개, 돼지를 태울지언정 너와 같은 무리는 태울 수 없다.” 가진 건 몸뚱아리밖에 없는 가난한 수레꾼이 관원을 꾸짖을 정도로 사람들의 존엄은 강했다.


이토록 강했던 민중의 꿈과 자부심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정확한 표현은 사라진 게 아니라 ‘짓뭉겨지고 비틀렸다’이다. 일제 식민권력은 단순히 사람들을 지배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존엄함을 뿌리째 뽑아서 순종적인 인간을 ‘창조하려’ 했다. 당시 한국을 취재하던 미국 기자 페퍼는 ‘한국의 진상(the Truth about Korea)’이란 기사에서 감옥에 갇혔다 풀려난 사람들을 인터뷰한 이야기를 적었다. “그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말을 더듬거리기도 하고, 또 좌우를 두리번거리기도 하였는데, 품속에 서류를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서류는 한 조각, 한 장이라도 일본인에게 발각되면 6개월의 징역에 처해졌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일본인이 일컫는 불령(不逞)한 무리가 아니며 또한 지식층도 아니다. 그들은 단순하고 순박한 소상인, 농부, 규중에서 생활하는 가정주부나 어머니들이었다.” 그리고 박은식에 따르면 일제는 ‘부랑자취체령(浮浪者取締令)’을 선포해서 일정한 직업이나 주소 없이 떠도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체포했다. 서울과 각 도시에서 약 1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체포해 3주일 이상 3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했다고 한다.


단지 정치적으로만 억압을 받은 게 아니다. 식민권력은 민중들의 살림살이를 철저하게 파괴했다. 일제의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본국민의 이주를 책임지는 전형적인 식민지착취기구로 국유지와 공유지를 약탈할 뿐 아니라 한국 농민의 소작권을 빼앗아 일본농민에게 넘겨줬다. 일제 말기에 일본이민자 수는 100만명에 달했다(이들은 자치기구나 소방대를 조직해서 식민권력의 사조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일제는 땅만이 아니라 살림살이를 통째로 빼앗고 자기들의 생활방식을 강요했다. 인구조사를 핑계로 개인의 집을 마음대로 드나들었고 청결검사를 한다며 물건을 뒤지고 사람들을 때렸다. 세금을 체납하면 집안의 솥과 식기 등의 세간을 경찰이 마음대로 뒤져서 팔고 심지어 굴뚝의 개조나 공사에도 개입했다. 일제는 이런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본주의 논리나 근대화의 논리를 내세웠다.


자기 주권 내의 국민이 아니기에 일제는 한반도의 민중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제한하거나 그들을 보호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런 폭력을 조장하고 묵인하며 존엄을 짓밟고 체념과 순종을 끌어내려 했다. 이런 끔찍한 폭력을 경험하며 민중은 살아남기 위해 존엄을 버리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근대화의 논리인) 약육강식의 경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각주:1]


해방 이후 군사독재는 이런 식민성을 그대로 이어받아 자신들의 지배를 강화시키려 했다. 반공주의는 일제의 사회지배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기득권층을 강화시켰다. 식민지를 경험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그랬듯이 기득권층은 일제 식민지를 거치면서도 완전히 훼손되지 않았던 민중의 마지막 존엄을 계속 짓밟았다. 일제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정책이 이름과 내용만 바꾼 채 고스란히 이어졌고 심지어 지금도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존엄은 자기 삶의 기반인 살림살이와 주권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것인데, 거의 백여년간의 억압은 이런 존엄의 뿌리를 완전히 잘라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일상생활 속으로, 무의식 속으로 스며든 이런 지배의 논리를 찾아내고 존엄의 기반을 회복시켜야 한다. 푸코나 들뢰즈의 분석을 찬양만 할 게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그런 시사점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존엄을 되찾을 방법이 드러난다면 민중은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민중을 외치는 사람들조차 그런 회복에 관심이 없고 때로는 회복을 의식적으로 피하기도 한다.



직접행동과 선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성립시킨 것은 선거였다. 성별이나 재산과 상관없이 성인에게 투표권을 줬다는 점에서 한국의 선거제도는 발전된 듯 보였지만 대표를 뽑는 선거는 근본적으로 민중에게 주권을 돌려주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진정 민중의 주권을 다시 회복시키려 했다면 선거가 아니라 무너진 공동체의 민회를 복원하고 그들의 정치행위를 보장했어야 옳다. 하지만 미군정이나 기득권층은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고 민중의 정치적 힘을 선거라는 장으로 ‘동원’하려고 했다.


사실 선거라는 제도는 서구의 것이다. 다른 제도들이 그러하듯 서구의 것은 이 땅의 전통과 문화를 뒤떨어진 것으로 해석하며 그것을 완전히 무시했다. 민중은 기존의 방식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했는데, 그런 새로운 것에 익숙한 자들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많은 지식인과 엘리트들은 선거를 자신들이 권력을 잡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활용했다. 민중들의 존엄을 회복시키려는 시도는 무지하고 쓸모없고 위험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더구나 조경달에 따르면 한국의 민중은 스스로를 변혁의 주체로 인식했지만 정치의 주체로 인식하지 못했다. “갑오농민전쟁은 덕망가적 질서관을 전제로 국왕․왕부(王父)환상이 널리 퍼져가는 가운데, 중개세력을 배제하기 위해 무력적 청원 형식으로 평균주의와 평등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민중반란이었다. 여기에서 민중은 청원자의 역할만을 맡고 있다. 갑오농민전쟁은 철저한 민본주의를 표방했지만, 민중 자신의 일상적인 정치 참여를 요구하는 투쟁은 있을 수 없었다.” 즉 갑오농민전쟁이나 그 이후의 많은 민중반란들은 새로운 덕망가의 출현과 그들에 의한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민중의 심성, ‘일군만민(一君萬民)’사상을 강화시켰다. 식민지 시기의 농민조합이나 해방 이후의 인민위원회에서도 덕망가의 출현과 그들을 통한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이런 경향을 비판하며 민중이 스스로를 정치의 주체로 등장하려는 운동의 흐름도 있었지만 선거는 이런 흐름을 가로막고 다시금 사이비 덕망가 질서를 확립했다.


이것은 선거의 정치적 중요성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선거라는 장 자체가 민중의 정치 에너지를 동원하고 흡수해서 직접행동의 가능성을 봉쇄한다는 얘기이다. 즉 선거를 통해 민중이 정치적으로 성공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이다.


정치학자 러미스(D. Lummis)는 이 점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인민의 복지를 돌보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지만 그것은 민주주의와 다르다. 왕이 진심을 다해 자기 국민들을 돌볼 수 있지만 정부형태는 여전히 군주제일 것이다. 한 정당의 독재가 인민을 섬기는 정책을 채택할 수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정당독재일 것이다. 민주주의는 인민이 온화하거나 공정한 지배자들에게 은총을 받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인민이 자신을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민중선동가(demagogy)는 인민을 위해 일하거나 인민을 대변하리라 약속하며 대중적인 지지(=권력)를 얻은 사람이다. 오늘날 이 용어는 주로 비난할 때 사용되지만 그 본래 의미는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았고 특히 민중선동가가 적절한 상황을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킨다면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인민이 약속의 대가로 어떤 이에게 자신들의 권력을 넘겨주는 상황이 아니다.”


선거가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 선거에 참여하는 걸 거부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훌륭한 정치인이 나타날 수 없으니 모든 정치인을 없애자는 얘기도 아니다. 조금 더 민중의 이익을 고려하는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도 있고 민중적인 정치인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민중의 존엄이나 민주주의와는 다르다는 얘기이다. 적어도 민중의 존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선거혁명’, ‘선거승리’란 말은 ‘평화를 위한 전쟁’이나 ‘다리없는 경주마’처럼 모순된 말이다.[각주:2]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흐름이 단절이라기보다는 연속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존엄을 회복하지 못하면 민중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고 또 한번 속임수에 넘어간 자신에게 ‘모멸감’과 ‘냉소’를 느낄 수밖에 없다.


여러 학자들은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촛불의 힘이 선거의 투표행위로 전환되었다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선거의 승리인가? 투표율, 득표율, 당선율로 정리되는 부르주아 선거판의 논리를 빼면 무슨 기준으로 승리를 논할 수 있는가? 그리고 국민의 생각이 선거결과로 드러났다지만 이명박 정부는 그걸 받아들일 생각이 별로 없다(이미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재보궐 선거에서도 그런 태도를 보였다). 그건 자신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거결과나 여론을 무시하는 권력의 태도가 이명박 정부 때만 있는 특별한 일인가? 소위 민주정부라 불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국민의 상식이 얼마나 정책에 반영되었나?


민중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로 서는 역사가 만들어져야 새로운 역사가 써질 수 있다. 그것은 지난 백 년 동안 민중이 꿔왔던 꿈이자 실현되지 않은 꿈이다. 직접행동은 민중이 뼈 속 깊이 스며든 식민성을 제거하고 존엄을 되찾으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연다. 직접행동이 실패한들 그것이 무슨 잘못인가? 성공하지 못한 삶이 잘못된 삶은 아니고 존엄한 자는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고 새로운 승리를 준비할 수 있다.



참고한 책


박영숙,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알마, 2006)

박은식 지음, 김도형 옮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소명출판, 2008)

이연옥, 『한국 공공도서관 운동사』(한국도서관협회, 2002)

조경달 지음, 박맹수 옮김, 『이단의 민중반란』(역사비평사, 2008)

조경달 지음, 허영란 옮김, 『민중과 유토피아: 한국근대민중운동사』(역사비평사, 2009)

조동걸, 『일제하한국농민운동사』(한길사, 1983)

프란츠 파농 지음, 남경태 옮김,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그린비, 2004)

후아나 폰세 데 레온 엮음,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해냄, 2002)

D. Lummis, 『Radical Democracy』(Cornell University Press, 1996)

  1. 파농의 말처럼 “이주민은 원주민을 악의 본질로 생각한다. 원주민 사회는 단지 가치관이 부재한 사회가 아니다.…원주민은 사악한 무의식이며 맹목적인 힘의 도구다…이주민이나 경찰은 언제나 원주민에게 매질을 하고 모욕을 가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원주민이 품 속의 칼을 빼는 것은 다른 원주민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적대적인 행동을 하거나 공격적인 눈길을 보냈을 경우다. 원주민에게 최후의 수단은 형제를 상대로 자신의 인격을 방어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2. 마르코스와 사빠띠스따는 이렇게 얘기한다. “거듭 말하지만, 무기를 든 것은 저들이 우리에게 아무런 대안도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기를 든 것도 우리 얼굴을 가린 것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죽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멕시코의 민주적인 변화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면 더 많은 피를 흘리고 더 많은 죽음을 당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순교도 마다하지 않는 성직자라는, 전쟁광이라는 비난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우리를 비난과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세계로, 우리가 흘리는 피의 가치를 폄하하고 존엄 대신 명성을 주는 세계로 들어가게 해주겠다는 사이렌과 천사들의 노랫소리에도 유혹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처럼 사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본문으로]
더글러스 러미스(D. Lummis)가 쓴 [래디컬 민주주의(Radical Democracy)]의 '들어가는 말'(introduction)에서 강조되는 말은 민주주의의 급진성(radical)이다. 보통 러미스는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대립관계를 설명한 사람으로 얘기되지만 이 책에서 러미스는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는 어디서나 급진적이어야 하는 민주주의가 왜 지금 우리 시대에는 상투적인 말이 되어버렸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그런 점에서 러미스의 얘기는 묘하게 지금 한국의 상황과 맞물려 있다. 민주주의는 인민이 지배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중간계급이나 정당, 지식인, 엘리트들이 인민의 이름을 내세워 지배하는 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러미스는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를 몰아냈던 '인민의 힘 혁명(People's Power Revolution)'이, 맑스주의나 자유주의 좌파가 이해하지 못한 그 혁명의 정치적 잠재력이 선거에 온 힘을 다 빼았겼기 때문에 급진성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한다. "민중운동의 본질이라 할 급진적인 희망은(5장에서 더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정확히 혁명적이라고 부를만한 정치상황을 만들었지만, 이 희망의 대상은 선거에서 승리하기만을 바라는 자유주의 정치가인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였다. 급진민주주의는 자유주의 정치를 복구하느라 자신의 에너지를 다 써버렸다. 토지개혁은 진창에 빠졌고, 내전은 계속되었으며 1987년은 우울한 한해였다." 민주주의의 잠재력을 선거로 몰아넣으려는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의 수많은 민중반란과 저항적인 사회운동에서 드러났던 많은 정치적 잠재력, 급진적인 민주주의는 지금 한국에서 선거의 틀로만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선거에서 '소위 민주후보, 소위 좌파후보, 소위 시민후보'가 당선되지 못하면, 인민들의 정치력은 '역시나' 어리석고 보수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평가를 받아들인다면 인민들의 지배인 민주주의는 불가능하고 언제나 먼 미래의 일이고 지금 당장의 엘리트지배는 정당화된다. 러미스는 바로 이 점을 공격한다.

또한 좌파/우파라는 단순한 도식을 넘어서 러미스는 제1세계와 제3세계의 민주주의에 관한 우리의 편견을 지적한다. 러미스는 이 책을 필리핀에서 썼는데 자신이 민주주의에 관한 책을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라 필리핀에서 쓰는 것을 설명하기가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하버드 대학을 방문한 학자가 매사추세츠 지역의 정치나 문화를 연구하지 않는다고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게다가 동북아시아를 연구하러 코넬 대학에 가거나 아프리카 연구를 위해 런던대학에 가는 학자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도 없다. 그러나 반대는 적용되지 않는다. 제3세계국가에 가는 학자는 그 나라에 대한 연구를 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러미스는 보수/진보가 과거의 합의를 지키기 위해 타협하는 제1세계의 '현상유지 민주주의'가 아니라 제 3세계의 민주화를 설명할 살아있는 개념으로 민주주의를 다루길 원한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는 그 지역의 풍토나 문화와 무관한 제1세계식 민주주의를 무차별적으로 보급하려는 지식인, 엘리트들의 음모를 비판한다. 이런 논리를 따른다면 결국 제1세계를 본딴, 또는 제1세계 만큼의 경제발전을 이루기 전에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선진화 이후에나 민주주의가 가능하고 먹고 사는 문제를 풀고 난 후에나 정치를 얘기해야 한다. 이에 맞서 러미스는 민주주의가 삶의 양식이라는 점을, 일하고 생활하는 일상의 과정이 정치임을 주장한다.

아래의 글은 들어가는 말을 번역한 내용이다.

---------------------------------- 

들어가는 말


1980년대쯤 동료인 무로 켄지(Muro Kenji)는 가끔씩 그의 스승이자 친구인 철학자 쓰루미 슌스케(Tsurumi Shunske)와 얘기를 나눈 뒤에 (여느 때처럼) 흥분에 들떠서 나를 찾아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참 흥미로운 시대에 살고 있어. 민주주의는 어디서나 급진적이야. 미국이나 소련, 일본, 중국, 필리핀, 아프리카, 남미, 어느 나라 어떤 시스템에서도 전복적이란 말야.” 민주주의에 대한 낡은/새로운, 단순한/복잡한, 확실한/모호한 생각은 나의 흥미를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E. M. 포스터가 말했듯 두 번의 축배는 가능하지만 세 번은 불가능한 원리[민주주의]에 고취된 사람을 만나는 건 신기한 일이다.


거의 동시에 나는 미국에서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잡지를 발간한다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 편지내용은 필자로 추천할만한 일본의 급진민주주의자를 소개해달라는 것이었다.
“급진민주주의자”에 관한 생각이 내 마음 속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이웃집 소녀(혹은 소년)를 사랑하게 된 것과 조금 비슷한 경험이었다. 평상시에 알고 지내던 이 존재는 갑작스럽게 아주 새롭고 신선하고, 뭐랄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다가왔다. 나는 1960년대 초까지 미국과 일본 양국에서 결코 맑스주의자를 자처할 수 없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지만 맑스주의가 자유주의 국가나 자유주의 경제를 비판하는 힘에 항상 의존했던 운동의 활동가였다. 이 시기의 운동정치에서 맑스주의는 항상 민주주의의 “좌파”라는 의미로, 즉 더욱더 “급진적”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다른 한편 민주주의자들은 맑스주의자와 자유주의 좌파 사이의 불편한 중간 지대에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그래서 자유주의 좌파와 구별되기 어려운 것으로 이해되었다). 프랑스혁명에서 처음 사용된 좌파-중도-우파라는 공간적 은유는 말하자면 우리가 정치를 배열하는 방식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이 둘 “사이”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자신의 분명한 정치원리가 없다면 타협이라거나 잡종이라는 평을 피하기가 어려웠다. 쓰루미-무로 공식(“민주주의는
어디서나 급진적이야”)은 이런 공간적인 이미지를 다시 배열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가 급진적인 입장 또는 급진주의 그자체로 여겨지면서 다른 모든 정치적 입장과 그 사이의 관계들도 새로운 조명을 받을 것이다. 이런 이미지는 정치현실을 더욱더 정확하게 반영하고 더욱더 비판적인 힘으로 민주주의 이론을 무장하는 것일 수 있다.


내가 처음 이 책을 구상한지 10년 이상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는 폴란드와 중국, 버마, 필리핀 같은 많은 나라들에서 격렬한 민주화 운동을 목격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동유럽의 정부들이 차례로 무너졌고 결국 소련정부도 무너졌다. 동시에 민주주의 이론의 영역에서도 새롭고 활발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동안 제목에 “민주주의”라는 말을 쓰는 책들이 북반구 공업국가들에서 현상유지(status quo)의 미덕을 지루하게 반복하면서 호황기를 누려왔다면, 민주주의를 “급진적”
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세대의 이론가들이 등장했다. 조지 부시(George Bush)가 자신의 임기동안 민주주의는 “승리했다”고 선언하는 동안, 다른 이들은 레이건(Ronald Reagan)과 부시의 정치를 비판하고 자유주의 관점에서 그들을 반대했던 사람들과 공유했던 이념적 틀을 비판하기 위한 기초작업으로 민주주의 개념을 구성하거나 재발견하려 했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이 수년 만에 최초로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논의를 도우려는 의도로 이 책을 썼다.


흥미롭게도 내가 필리핀의 제3세계연구센터에 있을 때, 미국과 일본의 동료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필리핀의 동료들에게조차 나의 연구를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필리핀을 연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 이론에 관한 작업을 준비하러 필리핀에 왔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감춰진 선입견은 여기에서 작용한다. 하버드 대학을 방문한 학자가 매사추세츠 지역의 정치나 문화를 연구하지 않는다고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게다가 동북아시아를 연구하러 코넬 대학에 가거나 아프리카 연구를 위해 런던대학에 가는 학자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도 없다. 그러나 반대는 적용되지 않는다. 제3세계국가에 가는 학자는 그 나라에 대한 연구를 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고정관념을 깨뜨린다면 아마도 예상치 못했던 것을 배우리라는 보편적인 원리에 입각해서 나는 이런 식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요량으로 신중하게 필리핀 대학을 골랐다. 그러나 필리핀을 선택한 것이 결코 무작정 이루어진 선택은 아니었다. 1986년 2월의 인민의 힘 혁명(People's Power Revolution)이후 고작 1년이 지났다. “인민의 힘”은 역시 그리스어인 데모스(demos)와 크라티아(kratia)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인민의 힘, 즉 급진민주주의는 불가능해 보이던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인민들은 단순히 선거에서 승리했을 뿐 아니라 선거 결과가 존중받는다고 생각되는 지점까지 목숨을 걸었고, 부패하고 무장했으며 부도덕하게 부를 축적한 독재자를 나라밖으로 쫓아내고 권력을 빼앗았다. 나는 민주주의가 낡아 빠진 슬로건이 아니라 살아있는 이념이자 진정으로 중요한 원리, 인민의 열정과 헌신을 담은 원리로 자리잡은 공간에 가기를 원했다.


실제 상황은 생각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마르코스 정권이 무너질 즈음 공중의 분위기가 흥분과 급진적인 희망으로 불타올랐지만 1987년 봄까지 환멸에 빠졌다. 민중운동의 본질이라 할 급진적인 희망은(5장에서 더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정확히 혁명적이라고 부를만한 정치상황을 만들었지만, 이 희망의 대상은 선거에서 승리하기만을 바라는 자유주의 정치가인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였다. 급진민주주의는 자유주의 정치를 복구하느라 자신의 에너지를 다 써버렸다. 토지개혁은 진창에 빠졌고, 내전은 계속되었으며 1987년은 우울한 한해였다.


그러나 이런 환멸에도 민주주의에 관한 긴급하고 풍부한 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는 단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혹은 무슨 일이 잘못되고 있는가에 관한 질문으로 옮겨졌을 뿐이었다. 맑시스트들은 민주주의가 그토록 많은 일을 해냈다는 데 놀랐고, 자유주의 좌파는 민주주의가 별일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관해 가졌던 생각이 약간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이 시기는 행복하진 않았지만 지적으로 고무되었던 시기였다.


더구나 예상하지 않았던 것을 배우게 될 거라던 나의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필리핀 지식인들과 민주주의 이론에 관해 토론하고 그들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계속 “발전(development)”이라 불리는 동일한 장벽에 부딪혔다. 민주주의와 발전 사이의 갈등은 제3세계의 시각보다 북반구 공업국가의 시각에서 볼 때 더욱더 어려운 문제이다. 사실 북반구의 공업국가에서 쓰인 민주주의 이론에 관한 책들 대부분은 제3세계에 관해 얘기하지 않는다. 제3세계에 관한 언급은 정치이론과는 다른 “장”인 “지역연구”나 “발전경제학”의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만약 민주주의 이론이 전 세계의 문제라면 거센 민주화 투쟁이 일어났고 또 일어나고 있는 제3세계를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나는 필리핀에서 제3세계(혹은 자국 안에 제3세계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의 민주주의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모두가 발전의 문제와 그것의 반민주주의적인 편견을 다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2장의 주제이다.


이 책은 어떠한 제도도 기획하
지 않는다. 내가 제도에 관해 말한다면 그것은 원리를 설명하려는 것이지 기획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기획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기획들은 정치적인 논의에서 매우 중요하다) 다만 여기서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인간사(人間事)의 원리로 살펴보려 한다(이것은 사람들이 이 원리를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 만든 다양한 제도와 행위와는 다르다). 민주주의가 너무 자주 뒤섞이고 혼동되어 사용되다보니 우리는 마치 민주주의가 자유선거 혹은 인권의 법적보장, 노동자의 통제인 것처럼 말한다. 예를 들어 아직까지 우리는 평화가 평화조약이고 정의가 배심원에 의한 재판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배심원 재판에 의해 보장되는 정의, 혹은 평화조약에 의해 지켜질지도 모르는 평화는 우리가 경험으로 알고 있듯이 모든 경우가 아니라 몇몇 경우에만 진실로 증명되는 가설이다. 재판이나 조약과 상관없이 정의와 평화에 관한 개념들을 가지고 있어야 이런 가설의 상대적인 진실 혹은 성공을 판단할 수 있다. 비슷하게(아래에서 논의하겠지만) “선거”, “법적 보장”, “노동자의 통제”도 가설들이다. 이들의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원리들을 가능하다면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다르게 보자면, 이 책을 유토피아적인 이론에 관한 저작으로 의도하고 쓰지 않았다. 나는 누구도 이전에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어떠한 기획을 갖고 있지 않다. 그와는 반대로 테이블 위에는 이미 많은 수의 훌륭한 민주주의 기획들이 있고 그것은 몇 년 전에 어떤 것은 수백년 전에 등장했다. 모든 대륙, 각 나라, 사실상 모든 형태의 제도에서 민주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 운동들 각각은 서로 다른 해결책을 요구하는 상이한 상황에 놓여 있다. 북반구의 거대 자본 정치(big money politics)의 민주화는 남반구의 군부독재 혹은 플랜테이션, “사회주의” 관료제, 혈연 정치, 신권정치의 민주화와 다르다. 이러저러한 제도들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모든 운동들은 제 나름의 방법들과 목적, 희망을 가지고 있다. 나는 실제 현실에서 그 사람들이 투쟁해온 것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이 책이 민주주의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수단과 목적을 명료화하고 평가하며 비판할 몇 가지 기준을 제공하고 “실제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 운동들을 이론적으로 지원하는 작은 공헌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민주주의가 다른 정치제도들보다 뛰어난 이유를 사실상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또는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려 한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생각해야하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생각이 초래하는 결과를 연구하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다. 만약 누군가가 급진민주주의의 입장을 취한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하기 위해 내가 가끔 사용하는 방법은 상상의 인물, 이상형의 급진민주주의자를 가정하는 것이다. 이런 인물은 연구주제들 중 하나이며 이후의 어떤 상황에서건 노련하게 증명하는 역할을 맡는 관계자들 중 한 명이 될 것이다. 이런 이슈와 관련해 급진 민주주의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급진민주주의자들은 무엇을 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급진민주주의자들은 무엇이 되려 할까? 이 답에는 구속력이 없다. 누군가는 답을 알면서 다른 정치체제를 선택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의 논의가 성공한다면 다른 체제를 선택한 이들이 최소한 자신의 선택을 “민주주의”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박래군이라는 이름은 예전부터 들어왔지만 본격적으로 알게 된 건 우리 각시를 만나면서부터이다. 각시의 인연으로 글로만 접했던 인권운동 사랑방의 박래군, 류은숙같은 사람들과 만나 얘기도 나누고 술도 한잔씩 나누게 되었다. 마침 인권운동이 지역의 풀뿌리운동에 관심을 두고 있기에 서로 얘기를 섞을 기회도 잦아졌다. 더구나 우리 각시는 박사모(박래군을 사랑하는 모임)의 주요회원이기도 해서 래군이형이 수배를 받던 중에 순천향대병원이나 명동성당을 찾아가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래군이형이 출소해서 그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얘기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었다. '420일간의 불복종과 세상살이'라는 제목의 토크쇼(?)이다. 제 2의 용산이라 얘기되는 신촌의 두리반에서 진행된다. 간간이 만나 얘기를 들어왔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떤 얘기를 나눌지 기대된다. 막걸리 한잔 하면서 얘기를 나누는 자리이고 수익금은 전액 두리반에 기부된다니 한번씩 찾아서 얘기도 듣고 막걸리 한잔 나누면 좋겠다.



 

진보정치의 ‘진짜 시험대’가 필요하다


6․2 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 결과에 대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한나라당의 패배라는 사실 외에 진보정치의 성과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선거에서의 승리를 무엇으로 판단해야 옳을까? 중요한 쟁점의 부각, 후보자 당선비율, 비례대표 정당지지율, 이런 기준들이 얘기되고 있지만, 이런 기준들은 부르주아정치의 기준과 얼마나 다를까? 승리를 판단할 수 있는 진보정치의 기준은 아직 세워지지 않은 듯하다.

유권자들이 꿨던 꿈은 이번 선거를 통해 얼마나 현실이 되었을까? 4대강 사업이 중단되고 삼성과 같은 재벌이 해체되고 남북한의 긴장이 완화되는 꿈은 얼마나 실현되었나? 그리고 이런 꿈을 실현하기 위해 4년 후의 지방선거 때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은 유권자는 얼마나 될까? 몇몇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들이 정치혁명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정치혁명은 아직도 과제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현실은 끊임없이 변하니 진보정치는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후보가 당선된 3곳의 구청이 진보정치의 미래에서 중요한 시험대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단일후보가 당선된 여러 지역에서도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실험을 진보적으로 이끌 수 있을까?


한 가지 좋은 방법은 과거에서 교훈을 찾는 것이다. 이미 민주노동당은 울산 동구와 북구에서 단체장으로 선출되고 의회에서도 다수당을 구성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경험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고, 공식적인 평가도 찾기 어렵다. 다른 무엇보다도 의원의 의정활동이나 구청장의 구정활동을 평가하는 기준이 없다는 점은 큰 문제점이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과거의 경험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무엇이 진보적 지방자치의 걸림돌이고 그 걸림돌을 제거할 방법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공동정부 구성과 관련해서는 과거의 정치권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인수위나 주요한 몇몇 자리에 몇몇 사람이 들어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특히 민주당의 지역조직은 한나라당과 크게 다르지 않고 여러 가지 이해관계에 묶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정부 구성에만 관심을 쏟다가는 큰 코를 다칠 수 있다. 진보정치의 시험대를 만들기는커녕 구태의연한 권력정치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 수도 있다. 그러니 밀실에서 타협을 하거나 정책을 만들지 말고 공개된 광장에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진보정치의 파트너는 후보를 단일화한 정당이 아니라 지역의 주민들이다. 그러니 주민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참여예산제도를 비롯해 이미 조례로 도입된 각종 제도들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복지관과 도서관, 주민자치센터 등의 시설들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시작부터 진보정치는 뭔가 다른 점을 주민들이 실감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구호가 아니라 일상적인 삶이다. 주민들의 삶이 바뀌어야 진보적 지방자치가 가능하다. 그러니 주민들이 움직이는 동선, 주민들이 일하고 소비하며 쉬는 공간, 주민들이 만나고 소통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당선된 교육감들과 더불어 미래의 시민인 청소년들이 지역에서 시민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중을 기약하지 말고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과제들부터 하나씩 해결해가야 한다.


사실 이런 과제들을 4년 안에 모두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4년을 보지 말고 8년, 12년을 장기적으로 보면서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가면 주민들도 기꺼이 진보정치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려 할 것이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브이의 가면과 옷을 입고 등장한다. 여주인공은 말한다. “그는 당신이고 저이기도 했어요. 그는 우리 모두였어요.”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밤이 필요하다.

 

더글러스 러미스(D. Lummis)의 책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녹색평론, 2002)라는 책은 도발적인 제목만큼 새로운 문제의식을 다양하게 펼쳐놓는다. 러미스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우리들의 현실주의에 메스를 들이댄다.


러미스의 말은 역사적이면서 논리적이고, 그는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간결하게 자기 의견을 드러낸다. 가령 경제성장이 되면 모두가 잘 살게 되리라는 현실주의에 이렇게 답한다. “경제발전에 따라 빈부의 차이가 없어진다고 하는 환상은 로스앤젤레스를 보면 잘못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빈부의 차이란 경제발전에 따라 해소되는 것이 아닙니다. 빈부의 차이는 정의(正義)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의 입장에서 보면, 빈부의 차이가 나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정의라는 말은 경제학의 용어가 아닙니다.…‘정의’란 정치용어입니다. 빈부의 차이는 경제활동으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빈부의 차이를 고치려고 한다면 정치활동, 즉 의논하고 정책을 결정하여, 그것을 없앨 수 있는 사회나 경제구조로 바꾸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이런 논리를 따르면 선진화를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모순인가?


그래서인지 러미스는 경제를 얘기하면서 끊임없이 정치에 대한 문제를 환기시킨다. 예를 들면 책의 제5장 ‘무력감을 느끼면 민주주의는 아니다’에서 러미스는 자유로운 공공영역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러미스는 자신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상을 자세하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사실 러미스는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2000년)라는 책보다 [래디컬 민주주의(Radical Democracy)](1996년)라는 책을 먼저 썼다. 러미스가 잡지나 책에 실었던 글을 모은 책인데, 이 책을 지금 후배와 함께 번역하고 있다. 이 책에도 먼저 번역된 책만큼 흥미로운 주장이 가득하다(녹색평론사에서 출판될 예정이다).


책은 다섯 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1장 래디컬 민주주의

2장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발전(Antidemocratic Development)

3장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기계(Antidemocratic Machines)

4장 민주주의의 잘못된 전통(Democracy's Flawed Tradition)

5장 민주적인 가치(The Democratic Virtues)


결론의 제목이 사뭇 의미심장한데 페르세포네의 귀환(Persephone's Return)이다. 지금 3장까지 초벌번역이 진행되었다(가을까지 마칠 수 있으려나).


번역하면서 눈에 걸리는 흥미로운 부분들을 미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책에서 나는 이렇게 원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한다. ‘민주주의’는 한때 인민의 언어였고 비판의 언어, 혁명의 언어였다. 인민을 지배하려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배에 정당성을 덧붙이기 위해 민주주의를 훔쳐갔다. 이제 그것을 다시 돌려받아 그 비판적이고 래디컬한 힘을 되찾을 시간이다. 민주주의가 모든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꽤 가치있는 것이다. 말이 올바른 곳에 사용되는 바로 그 순간 그 말은 신선하고 깨끗하고 진실해진다. 그 말을 계속 사용하려는 습관이나 향수 때문이 아니라 다른 말로 민주주의가 뜻하는 바를 말할 수 없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했던 역사가 위선과 배신의 역사와 겹치지만 어쩐지 지금까지도 민주주의는 순결한 정치적 이상이다. 래디컬하게 이해하면 민주주의는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을 품고 있다.”


“‘인민’을 정의하기(a). 민주주의는 보통 인민에 의한 지배로 정의되어져 왔다. 이 의미의 래디컬한 의미를 제거하는 고전적인 방법은 노예와 여성, 특정 인종, 빈민, 어떤 다른 집단을 배제해서 우리가 “인민”으로 뜻하는 바를 축소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나라에서나 중산층이나 상류층이 “인민권력”을 지지한다고 말할 때, 그들이 “인민”으로 부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민주주의를 요구할 때 그들은 자신들에게 봉사하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계급의 사람들, 자신들의 부와 지위가 의존하는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기를 요청하지 않았다.”


물론 민주주의에서 데모스(demos)는 원래 시민 중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수가 많은 계급을 뜻했다. 그리고 민주주의도 원래 그 계급의 지배를 뜻했다. 중간계급이 지배를 잘하건 못하건 그것과 상관없이 그들의 지배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중간계급의 지배라 불려야 한다.”


민주주의는 인민이 지지하는 지도자를 가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민주주의와 혼동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에게 “민주주의”라는 말을 알려준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런 유형의 지배에 다른 말을, 즉 “민중선동가(demagogy)” 썼다. 민중선동가는 인민을 위해 일하거나 인민을 대변하리라 약속하며 대중적인 지지(=권력)를 얻은 사람이다. 오늘날 이 용어는 주로 비난할 때 사용되지만 그 본래 의미는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았고 특히 민중선공가가 적절한 상황을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킨다면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인민이 약속의 대가로 어떤 이에게 자신들의 권력을 넘겨주는 상황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민주적인 중앙집권주의이다. 중앙의 통제는 투쟁 중인 정파에게 이로울 수 있고 심지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이 유용성이 그것을 민주적이라 부르는 걸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민주적 중앙집권주의”는 “뜨거운 얼음”이나 “각양각색의 통일성”과 같은 표현이다. 당신이 단어를 만들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 존재한다는 점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보통 민주주의는 지방의 특색(localism)에 좌우된다. 지방의 지역들은 인민이 사는 곳이다. 민주주의는 인민이 사는 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 권력을 주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이 철학의 올바른 이름이 래디컬 민주주의라는 점이 이 책의 입장이다. 톰 페인(Tom Paine)이 우리에게 알려줬듯이 민주주의는 양식(良識, good sense)이다. 양식의 수준에서 생각해보면 이 주장은 분명하고 무난한 듯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분석적으로 따져보면 이 주장은 설명을 필요로 하는 몇 가지 질문들을 받는다. 민주주의가 양식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의견이 똑같은 방식으로 일치된다는 점을 뜻하지 않는다. 전 세계의 인민들이 민주주의라는 말을 좋아할 수 있으나 내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민주주의가 뜻하는 바에 관한 그들의 의견은 일치하지 않는다. 더구나 민주주의가 양식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인민이 세계의 객관적인 구조나 인간 지각구조나 인식구조로 민주주의를 똑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뜻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태양이 열을 발산한다거나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가 직선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과 다르다. 민주주의는 선택할 수 있는 생활양식이고 다른 선택도 가능하다.”


민주주의가 양식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개념이 단순하다는 것이지만 급히 덧붙이자면 단순하다는 것은 거짓될 수 있다. 그것은 일상언어로 표현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단순하다. 그러나 일상언어는 전혀 단순하지 않다. 일상언어는 보통 사회과학과 철학의 전문화된 언어보다 다른 방식으로 더욱더 복잡하다. 기술적인 용어들이 특수하고 분명하게 규정된 의미들만을 가리키리라 가정된다면, 일상언어의 단어들은 일상언어 사용법의 무질서한 역사의 엄청난 복잡성을 지고 있다. 어쨌건 일상언어는 우리가 공유하는 언어이고 따라서 우리 양식을 만드는 언어이다. 민주적인 담론은 그것이 민주적이려면 이런 언어로 수행되어야만 한다. 민주적인 담론은 높은 철학수준이나 책을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는데 쓸 수 있는 전문가들만이 다다를 수 있는 수준으로 제한되지 않아야만 한다. 이것은 지적 능력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거나 불가지론이라 생각하며 거부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이것은 사유의 기획이 양식의 수준에서, 그리고 양식의 언어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점을 뜻한다. 더 나아가 양식의 언어는 민주적인 사상을 만드는 기획을 진행하는데 적절한 수단이고 수단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면 민주주의자일까?”


종종 우리는 효율적인 것이 생산하고자하는 효과에 의존해서 달라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까먹는다. 최소의 노력이라는 원리는 수단과 목적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그리고 소외된 임금노동처럼 우리가 목적을 사랑하고 수단을 증오하는 상황에 가장 잘 적용된다. 이것은 음악을 연주하고 사랑을 나누고 춤추고 이야기를 하고 숲을 산책하는 것처럼 수단과 목적이 구분할 수 없을만치 서로 얽혀있는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되지 못한다. 만약 당신이 친구들과 운동하거나 맛있는 식사를 먹는다면 그것을 가능한 짧은 시간에 끝내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이런 것과 비슷한 많은 활동들이 있고 적절한 시간동안 적절한 노력을 들이는 경우에만 가장 효과적인 일들이 있다. 이런 활동들은 대체로 어느 한편 때문에 나빠진다.”


자물쇠처럼 산업생산의 기계화 역시 인간관계의 물화이다. 산업혁명이 생산설비의 혁명 이상이라는 점은 상식이다. 즉 산업혁명은 일의 조직화에서의 혁명이었다. 이 혁명은 단지 새로운 기계가 새로운 작업방식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뜻하지 않는다. 이 혁명은 새로운 기계가 일을 새로이 조직하고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힘을 감소시키려는 의도로 설계되었음을 뜻한다. 나는 노동분업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산업혁명보다 훨씬 전에 이루어졌고 노동자들의 힘을 강화시키는 원천이었다. 한 노동자가 도자기를 굽고 다른 사람은 농사를 짓고, 또 다른 이는 고기를 잡고, 옷을 짓고 나무를 패고 대장장이 일을 하는 분업은 각 노동자 또는 노동자들의 공동체나 길드가 예술적인 수준으로 기술을 발전시키도록 한다. 이런 류의 전문화는 제조업의 물건보다 더 많은 양의 가치를 생산한다. 이런 전문화는 전통과 노래, 이야기, 예술적인 감성, 장인의 자부심을 가진 특정한 형태의 공동체를 만든다. 평생을 그런 일에 바친 노동자는 숙련된 농부나 전문 도자기공, 전문목공이 된다. 존경받을만한 사람은 그 사물에 관한 진정한 지식을 가르치는 합법적인 권위를 가진다. 춤을 추는 것처럼 이런 상황에서는 수단과 목적이 구분할 수 없을만치 서로 섞이게 된다.”


많은 맑스주의자와 맑스-레닌주의자들은 모리스를 낭만적인 공상가나 비과학적인 사람으로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만 그의 과학에는 잘못이 없다. 모리스가 기술결정론자가 아닌 점은 분명하다. 모리스에게 기계와 기술은 인과관계에서 그것이 구현될 사회보다 앞서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계와 기술은 그 사회의 기능과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고 그 사회의 에토스(ethos)에서 특징을 띠게 된다.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사회는 각기 다른 기술을 발전시킬 것이다. 모리스에게 자유로이 일하는 자유로운 사회는 자유로운 노동의 기술을 선택할 것이고 이 기술은 노동자에게 최대한의 권한과 즐거움을 준다. 맑스-레닌주의자들이 모리스를 공상가로 여긴다면 모리스는 분명히 맑스-레닌주의자를 어리석게도 핵심을 놓친 경제개발론자들이라 비난할 것이다.


정치는 인간이 그들의 집단적인 삶을 선택하고 함께 건설하는 활동이다. 이 선택이 선택이지 않다고 속이는 기술결정론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자치수단 중 하나를 빼앗는다는 점에서 반(反)정치적이고 반(反)민주적이다. 이런 물음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정치”는 자크 엘륄(Jacques Ellul)이 “정치적 환상”이라고 부른 것이다. 즉 이 정치는 진정 중요한 선택―이 선택은 민중의 삶의 질과 그 공동체의 질서, 그들이 지배당하는 방식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에 관심을 두지 않고 부차적이고 사소한 종류의 일들만을 결정하는데 집중한다. 이 정치는 사람의 눈을 속이는 정치이고 전혀 정치가 아니다. 장소없는 기술을 선택하는 것은 지금 세기에 우리가 계속 지불해온 정치적인 가격을 뒤흔들게 된다. 만일 우리가 그것이 진정 선택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아마도 우리는 다른 선택할 시작할 것이다.”


기술을 선택함으로써 당신은 그 기술이 동반하는 정치를, 즉 일의 질서를 선택한다. 대량소비를 선택함으로써 당신은 대량생산과 관리되는 일의 질서를 선택한다. 대공장을 선택함으로써 당신은 관리되는 과두정치와 사회적 불평등을 선택한다. 다른 한편 관리자와 노동자를 분리시키는 불평등과 대가와 도제를 분리시키는 불평등 사이에는 심각한 차이가 있다. 관리자/노동자의 관계는 (맑스가 지적했듯이) 군대에서 장교/사병의 관계와 아주 가깝다. 아주 드문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노동자는 결코 관리자가 되지 못하고 관리자는 결코 일을 하지 않는다. 발달된 산업사회에서 자동차의 대량생산은 하나의 선택이었다. 아마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런 선택을 했다는 점을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그들이 기술“진보”의 혜택과 불가피성을 강하게 믿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자동차가 문명에 강요했던 엄청난 변화를 거의 몰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것은 정치적인 선택이었고, 그러했다(예를 들어 정부가 철도와 다른 공공교통수단에서 고속도로 건설로 재원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고속도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를 알았다면,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얼마나 많은 오염물질이 대기로 스며들고 언젠가는 우리가 고속도로의 자동차에 연료를 넣기 위해 석유전쟁을 벌여야 할지 모른다는 점을 알았다면 사람들이 엄청난 고속도로 건설에 찬성했을까? 이 세기가 끝나면서 미시건 주의 디트로이트와 일본의 토요타에서 어떤 삶이 선호될지를 정확히 알았다면 자동차를 선택했을까? 글쎄, 그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안다.”


내가 일본에서 온 학생들과 핸포드 핵저장소를 방문했을 때, 우리는 이 시설을 둘러보며 짧은 설명을 들었다. 우리는 히로시마의 날에 방문하도록 여행시간을 잡았다. 안내인은 다소 신경질적이고 방어적이었고 나가사키에 떨어진 폭탄을 만들기 위한 핸포드의 충돌프로그램을 보여주는 커다란 사진과 그 폭탄이 성공적으로 폭발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핸포드와 리치랜드에서 벌어진 축하의식을 건너뛰었다. 전쟁에 관해 얘기하지 않고 안내인은 원자력의 안전성에 관해 장황하게 얘기했다. 핵폐기물이 안전하게 매장되지는 않을지라도 위험기동안 세심하게 관리된다고 그는 말했다. 나는 손을 들고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곳에서 만들어진 폐기물이 2만 5천년 동안 위험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누가 관리하나요?”

물론 미국 정부죠.”

당신은 2만 5천년 동안 지속된 정부에 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안내인은 화를 내며 나를 싸늘하게 노려보았고 대답을 거부했다. 분명히 그는 내 질문에 애국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나는 내가 바보와 얘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핵물리학자는 아니지만 원자력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가끔씩 자신들이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안들에 참견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렇다면 나는 이 안내인이 약간의 상식도 없이 내 영역인 정치의 장에 간섭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런 농부들이 기술과 사회적 목적간의 수단-목적 관계를 바로잡는 방법에 주목하자. 그들의 구호는 “생산성”이 아니라 “자립”이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가장 발전된 하이테크 농기구라면 어떤 것이든 가장 먼저 도입하고 이런 농기구들이 어떠한 생산관계와 사회적 틀을 만들든 그것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싶은 유형의 공동체(자립 공동체)로 시작하고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 농사기술을 찾았다. 이런 입장은 정말이지 도구를 통제하고 도구에 지배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설탕노동자나 쌀농사를 짓는 소농이 진정한 토지개혁 없이 이런 목적을 완전히 실현할 수는 없다. 정부는 지금까지도 그들에게 땅을 주는 걸 거부해 왔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그들은 네그로스에서 이런 실험들을 하면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지주들의 정부에게는 경제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자립하는 농부들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가장 끔찍한 악몽이기 때문이다.

+ Recent posts